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년 혼자 여행 중 나는 3주 동안 지중해 크루즈여행을 마치고 바르셀로나에서 며칠 쉬었다.
그러다 새벽 뱅기를 타고 아침에 북 아프리카 모로코의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훅 하는 공기가 벌써 다르다. 건조한 열기는 처음 여행을 시작한 이집트를 떠올린다. 여긴 다시 아프리카다. 프랑스에서 만났던 나의 이십 대 모로코 친구들, 그들의 나라다. 그 추억으로 인해 참 오고 싶었던 곳인데 드뎌 그 땅을 밟았다.
공항에서 예약된 기사님을 만나 숙소로 오는 택시를 탔다. 그리고 내리니 숙소 직원이 마중 나와 있다. 내 가방을 끌고 앞서 가는데 한참을 복잡한 시장통을 지나더니 다시 골목을 접어들어 정말 미로 같은 길을 끝없이 걸어 들어간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남매처럼 본능적으로 길을 익히며 정신없이 따라 걷다 숙소에 도착했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출구 없는 미로 같은 길에 벌써 숨이 막힌다. 아 어쩌나 이런 줄도 모르고 그냥 숙소어플에서 사진만 보고 모로크스러움? 에 매혹되어 예약했는데 ㅠㅜ
골목 맨 끝집 리야드는 전통적 가옥 형태다. 리야드란 지금은 주로 호텔이나 숙소로 쓰이는데 구 시가지 메디나 안에 있는 건물형태다.
메디나란 말 자체가 "구 시가지"란 뜻이다. 중세 시절의 주거지라 도로가 좁아 차가 못 들어온다. 그러니 당연히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메디나에는 주로 흙으로 지은 건물들이 천년이 넘게 보존되어 있고 그 안에 이런 리야드가 내 숙소 골목에만 해도 대 여섯 개다.
그래도 숙소의 중정, 안뜰로 하늘이 보여 숨통이 좀 트인다. 방도 사진에서 본 대로 예쁘고 숙소직원들이 다 친절하니 안심이 된다. 당장 필요한 유심카드와 여기 돈을 찾으러 함께 나가면서 숙소직원이 이것저것 말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자세히 안내해 주니 조금 길눈이 트이고 여기는 정말 안전한 곳이니 아무 염려 안 해도 된다며 거듭 말하는데 사실 그를 믿으면 된다.
두려움이란 것은 오직 알지 못하는 상태, 무지에서 나오는 막연한 것임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저런 분이 왜 이런 일을 할까 싶을 정도로 곱게 생긴 날씬한 아주머니께서 청소를 하고 있다. 그러다 주방일도 하는지 뜨거운 모로코 티를 한잔 내 오신다. 그걸 마시니 온갖 시름, 여독이 다 풀리는 듯하다.
좁다란 골목 맨 끝집 숙소와 안온했던 방
지난주는 45도를 웃도는 더위였는데 오늘은 좀 낫다는 말을 듣고 일단 한 더위를 피하려고 밖에서 점심 겸 먹고 나서 한숨 잤다. 자고 나니 여독도 풀리고 들어올 때 본 그 복잡한 수크 전통시장이 궁금해 나가 보고는 싶은데 그 미로를 혼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냥 있을 수 없어 나가서 마사지나 한번 받아보려 하니 이름도 스마일인 친절한 숙소직원이 데려다준다. 마사지샵까지 가는 동안 “쿠투비아 모스크”와 모스크 주변으로 유명한 "자마 알프나" 광장을 지나갔다. 사실 이러면 마라케시 볼 곳 넘버 원투를 다 본 셈이다.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심장이란 뜻이다. 수도 라바트나 경제도시 카사블랑카가 아니라 모로코를 보려면 마라케시란 말에 난 맨 먼저 이곳으로 왔다.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열기로 확확거리고 광장은 온갖 소음으로 더위만큼이나 정신이 없다. 그중에서도 피리 부는 아저씨 소리가 유난히 요란한데 코브라? 같은 게 더워서 자는지 안 움직이니 모자로 툭툭 치면서 계속 피리를 부신다. 더러는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관광객들 눈길을 끄려는데 더위에 지쳐 보이는 그 원숭이도 불쌍하다.
