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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r 21. 2024

해방과 자유의 시간

직장 퇴임 이후



누구나 출퇴근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은 아마도 인생 버킷 리스트 1위일 것이다.     

 

나도 30년 교직을 끝으로 지난 20년 8월 말에 명퇴했다. 정말 30년에 하루도 더 안 보태고 정확하게 날짜 맞춰 퇴직했다. 그만큼 목말랐던 해방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퇴직하자마자 친정어머니를 모셔와서 돌보다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버킷 리스트였던 혼자 자유여행을 5개월 했고 첫 책도 출간했다. 지금은 건강상 이유로 여행은 멈추고 글쓰기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또 떠날 것이다.      


나는 이전부터 인도 구루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젊어서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일구어 자녀 양육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독립하고 출가하면 이제 나도 집 앞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명상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성찰의 시간을 마치면 더 큰 자유를 향해 길을 떠난다.   

  

이는 마치 불교에서 안거(安居)와 만행(萬行)에 비할 수도 있다.     


안거는 외출을 금하고 한 곳에 모여 수행하는 제도로 보통 석 달 동안 여름, 겨울에 하는 하안거와 동안거가 있다. 안거 동안은 새벽 3~4시에 기상, 새벽예불, 참선 정진, 도량청소 공양 등 모든 시간이 정해져 있다. 마치 우리의 직장생활처럼.


그러나 그 안거가 끝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만행을 한다.

만행의 뜻은 수행자들이 행하는 모든 선한 행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만 가지 행’을 가리킨다. 먹고 자고 눕고 걷고 말하고 침묵하는 등 일체의 모든 행동이 다 수행이니 궁극적으로 자신을 닦아하는 중생 구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혼자 여행하면서 여행이 만행이라고 느낀 적도 많았다. 

여행도 길 위에서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더 알게 된다. 그래서 세상과 이웃을 향해 더 열리는 점에서 만행이기도 하다. 암튼 직장생활을 안거에 비하면 바람처럼 구름처럼 운수행각 하는 여행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퇴직 후의 시간적 자유의 삶이다.          





지금 나는 집 앞 50m 거리에 복지관이 있다. 해서 참으로 행운으로 여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복지관 가까운 집이 복세권으로 인기가 많다 한다.

멀어서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느니 정말 감사하다. 요즘은 탁구와 댄스 그리고 캘리그래피를 배운다. 

복지관에서는 내가 제일 어린 축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 보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분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 자기 시간 가족에게 다 내어주고 이제 저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니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도 왜 좀 더 일찍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어쨌든, 각자에게 주어지는 시간대 안에서 이제는 본인만을 위한 시간을 내서 건강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지난 주말은 올 삼월로 교직을 정년 퇴임한 친정 오빠를 초대해서 일박이일 즐겁게 지냈다. 삼 남매인 나는 오빠와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은 오지 못해 대신 축하 떡 케이크를 보내왔다.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을 불러 함께 오빠 퇴임을 축하하며 우리 모두 남은 시간 더 많이 웃고 더 즐겁게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다 가자라고 했다.       



1박2일동안 마니 웃고 그러면서 속내이야기도 다 풀어냈다. 마산 해양누리공원 산책도 하고 카페도 가고 자주보고 살자가 이제부터 우리 모토다 ㅎㅎ
다시 봄이 와서 벚꽃도 피고 동백도 화려하다. 우리 인생도 저리 피었다가 어느 한순간 동백처럼 뚝 송이째 떨어지니 잘 살다가 길 바란다.





바삐 치렀던 지난 내 퇴임날이 떠올랐다. 코로나 시기여서 송별연 식당을 예약하는데 예상외로 전 교직원들과 급식소 조리사샘들까지 다 동참하는 바람에 인원초과로 예약이 되지 않았다. 교장샘이 웃으며 김샘 인기가 이리 좋은지 몰랐다고 했다. 그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들 몸 사리며 소규모로 모였었다.    

 

학교에서는 부랴부랴 가사실에 퇴임식을 급조해서 축하를 해 주었다. 수업이 없는 여샘들이 가서 풍선장식등으로 꾸미고 젊은 남샘들이 가서 장을 봐 오고등 오후시간이 나로 인해 분주했었다. 그냥 꽃다발만 받고 교무실에서 인사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해 준 동료들이 고마웠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일일이 반에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환송을 받으며 나의 퇴임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지나고 보니 하나하나가 더욱 잘 보이는 모두가 감사한 시간들이다.      


그때 적어둔 글귀와 사진이 있어 다시 퇴임하는 기분 내며 옮겨본다 ㅎㅎ


샘님들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교직 생활 30년 진정 교단에서 행복했고 치열했으며

저 개인적으로도 한여름처럼 뜨겁고 왕성하게 일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밖의 서투른 열정은 사그라들고

마치 다가 올 구월처럼 조용히 내면으로 더 깊이 있게

남은 시간들을 잘 쓰며 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여전히 고투하며 가야 하는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늘 제 맘 한 귀퉁이에 남아있을 겁니다.

....

우리 아그들이 가끔은 열받게 하드래도

교직생활 내내 행복지수 짱~유지하시어

해피 스쿨라이프 되십시효()()^^

선생님 한분 한분께 깊은 사랑과 우정을 담아~

김 00 드립니다.







직장생활이란 긴  항해를 마치고 이제야 자유의 땅에 도달했으니 앞으로 시간들은 무얼 하든 하지 않든 다 축복으로 여긴다.  시간의 자유인이 된 퇴직 후의 삶은 인생 보너스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주인이 된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라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시간을 잘 쓰고 나는 잘 쓰이다 가고 싶다.


내 황금 같은 시간은 잘 쓰고 나란 존재는 세상을 한 뼘이나마 밝고 따뜻한 살만한 곳이 되게 하는데 잘 쓰이다 가고 싶다.      


나는 이전 선조들이 묘비에 학생 아무개로 적는 것을 보며 그리 느꼈다. 맞다. 학생이란 말. 배움엔 끝이 없다. 그러니 만행, 만 가지 행을 통해 더 배우고 체험하고 가기 원한다.      



우리 육체는 끝나도
            영혼의 여행은 지속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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