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이 소도시이긴 하나 그래도 박물관을 안 보고 가면 뭔가 내용물이 빠진 거 같아 보고 가려고 찾아 나섰다.
건물 입구에서 구글로 찍어보느라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무드 아저씨가 Tu ne me connais pas? '너 나 몰라' 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오늘이 금욜이라 모스크에 기도하러 간다 하신다. 재밌는 것은 유대인이 사바 토욜을 안식일이라 정해서 지내고 기독인들은 일욜을 주일로 정했고 맨 나중 생긴 종교 이슬람은 금욜을 예배일로 정했다는 거다.
암튼 사원 가는 길에 나 박물관 한 군데 데려다주고 가라니까 바로 집 가까운 Archaeological museum에 데려다 주신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내가 관광객 덤태기 쓸까 봐 입구까지 따라오셔 입장료등 꼼꼼히 챙긴다.
입구직원 왈, 한국인은 첨 이란다. 왜지? 여기가 관광도시가 아니라서? 한국인들이 소문난 쉐프샤우엔 보러 가면서도 여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곳인가 보다 싶었다.
일찌기 이 곳은로마 제국의 요새도시로서 건설되어서 당시 문화수준을 누렸던 흔적을 본다. 어디서나 유물로 등장하는 그릇들과 장신구 그리고 특이하게 모자이크가 많다. 아랍의 정교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2세기의 모자이크들이 방과 그리고 특히 정원에도 그대로 설치되어있다. 한 조각 한 조각으로 퍼즐처럼 그림을 완성했던 모자이크를 보며 그림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세심한 작업에는 한결같이 감탄 한다.
그렇게 고고학 박물관을 보고 다시 구글에서 찍어 민족 박물관Ethnographic museum을 가 보려 나섰는데 메디나 수크시장 안 골목으로 안내한다. 아 여긴 바로 헤메라고 있는 곳인데 ㅎㅎ 마라케시 기억을 떠올리며 몇 바퀴를 뱅뱅 돌았다. 그러다 맘에 드는 선글라스를 하나 사고 산 김에 주인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반은 맞게 가르쳐주신다.
그래서 결국 메디나 전통시장 수크 골목안에서 깨알같은 글자로 적힌 뮤지엄 화살표시를 따라 도착 성공했는데 들어가니 금욜이라 입장료 공짜란다. 모하메드란 젊은 직원이 안내를 하는데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히 설명을 한다.
사실 찾고 헤메느라 점심을 못 먹고 배가 고파서 대충 보고 나가려했는데 설명 중간에 말을 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일대일로 이렇게 성심껏 질의응답식으로 설명을 해 주니 좋기도 하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설명을 듣고나서 오늘 입장료 대신 봉사료를 주고싶다니 좋다한다. 통통하게 귀엽게 생긴 청년인데 여기 일 한지 얼마나 되었냐니 4개월이라 한다. 어쩐 지 그렇게 보였는데 역시 ㅎㅎ
오늘도 잘 했으니 앞으로도 점점 더 잘 할거라 격려해주고 나와서 허겁지겁 케밥 샌드위치랑 감자튀김을 레몬쥬스랑 폭풍흡입했다.
암튼 박물관 투어는 이 곳을 더 알게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모든 걸 집약해놓은 그 지역의 박물관은 필수코스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오기전에는 모로코는 그냥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내가 알고있던 다 였는데 그러나 프랑스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특히 이 곳 테투안은 스페인 지배령이었다. 그리고 모로코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 난 후 이 지역도 독립이 되어 모로코 왕국으로 복속되었다.
쉐프샤우엔처럼 이 곳 테투안도 15세기 레콩키스타 이후 기독교의 종교적 탄압으로 무어인, 유대인들이 대거 이 곳으로 이주해왔고 그 후에도 스페인에서 무어 이슬람인 추방이 있을 때마다 17세기 19세기에도 연이어 이 곳으로 이주해왔다. 이 도시는 겉보기의 편안함과 달리 대대로 유명한 '해적소굴'이기도 했다 .스페인과 유럽에 대한 복수로 난민들은 지역을 잘 아는 점을 이용해서 해적으로 활동했다.
선악의 구분은 각자 입장에서 하는 거고 수 천년 살던 스페인을 출신만 아프리카지 이미 조상 몇 대가 스페인에 살던 아랍계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다시 내 쫒은 스페인, 그리고 그렇게 문화는 이미 스페인이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라 받아주지 않고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죽이려했던 이 곳의 아랍인들. 이런 역사의 질곡이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니 그런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해적도 되고 수공예업도 농사도 지으면서 살아온 곳이기도 했다.
