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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r 14. 202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대 추억의 장소를 가다



France, Toulouse

여행을 마칠 즈음에나 조용히 들를까 했던 곳에 예상보다 빨리 가게 되었다.  

   

지난 22년 혼자 여행을 할 때 나는 다음에 갈 장소를 미리 정하지 않고 다녔다. 대충 동선을 그려가면서 여행했지만 그야말로 내 맘대로 자유여행이었다. 어떨 때는 체크아웃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어디로 갈지 모를 때도 있었다.      


크로아티아여행을 마치고 두브로브니크에서 이제 어디로 갈까 하며 항공티켓을 검색하던 중 갑자기 3분의 1 가격에 나온 뚤루즈 뱅기표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바로 예약해 버렸다.     

어쩌면 이 또한 여행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추억의 장소로 안내하는 동시성이 아닐까 싶었다.     


뚤루즈는 나의 이십 대 절반, 5년을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억에 남는 장소다.     


90년에 떠나온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으니 30년이 넘었다.      


나의 이십 대를 소환하는 장소에서 어떤 느낌이 들까? 그냥 무덤덤한 심정으로 변하지 않은 도시로 보게 될까? 아니면 그 시절을 떠올리는 감회로 설렐까?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로비에 물어 내가 살던 기숙사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다. 3 년동안 기숙사에서 살고 2년은 밖에 나와서 살았는데 그래도 처음에 살았던 기숙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먼저 도시의 외관상 큰 변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없던 지하철이 생긴 거였다.

기숙사 방향으로 타고 지하철역에 내렸는데 동서남북 감이 전혀 안 왔다. 할 수 없이 강 방향을 물어 뙤약볕 속에 한참을 걸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뭇잎 사이로 기숙사로 향하는 철교가 조그맣게 보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금 났다.     


강 건너편 Casino 슈퍼마켓에서 바게트빵을 사서 뜯어먹으며 걸어가던 철교다리였다. 수업시간 버스 안 놓치려고 커다란 귀걸이를 덜렁거리며 뛰어가던 다리이기도 했다. 강변에 나무들이 그때처럼 물 그림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강이었다. 처음엔 그런 강을 보는 자체가 내겐 경이로움이었다. 그리고 그 강풍경은 늘 내게 정신적 풍요로움을 주었다.      


기숙사 구역에 들어서니 나무들이 여전하다. 기숙사도 건물 도색만 좀 다르고 그냥 그대로다. 강산이 세 번 바뀌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반갑다. 내가 살던 4층 베란다에 머리만 보이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 보면 이상하겠지만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는다.     


밥을 먹던 식당이랑 다니엘 포쉐 기숙사 앞의 간판, 이곳에서 검은 반바지 차림으로 찍은 풋풋한 사진이 떠오른다. 불현듯 세월은 빠르고 아무것도 아닌 듯 그냥 모든 것이 휙! 지나갔구나 싶다. 마치 같은 내가 다른 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평행우주처럼!




기숙사 가는 철교를 발견하고 눈물 찔금 ㅎㅎ

기숙사 건물은 그대로다. 내가 살던 4층을 올려다봤다

시간은 없는 것과 같다, 단지 여기 있다 저기로 휙 날아갔다 온 느낌일 뿐!

기숙사 다니엘 포쉐 식당 앞 간판     




    

지하철을 타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너무나 익숙했던 이름, 잊을 수 없던 이름의 장소를 찾아가 본다. 쁠라스 윌슨 Place Wilson 윌슨광장이다. 시내에 오면 항상 앉아 쉬던 곳, 그런데 이전의 호젓한 분위기는 아예 없고 그냥 왁자지껄 붐비는 도심지 한가운데다.

길 건너편이 이제 지하철역 입구다. 아이들 타는 회전목마까지 있고 구석에서 음악 연습하는 사람들, 잔디밭에 누워 주무시는 노숙자, 벤치에 노부부, 아기엄마들, 주로 여행자보다는 뚤루쟁, 뚤루젠느들로 꽉 차 내가 앉을자리도 없었다.     


그래도 광장에서 시원한 분수 소리와 얼음 넣은 오렌지 착즙 주스를 마시며 6월의 더위를 식혔다. 사람이 많아서 어수선한 지 이제 비둘기도 윌슨 동상 머리 위로 올라가 쉬는 걸 보며 빙그레 웃음 지었다.   

  

다시 예전 동선 따라 시내의 중심 Capitole 카피톨 광장 가는 길, 그 뒤편에도 지하철역이 생기고 큰 나무들이 심겨있다. 그렇게 낯선 풍경 속 물놀이 하는 분수도 있어 아이들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예전의 도시는 검은 스카프 두른 할머니들이 조용 조용히 걸으시던 모습으로 내게 기억된다면 이제는 더 활기찬 젊은 도시로 느껴졌다. 시내는 물론이고 며칠 돌아보는 동안 없던 공원도 많이 생겨나서 이제는 붉은 벽돌도시가 녹색으로 에워싸인 느낌을 받았다.     