암튼 마사지샵 가는 길에서 이렇게 볼 거 다 보며 광장에서 다시 연결되는 수크 전통시장의 미로 같은 좁은 길을 지나 샵에 도착했다. 샵에서 하맘이라는 전통 목욕을 하고 오일 마사지를 받았다. 하맘은 욕조에 들어가지 않고 물을 끼얹어 주며 우리식으로 때비누를 칠해놓고 나중에 밀어주는데 너무 시원했다.
나는 원래도 공중목욕탕을 안 가지만 4달 여행하며 쌓인 때가 있는지 매일 샤워를 했건만 암튼 한 커플 벗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이상 오일 마사지는 강약 mixed 해서 해 달라 했더니만 해 주는 아가씨가 진짜 성의껏 잘해주기에 내가 여행지에서 더러 어중간하게 받아본 마사지들 중에서 최고였다.
먹여주고 재워주기야 했지만 내 마음대로 끌고 다니며 때론 무리하게 부려먹은 내 몸에 대한 보상이라 여겼다. 4달 여행 피로를 푸는 값으로 우리 돈 5~6만 원이 비싸진 않다고 생각했다. 샵에서 다시 뜨거운 모로코 민트티를 주는데 여전히 그 맛과 향이 매혹적이었다.
마시고 나오니 제법 어둑해진 거리에 남은 열기는 있어도 하맘 하면서 땀 흘리며 노폐물을 내 보내서 인지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했다.
모로코국기와 왕자사진, 밤의 광장의 인파물결과 77미터 높이 모스크탑
에스까르코 달팽이를 파는 아저씨, 까먹고 국물도 더 주는 푸근한 모습, 광장의 민속의상과 춤
메디나의 이층 레스토랑과 음식에 들어가는 색색갈의 열매들이 신기했다
광장에는 매일 밤 나이트공연이 열리고 과일생즙 가게가 즐비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자마 알프나 광장으로 오니 물결 인파로 출렁인다.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앉도록 해 놓고 전통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로코인들이 밤의 광장을 에너제틱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그런 원 그룹이 여러 개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보다 보니 어느새 에티켓인 관람료로 주는 잔돈이 떨어졌다.
이튿날도 광장에 나와서 죽 같은 걸 팔기에 사 먹었다. 녹두와 콩을 넣은 건데 내 입맛에 맞고 맛있었다. 계산하려고 가격을 물으니 세상에 낮에 식당에서 먹은 타진 Tagine에 비해 우리 돈 500원으로 싸도 너무 싸다. 마라케시는 모로코 최대 관광도시이고 여행지라 레스토랑 가격과 여기 지역민들이 먹는 음식과는 가격차이가 큰 거 같다.
가족이 하는 가설 좌판 식당인데 할아버지, 아버지랑 탁자 치우고 주문받는 아이는 열 살 정도로 보인다. 씩씩해서 나중에 뭐라도 할 거 같은 아이에게 우리 돈으로 천 오백 원을 주고 거스름돈 천 원은 네게 주는 돈이라 하니 동공까지 커지며 좋아한다. 소년이 오늘 하루 기분 좋은 날이 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유럽에서 만원을 천 원처럼 쓰다가 모로코 와서 천 원을 만원처럼 쓰니 여행객인 나야 좋기도 하지만 한편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광장에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는 마라케시에서 가장 큰 모스크이자 이 도시의 랜드마크이다. 10세기에 건축되었으나 메카 방향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파괴되었다가 12세기에 다시 재건된 아름다운 건물인데 그 높이가 77미터나 된다.
한 때 프랑스 식민지여서 그런 지 유독 프랑스 여행객들이 많은 이곳에서 사람들은 이를 마라케시의 에펠탑이라고도 한다.
