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30년 교직을 끝으로 지난 20년 8월 말에 명퇴했다. 정말 30년에 하루도 더 안 보태고 정확하게 날짜 맞춰 퇴직했다. 그만큼 목말랐던 해방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퇴직하자마자 친정어머니를 모셔와서 돌보다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버킷 리스트였던 혼자 자유여행을 5개월 했고 첫 책도 출간했다. 지금은 건강상 이유로 여행은 멈추고 글쓰기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또 떠날 것이다.
나는 이전부터 인도 구루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젊어서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일구어 자녀 양육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독립하고 출가하면 이제 나도 집 앞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명상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성찰의 시간을 마치면 더 큰 자유를 향해 길을 떠난다.
이는 마치 불교에서 안거(安居)와 만행(萬行)에 비할 수도 있다.
안거는 외출을 금하고 한 곳에 모여 수행하는 제도로 보통 석 달 동안 여름, 겨울에 하는 하안거와 동안거가 있다. 안거 동안은 새벽 3~4시에 기상, 새벽예불, 참선 정진, 도량청소 공양 등 모든 시간이 정해져 있다. 마치 우리의 직장생활처럼.
그러나 그 안거가 끝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만행을 한다.
만행의 뜻은 수행자들이 행하는 모든 선한 행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만 가지 행’을 가리킨다. 먹고 자고 눕고 걷고 말하고 침묵하는 등 일체의 모든 행동이 다 수행이니 궁극적으로 자신을 닦아하는 중생 구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혼자 여행하면서 여행이 만행이라고 느낀 적도 많았다.
여행도 길 위에서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더 알게 된다. 그래서 세상과 이웃을 향해 더 열리는 점에서 만행이기도 하다. 암튼 직장생활을 안거에 비하면 바람처럼 구름처럼 운수행각 하는 여행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퇴직 후의 시간적 자유의 삶이다.
지금 나는 집 앞 50m 거리에 복지관이 있다. 해서 참으로 행운으로 여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복지관 가까운 집이 복세권으로 인기가 많다 한다.
멀어서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느니 정말 감사하다. 요즘은 탁구와 댄스 그리고 캘리그래피를 배운다.
복지관에서는 내가 제일 어린 축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 보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분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 자기 시간 가족에게 다 내어주고 이제 저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니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도 왜 좀 더 일찍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어쨌든, 각자에게 주어지는 시간대 안에서 이제는 본인만을 위한 시간을 내서 건강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지난 주말은 올 삼월로 교직을 정년 퇴임한 친정 오빠를 초대해서 일박이일 즐겁게 지냈다. 삼 남매인 나는 오빠와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은 오지 못해 대신 축하 떡 케이크를 보내왔다.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을 불러 함께 오빠 퇴임을 축하하며 우리 모두 남은 시간 더 많이 웃고 더 즐겁게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다 가자라고 했다.
1박2일동안 마니 웃고 그러면서 속내이야기도 다 풀어냈다. 마산 해양누리공원 산책도 하고 카페도 가고 자주보고 살자가 이제부터 우리 모토다 ㅎㅎ
다시 봄이 와서 벚꽃도 피고 동백도 화려하다. 우리 인생도 저리 피었다가 어느 한순간 동백처럼 뚝 송이째 떨어지니 잘 살다가 길 바란다.
바삐 치렀던 지난 내 퇴임날이 떠올랐다. 코로나 시기여서 송별연 식당을 예약하는데 예상외로 전 교직원들과 급식소 조리사샘들까지 다 동참하는 바람에 인원초과로 예약이 되지 않았다. 교장샘이 웃으며 김샘 인기가 이리 좋은지 몰랐다고 했다. 그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들 몸 사리며 소규모로 모였었다.
학교에서는 부랴부랴 가사실에 퇴임식을 급조해서 축하를 해 주었다. 수업이 없는 여샘들이 가서 풍선장식등으로 꾸미고 젊은 남샘들이 가서 장을 봐 오고등 오후시간이 나로 인해 분주했었다. 그냥 꽃다발만 받고 교무실에서 인사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해 준 동료들이 고마웠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일일이 반에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환송을 받으며 나의 퇴임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지나고 보니 하나하나가 더욱 잘 보이는 모두가 감사한 시간들이다.
그때 적어둔 글귀와 사진이 있어 다시 퇴임하는 기분 내며 옮겨본다 ㅎㅎ
샘님들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교직 생활 30년 진정 교단에서 행복했고 치열했으며
저 개인적으로도 한여름처럼 뜨겁고 왕성하게 일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밖의 서투른 열정은 사그라들고
마치 다가 올 구월처럼 조용히 내면으로 더 깊이 있게
남은 시간들을 잘 쓰며 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여전히 고투하며 가야 하는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늘 제 맘 한 귀퉁이에 남아있을 겁니다.
....
우리 아그들이 가끔은 열받게 하드래도
교직생활 내내 행복지수 짱~유지하시어
해피 스쿨라이프 되십시효()()^^
선생님 한분 한분께 깊은 사랑과 우정을 담아~
김 00 드립니다.
직장생활이란 긴 항해를 마치고 이제야 자유의 땅에 도달했으니 앞으로 시간들은 무얼 하든 하지 않든 다 축복으로 여긴다. 시간의 자유인이 된 퇴직 후의 삶은 인생 보너스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주인이 된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라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시간을 잘 쓰고 나는 잘 쓰이다가고 싶다.
내 황금 같은 시간은 잘 쓰고 나란 존재는 세상을 한 뼘이나마 밝고 따뜻한 살만한 곳이 되게 하는데 잘 쓰이다 가고 싶다.
나는 이전 선조들이 묘비에 학생 아무개로 적는 것을 보며 그리 느꼈다. 맞다. 학생이란 말. 배움엔 끝이 없다. 그러니 만행, 만 가지 행을 통해 더 배우고 체험하고 가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