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가 중세건물의 '붉은 도시' 였다면 테투안은 '하얀 비둘기'라는 별명의 도시다. 도시건물과 메디나 골목도 대부분 흰색이라 밝고 마라케시에 비해서는 조용한 편이다. 가까이에 사시사철 해변이 아름다운 휴양도시 Martil이 있어 그 곳 비치에 갔다.
숙소 아들 예신이가 친구들이랑 비치 가는데 같이 안 가겠냐? 물어왔고 숙소주인 아저씨도 내가 도착한 날 ‘너 비치는 언제 갈거냐?’ 당연한 듯 물어오셨다.
예신이는 내 아들보다 어리니 당연 그의 친구들도 비슷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어찌나 활기찬 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스페인 2, 이태리1, 모로코1 일행인데 내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말한다. 내가 빠지면 다 스패니쉬로 유창하게 한다. 이곳은 스페인과 지척이라 과거 스페인 식민지이기도 했다.
젊은이들과 같이 있어도 나이가 깡패이기도 한 한국이 아니니 나이 때문에 서로 눈치보지 않아 좋다. 다만 정신없이 스패니쉬로 떠들다가도 내가 가까이만 가면 순간 다시 영어로 자동 shift 전환된다. 그렇게 언어선택에서 너무 배려받는 거 같아 미안해서 해변에 가서는 혼자 산책도 하며 잠간씩은 빠져주기도 했다. 정말 어른인 내가 감탄할 정도의 신사다움 gentlemanship 이었다.
해변에서 합류한 예신 친구 모로코 아가씨 둘은 수영복 아닌 긴 드레스 차림인데 한 명은 일행들이랑 카드 게임하고 한 명은 그냥 가만히 있기에 내가 같이 물에 들어가자 꼬드겨서 막상 함께 물에 들어가니 너무 좋아했다 ㅎㅎ (드러나는 수영복을 안 입는 건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굳이 수영복을 입는다면 긴 래시가드위에 몸선을 가리는 가운을 입고 )
메일로 받은 숙소설명이 장황하여 첫날 또 헤멜까 봐 걱정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시내 메디나 중심의 건물이었고 숙소는 그 건물 3층에 있었는데 택시 기사에게 전번을 주니 미리 통화한 주인 아저씨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숙소설명에 버드 하우스라 되어있어서 갸우뚱^^했었다, 새집이라니 왠말!!하며 )
이번엔 홈 스테이식 숙소를 잡았는데 정말 오랫만에 가족적 분위기다. 조식은 원래 포함 되어 있지만 저녁은 아닌데 초대를 해서 한번은 같이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도 같이 먹자해서 시장에서 생선구이를 배 불리 먹고 와서 나는 괜찮다며 안 먹었는데 오늘 낮에 어제 저녁 안 먹은 네 몫이라며 음식을 데워다 가져다 준다.
3주 크루즈 선상에서 다양한 레시피로 나오던 치킨 요리를 한번도 안 먹었는데 와띠프 아줌마가 해 준 치킨 요리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것이 홈푸드의 위력인가 싶었다. 주인아저씨 무드는 72세인데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매사 조심시키고 오늘도 밖에 데려다 길 연습시키고 몇 가지 안내를 해 주셨다.
그간 주로 B.com을 이용해서 호텔조식 포함하며 여행했는데 홈스테이식 비엔비 bed n breakfast 숙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래저래 장점이 많은 것이 아무래도 홈 푸드에 가족 같은 돌봄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테투안도 지금 핫 시즌이라 택시도 모자랄 만큼 휴가철이지만 이 곳은 마라케시에 비해서 외국인들 보다는 주로 모로코 현지인들이 많이 오는 휴양지다. 예외는 여름마다 이 집으로 휴가 오는 스페인청년 하비에르같은 이 곳 매니아들이 있다. 하비에르는 런던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며 십 년 째 여기로 와서 모로코어를 배우며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 테투안에서는 사람들이 불어와 스페인어를 둘 다 잘 한다. 주인집 아들 예신은 영어까지 4개국어 능통이다. 주인 부부는 노우 잉글리쉬라 나랑 불어로만 얘기 하는데 덕분에 나도 오랫만에 녹쓸은 내 불어를 해 본다. 언어는 습관이라 안 쓰면 막히니 영어로만 하다 다시 버벅거리며 하니 재밌기도 하다.
여기 사람들에게 불어, 스페인어는 장식이 아니라 그냥 생활을 위해 필살기로 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층이나 조금 배운 사람들이 외국어 몇 개 하는 건 당연하게 여긴다.
일명 버드 하우스, 새 집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로얄 팰리스와 가장 큰 번화가 모하메드5세 거리와 연결되어있다. 숙소는 이 건물 메인입구로 들어가 3층 아파트에 있었다.
건물 꼭대기층에 건장한 남자가 불사조같은 새를 올라타고 있다. 그래서 이걸 설명하는 말이 장황해서 의아했었는데 와 보니 정말 그랬다. 택시기사들도새의 집 DAR TAIR 하면 다 알아들었다.
숙소 건물옆이 바로 로얄 팰리스광장이다.