마라케시 메디나 골목을 헤맨 날
어제 쟈르댕 마자렐에서 사막의 용사였던 베르베르족에 대한 영상과 전시를 보고 그와 관련된 뮤지엄을 가려고 찾아 나섰다.
참고로 마라케시에는 박물관이 엄청 많다.
구글에 주소 찍으니 숙소에서 가깝다고 나오는데 정말 미로 같은 수크 Suke 전통시장 골목길은 구글도 잘 안 통한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는 길 물으니 여기 뮤지엄이 너무 많은데 어느 곳인 지 확실하게 말하라고만 한다.
그러다 한 분이 여기 짐수레 끄는 할아버지가 그 근처로 가니 따라가라 한다. 그래서 짐수레 끄는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할아버지가 데려간 곳은 다른 곳 Museum of Marrakesh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어차피 다 봐야 하는 곳이니 ㅎㅎ
박물관 건물이 차암 아름답다. 정교함과 섬세함은 아랍 건축양식에서 언제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이다. 모자이크 하나하나를 만들고 끼워가는 그 시간이 바로 내게는 정성과 인내의 결정체라 보인다.
유럽 대다수의 건축인 성당과 성들도 웅장하고 대리석과 스테인드 글라스도 아름답지만 이 쪽은 더 동양적이다. 내 생각에 인종은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이 있고 아랍족은 또 별개의 부류 같다. 아랍인은 외모로는 아시아보다 백인 쪽의 골격과 얼굴이라 보이니 내적으론 동양의 고요한 열정 같은 용기와 정적인 인내심이 있다. 그래서 어쨌든 동서양의 합작품 같다 ㅎㅎ
암튼 북 아프리카의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그리고 모로코는 아랍 민족들로 종교도 이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막에서 예전부터 별을 보고 이동하니 점성학이 발달했고 점성학을 하자니 정확한 계산이 필요해서 수학이 먼저 발달했다.
이들은 유럽 털북숭이 백인들이 아직 야만일 때 벌써 섬세한 건축과 생활양식 문화를 먼저 발전시켰다.
그러니 지금도 유럽 관광객들이 와서 보고 이들의 다르며 선진 된 문화를 느끼며 경탄하기도 한다.
헤메다 좁다란 가죽공방 골목까지 들어갔다. 모로코 전통문양 납작슬리퍼 신고 엄청 걸었던 날이다.
마라케시 뮤지엄을 보고 다시 출발하는데 얼마 못 가서 여긴 꼭 봐야 한다며 이끄는 말을 듣고 입구를 보니 코란학교다. 입장료는 5유로인데 들어가니 코란 공부를 하는 학교인데 건물이 상당히 크다. 중정에 작은 네모 연못처럼 생긴 것이 있고 3층 건물인데 교실처럼 쓰인 방과 회의실, 그리고 부모들이 아이를 보러 오면 자는 작은 방들이 2층에 있다.
방들이 작으면서 적당히 창은 있으나 대부분 이쪽 건물이 그렇듯 좀 폐쇄적이다. 대신에 건물 중간이 뚫려있어 위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있다. 방 속에 또 작은 방으로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기도실 같은 아주 협소한 공간도 있었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가 아닌 고요 속의 밀실기도가 필요하리라 여기며 둘러보았다.
나와서 다시 처음 가려던 뮤지엄으로 가려고 구글지도를 켰는데 더위 탓인 지 폰이 정말 스톱되었다. 그러면서 길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침부터 나서서 좁은 골목길을 몇 번을 돌았는데 도대체 메디나의 전통재래시장 골목은 종잡을 수 없는 곳이었다. 돌고 돌다 덕분에 가죽공예가 유명한 이 지역에서 직접 가죽을 다듬고 만드는 공방골목도 들어가 봤다.
골목길은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았다. 짐수레는 기다렸다 가야 하는 그런 곳에 공중 화장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작업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그래도 그런 곳에서도 몇 분들은 체스를 두고 있고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해 보이기보다는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자부심 같은 것도 보인다.