도심을 벗어나 퐁 네프로 가 본다. 프랑스 어느 도시에라도 있을 Pont Neuf는 새 다리란 뜻인데 사실은 아주 오래된 다리다. 기숙사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면 항상 그 강 따라 시내로 왔다. 어느 날은 교회 갔다 오면서 강변에서 찍은 검은 바탕에 흰 꽃무늬 원피스 입은 사진이 있다. 지금 다시 봐도 강폭이 제법 넓다.      


Toulouse는 파리, 마르세이유, 리용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마르세이유는 항구도시고 리용은 공업도시라 그런 지 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반면 뚤루즈는 남서불에 위치하면서 건물의 독특한 붉은색으로 이전부터 Ville Rose 장미의 도시로 불렸다.


프랑스적인 것을 체험하고 싶은 분들은 오셔도 좋을 것 같다. 파리를 이미 가 보신 분들에겐 프랑스 음식과 문화등 두루 체험하기에 괜찮은 곳이다.     


나에게는 처음 나온 외국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장소다.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서'가 되는 특별한 곳이다.     


윌슨광장과 그기서도 놀이삼매경에 빠지신 분들


가론느강과 퐁 네프


카피톨 광장, 뚤루즈 십자가가 있고 각 사방끝에 별자리가 있다. 나의 물고기좌에 발을 얹어본다





내가 머물 때도 그랬고 지금도 뚤루즈는 대학도시다. 도시 인구가 45만 명인데 학생이 14만 명이니 학생 천국이라 해도 좋을 젊은 도시다. 뚤루즈 대학은 1229년에 설립되어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유럽의 대학들 중 하나다.          


기숙사를 보고 나서 이튿날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학교도 역시 많이 바뀌어서 정문 앞에 지하철역이 들어서고 이전 소박하던 교문은 없다. 건물도 대부분 증축 내지는 신축으로 더 확장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학교 이름까지도 바뀌었다. 30년 전에는 여기 인문학부를 미라이대학이라 불렀다.      

 

당시는 건물이 그냥 밋밋한 네모난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좀 문학, 철학, 예술학부답게 색깔도 있는 게 신선하고 좋아 보였다. 학교이름이 Toulouse Jean Jaures 대학이라 되어있는데 시내 중심 지하철 역이름도 같은 이름 장 조레스라 그에 대해 찾아봤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이자 모범적인 활동가였다.     




곡선으로 뚫린 하늘이 보이는 새 대학건물

앎(배움)의 무료화? 의미심장하다. 프랑스는 생후 3주부터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다

학생관 입구에 카페테리아란 한글도 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나와 장 조레스역에 내려걸어 다니다 Saint-Sernin 생 세르넹 대 성당을 갔다. 사진만 찍고 나오려는데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그러다 어쩌다 미사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유럽이 성당문화라 지금껏 다니면서 수 없이 성당을 보고 촛불을 켜고 기도는 해 왔지만 이렇게 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사제가 흔드는 향로로 앞줄에 앉은 내게로 향내가 진동한다. 바깥세상 노이즈와 완전 차단되어 파이프 오르간과 성가대의 찬송 소리에 눈을 감은 나는 잠시 피안의 천상세계로 들어간다.

사제가 나누는 말씀조차 깊이 와닿는다. 땅과 바다가 만들어지기 전에 내가 있었노라. 예수님은 물론이고 우리 영혼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왜 그랬을까? 그냥 성당 안 분위기와 향냄새, 천상의 멜로디 때문이었을까? 나는 성경 자체를 불어로 처음 읽었다. 여기서 기독 신앙을 처음으로 접했었고 초대교회같이 자발적으로 유무상통 나누던 형제들의 교회를 다녔. 그러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많이 다른 한국교회 분위기가 낯설었었다.     


나의 눈물은 아마도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사랑으로 인한 눈물이었으리라.

나의 여행뿐 아니라 인생 여정 길 중간에 들른 신의 처소에서 흘리는 안식의 눈물이었으리라. 그리고 어쨌든 나의 이십대로 돌아와 추억하니 여러 복합적인 마음의 소회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성당 천정모습, Saint-Sernin은 유럽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이다.


성당에서 울고나와 허기져서 카피톨 광장 앞 레스토랑에서 카술레를 먹었다. 흰 강낭콩, 소시지, 오리고기가 들어가는  뚤루즈지방 특색요리다.


          

빵순이 아침 조식, 식도락의 나라 프랑스 하면 치즈인데 사진에 빠졌다

      




 


Ps

~위 글은 <일단 떠나라> 여행기의 뚤루즈 부분을 줄여서 올린 글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명이다.





☆ 김별 작가의 연재 브런치북


 월~ 책속으로 떠나는 여행     

화, 토 ~ 지구별 여행기     

수, 금 ~하늘바람시와 별의 노래

목~ 마이 버킷리스트

토, 일~ 마이 브런치 다이어리

일~ 짧은 글속 깊은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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