사람들이 건물 귀퉁이 그늘에 앉아 쉬고 광장에초록별이 있는 붉은 모로코국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하얀색 건물위주인 테투안 거리 풍경
처음보는 과일이 궁금해서 아저씨께 깍아달라 해서 세 개나 먹었다. 적당히 달고 안에 씨앗이 있는데 먹을 만했다. 일반 음식점에서 시켜먹은 샌드위치와 무슨 정어리조림같은 것 , 모로코 참외
아래는 피시앤 칩스인데 런던에서 먹은 거 보다 신선한 맛으로 맛있고 엄청 물가가 싸다 ㅎㅎ
낯선 곳에 와서 일주일을 묶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없다'라고 하고 불교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라며 '무상'이란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러니 모르던 곳에 와서 머물러 본 나의 생각은 무엇이 달라졌나?....
내가 지금껏 거쳐 온 대도시는 안 가 본 곳이기에 한번은 가 봐야하는 통과의례같은 것이었고 사실 나는 소도시를 좋아한다. 인구 40만 미만의 테투안은 그런 나의 취향과도 적합하다.
숙소건물이 Palais Royal 옛 왕궁 바로 옆이라 수시로 그 왕궁 광장에 나가 그늘에 앉으면 바람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냥 바람 멍 때리며 앉아있다.
나도 같이....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며 낮에는 광장 주변 카페에서 모로코 티 한 잔 마시며 멍 때리는 것도 좋았다.
지하는 대형 주차장인 넓직한 곳이다. 그기서는 산 위동네가 그대로 보이기에 아이들, 가족들, 모로코 여행객들로 붐비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기만 하다.
중앙에 파비용같은 작은 건축물이 있고 옆에는 그라나다란 큰 카페가 있다.
광장 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나는 카페 실내로 가지 않고 아랍 아주머니들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벤치에 앉는 걸 즐겼다. 낮 동안 달궈진 돌 벤치의 따끈따끈함이 엉덩이를 온열 찜질하는 거 같아 기분도 좋다. 특히 옆에 알아듣지는 못해도 수다 떠는 아주머니들 말소리는 마치 내가 한국 동네 찜질방에 온 거 같은 착각을 느끼며 잠시 혼여자의 객수를 잊는다.
이렇게 왕궁 광장이나 페당이나 넓고 사람이 많아도 마라케시 광장에서처럼 공연이나 관광객을 위한 물건, 음식 파는 것이 없어 더 좋다. 외국인은 거의 없고 내국인들만 있는 곳, 일주일 동안 나 같은 동양인은 한 사람도 못 봤다. 물론 테투안으로부터 양쪽 50킬로에 있는 큰 도시 탕헤르와 쉐프샤우엔 경우는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많다.
도시는 이런 성벽으로 에워쌓여 있다.
여긴수공예품으로 유명하다. 이전의 베틀같은 곳에서 카페트와 직물을 짠다. 그런 공방 같은 곳을 아저씨가 데려다줬다.
가정집인듯한데 이렇게나 빨래가 많았다. 세탁업을 하는 곳인지도...
사람들은 저녁이면 페당광장으로 바람을 쇠로 나왔다. 광장 위 하얀건물들이 비둘기의 도시라 할 만하다.
골목길도 하얀색으로~~집앞에서 노는 아이들~ 우리 이전 풍경처럼 정겹다
수크 재래시장 천정 가리개~~바람이 통하게 하면서 햇빛도 적당히 가린다. 비 오는 날은 저 위에 무얼 덮는다 한다
내가 원했던 것이 조용하게 쉴 장소였는데 이곳 테투안을 잘 점 찍어 온 거 같고 이 곳에서 충분히 쉰 거 같다. 주인 아저씨 무드와 아줌마 아와띠프의 소탈하고 시원시원한 친절함도 내 집같이 편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아줌마가 농담처럼 남편에게 ‘입 다물어, 앉아, 손들어’하고 소리치면 아저씨는 또 웃기려고 충견처럼 그대로 따라했다. 나는 아줌마를 보며 소극적이고 순종만 하는 무슬림 아내라는 나의 편견을 내려놓았다. 가정에서는 호랑이도 될 수 있는 아내였기에.
불사조 피닉스같은 새를 타고 있는 사람이 꼭대기에 있는 이 건물,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기억날 거 같은 테투안이다. 여행을 하고 나면 풍경과 건물은 사라져도 만났던 사람은 기억에 남는다.
새벽 5시 아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다. 아파트는 긴 복도와 메디나 골목처럼 오밀조밀 방과 거실이 많은 넓은 곳인데 주인 아저씨 코 고는 소리만 나즈막히 들린다.
열어둔 창으로는 벌써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부산한 소리가 들린다.
새 소리도 들린다.
모두 이 지구별 사는 동안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처음 방에 들어서면서 에어컨은? 하고 물었다. 왜냐면 마라케시에서는 리야드 창이 폐쇄적이라 에어컨을 켜고 있어야 했기에. 여기서는 선풍기도 아예 없는데 창 열고 낮에는 방문까지 열어두면 바람이 정말 사통오달 그리 시원할 수가 없어 선풍기도 아예 필요 없었다.
항구는 아니지만 바다까지 5킬로고 산 정상 가까운 해발이 높은 곳이라 어디서든 바람이 불어오던 곳,
테투안이 내게는 하얀 바람의 도시로 기억 된다.
앞줄 선글라스가 예신이, 그리고 그의 친구들. 해변에서 머리에 이고 다니며 도넛같은 빵을 파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