우울이나 체념 같은 고급? 스런 감상이나 감정은 안 보이고 그저 생생하게 살려고 하고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여 다행스럽다고도 여겨진다. 나는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을 대하면서 여기 사는 이 분들은 바보인가 아님 도통한 건가 하며 웃었다 ㅎㅎ
얼른 가서 폰 충전하고 숙소 풀장에서 몸의 열기를 식히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대로를 찾아 나오려는데 가다가 이젠 여행객도 안 보이고 현지인만 보이는 곳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걸으면서도 보니 또 하루 다섯 번 중 시간이 되었는지 일하다가도 모스크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흘낏 보니 다 같이 엎드려 절하느라 줄 지어 앉아 쳐 들은 엉덩이들만 보여 나도 모르게 또 웃음이 났다 ㅎㅎ
숙소 직원 스마일도 새벽 5시면 가까운 모스크로 가서 기도를 한다. 대단한 종교적 실행이자 실천이다.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포함한 라마단과 성지순례등 다섯 가지를 지키는 것이 무슬림으로서의 기본 의무다.
오늘 내가 길을 물은 횟수는 거의 스무 번 이상인데 다 하나같이 득달같이 친절히 답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폰만 쳐다보고 있어도 Lady, How can I help you? 하며 먼저 말을 걸어오니 과유불급인 면도 있지만 암튼 이곳 사람들이 그렇다. 게 중에는 얕은 상술로 호객하려는 것도 있지만 진심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도 길을 잃었다 어찌어찌 숙소 입구로 무사히 들어서니 세상에 그런 평화가 없다.
첫날 이 입구 들어올 때는 내 이번 숙소 망했다였는데 오늘 그 보다 더 복잡한 거리를 헤매다 들어오니 숙소 골목길은 완전 평화의 무풍지대다.
차는 들어올 수 없는 좁은 메디나 골목길에서 가장 힘든 것은 오토바이 굉음이다.
사람이야 비켜가면 되지만 좁은 골목마다 내달리는 오토바이는 속도도 있고 헬멧은 왜 이전 독일병사들이 쓰는 것을 하나같이 쓰는지 그 헬멧을 쓰고 마치 독일 전차부대 같은 굉음을 내며 오토바이들이 달리니 정말 정신이 없다. 첫날은 오토바이 퍽치기도 생각나서 잔뜩 쫄았는데 다행히 길에는 로컬 아주머니들, 아이들, 그리고 여행객들로 가득해서 안전한 곳이었다.
오늘 하루 어딜 가서 무얼 본 것도 있지만 생생거리 메디나를 리얼 체험한 것으로 만도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열사의 나라에서도 내 전용같았던 작은 숙소풀과 뜨거운 민트차에 달달한 간식은 천국같은 휴식이었다
숙소에 들어와서 풀에 몸을 담그니 cool & still 시원함과 고요함이 천국처럼 여겨지고... 내가 골목을 헤매고 다니던 것이 마치 아득한 반세기 전 일처럼 여겨졌다.
청색과 블루색깔의 조화가 시원한 마조렐 공원
마조렐을 매입했던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 그는 정원을 사들여 평생 꾸미고 애착을 가지다 그의 남자 친구랑 여기에 묻혔다.
프랑스부모에게서 알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부터 누이들과 어울리면서 그림, 디자인에 소질을 보였다 한다. 공원레스토랑에서 먹은 모로코 샐러드, 토마토 올리버 들어간 것은 어디나 맛있는 건강식이다. 내 모자와 옷이 공원의 청과 블루와 깔맞춤이다 ㅎㅎ
첫날 도착해서 먹은 타진 - 양고기가 들어간 모로코대표 요리다. 함께 움직이는 앞이 안 보이는 장애우들, 나는 이들을 용감한 영혼들이라 부른다
입장료가 8유로나 되던 비밀의 정원, 페르시아식 수로와 우물을 만들어 커다란 파라솔로 그늘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