도시는 7개의 성문이 있는 5키로의 성벽으로 둘러쌓여있는 메디나가 규모는 마라케시에 비해 작지만 가장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유네스코 문화보존 지역이다.
내가 대충 여행객으로 둘러보고 지나가면 되지 남의 나라 소도시 역사 알아서 뭐하냐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개략으로도 알려하는 편이다.
역사를 모르면 내가 실은 주인이면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지 아님 내가 종이면서 주인 땅문서 훔쳐서 주인을 내 쫒고 살고 있는 지 천지분간을 모르면서 살다간다.
물론 그거 모른다고 인생을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니지만 근본 없는 것이 어디 사람이냐는 말도 있듯이 뭐든 근본을 알고 이치를 알고 사는 게 더 좋다 여기기에 나는 역사는 알아야한다 본다.
내가 조금 들여다본 테투안의 역사도 놀랍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알고나니 이 multicultural 다문화적인 도시가 더 잘 보이고 이해가 된다. 물론 이 곳의 사람들, 이집 주인들 마인드까지도 ㅎㅎ
마지막날 아침 괜히 아쉬울 거 같아 대충 세수하고 왕궁광장과 페당광장을 한번 더 갔다.
갔다 와도 주인집은 아직 한밤중이다 ㅎㅎ 여기 시간으로 무드 아저씨네는 아침 9시반쯤 나만의 아침을 채려주러 일어나셨다 다시 들어가 주무신다. 그리고 겨우 일어나 커피만 마시고 첫 끼니가 오후 두 시 이후 그리고 저녁은 밤 9시 이후니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난다.
나는 태생부터 아침형 인간이라 아무리 전날 피곤하고 잠 못 자도 상관없이 새벽에 일어난다. 소천하시는 날까지 새벽에 일어나셨던 친정 아버지의 근면성과 부지런함의 유전자도 물려받은 거 같아 감사한다.
암튼 아침에 광장 한 바퀴 하니 넘나 상쾌하고 좋았다. 어제 밤 그 군중들은 어디로 가고 청소하는 아줌마 혼자다. 그리고 산위 동네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일터로 가는 몇몇 사람밖에 안 보이는게 바람만 어제 저녁처럼 그대로이다.
맛이 그럭저럭이었던 모로코 빵과 아침에 마시면 속이 확 풀리던 박하차, 이 모로코티는 모닝커피보다 더 좋았다.
십년째 이 집에 휴가를 오는 세바스챤과 주인집 아들 예신이, 그리고 무드아저씨 부부, 저 속에 가족처럼 며칠 지낸 내 모습도 모로코인같다 ㅎㅎ
무덤지역~ 화장을 안 하고 매장을 한 이 곳은 도시 크기의 거의 사분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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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위에 모자를 쓴 여인들~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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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모자이크 그림이 상당히 자유로운 게 그리스로마신화인 지, 내용은 그런데 형식은 아랍의 정교함이 돋보인다.
박물관 정원 벽에도 문화재인 모자이크가 있다
시장의 올망졸망 양파망~ 나는 여행하면서 이런 사소한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구시가지 메디나 골목과 입구에 늘 있는 손을 씻고 마실수 있는 수도장치
이 커단 타피스리를 완성하기 위해 여인네들은 몇 번의 한숨을 쉬었을까나!
한땀 한 땀 손 수공예품. 백년 전 타피스리~~
차를 마실 때 마운틴 산이라 불리는 큰설탕덩어리를 쪼개기 위한 특별한 해머, 문양도 아름답게 만들어놓았는데 참고로 달달한 모로코 박하차엔 설탕이 꼭 들어간다.
베르베르 혹은 모로코 병사 복장
유대경전의 일부인 토라를 넣는 곳~ 이 곳은 유대인들도 피난와서 살던 곳이다.
전통 신부 의상
작은 아이가 북을 두드리고 큰 아이가 노랠 부르는데 어찌나 구성지게 하는 지...내 옆이라 한참을 들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 근처 엄마와 어른들이 와서 괜찮다해서 찍고 웃으며 동전을 줘도 되냐니 엄마인듯한 분이 절대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셨다....나는 단지 고맙고 아이들의 공연에 대한 감사를 가장 간단한 자본주의적 표현으로 한 거 뿐인데 혹시라도 결례를 한 것인 지도...그 아주머니를 보며 또 다른 모로코를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