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여행 3일째는티엔즈팡이라고 이전 프랑스 식민구역이었던 조계지 근처를 둘러보았다. 이쁜 전시공예품들과 소품들, 그리고 전통상품들이 있는 우리나라의 인사동같은 지역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반나절을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그기서 중국 전통치마를 사고 실크 스카프도 샀다. 여자들에게는 쇼핑을 즐기며 차도 마시고중국을 좀 더 세밀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섬세한 유리 공예품 수준이 놀라웠다
중국에선 White Rabbit 하얀토끼가 브랜드화 되어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내가 토끼띠라 같이 찍어봤다
골목상점이 엄청 많다
중국 전통 옷 가게
건물 전체 색갈이 레드다~Red is lucky in China
신천지 상업구역
신천지 카페 음식적 거리
나는 티엔즈팡에서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들과 남편을 생각해서 발길을 재촉하고 함께 상해의 압구정동 같은 곳이라는 핫 플레이스인 신천지를 갔다. 맥주와 커피값이 우리나라와 거의 같았다. 중국의 부자가 남한 인구만큼이라니 그래서 비싸도 이런 곳이 북적대는 구나 싶었다.
신천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임시정부청사를 찾아갔다. 가니 점심시간 시작이어서 문이 닫혀있었는데 우리는 식당 찾아가기는 어중간한 시간이라 잠시 맞은 편 쇼핑센타에서 쉬며 기다리다가 청사를 보고 나서 늦게 점심을 먹었다. 지난 날 나라를 잃은 백성들과 동지들은 배고픔과 설움과 추위와 더위도 가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3층 건물이었는데1층, 2층, 3층 집무실 등을 둘러보았다. 정부청사라기보다는 초라한 가정집 정도 규모였다. 1919년 3.1 운동의 결과 1919년 4.11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멋진 님들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모두 전시되어있었다. 소박한 차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고, 주방은 없었다. 밥을 해 먹을 수도 없을 거 같은 좁은 공간의 건물이었고 김구 주석의 집무실에 있는 침대도 작고 볼품이 없었다. 게스트룸 같은 곳에도 좁은 공간에 작은 침대가 서 너개 놓여있을 뿐이었다.
계단 또한 아주 가파르고 좁게 되어있어서 오르내리면서 나는 몇 번인가 본능적으로 만약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온다면 과연 도망칠 수 있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살펴보니 출구 문이 계단 옆에 있긴 했다. 더러 계단을 급히 오르내리다 다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이 겪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 엄혹한 세월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넘어서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실내에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나는 임정 청사를 다녀와서 그 좁고 가파른 계단이 계속 뇌리에 남아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의 예상처럼 좁은 계단에 관련된 슬픈 글이 있었는데 게다가 김구 주석 가족이야기였고 가슴이 저렸다.
“백범 일가 네 가족은 상해 시절 한때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최 여사가 둘째 신(信)을 해산하고 몸조리를 하던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최 여사는 시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해산한 며느리 산후조리를 위해 세숫물을 떠다놓는 것을 황송하게 여겨, 손수 물을 길러 가다가 계단에서 실족을 했습니다.”
계단에서 실족한 후 최여사는 폐렴까지 겹쳐 그 후 1년을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다. 최 여사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에 따르면 임종하기 전에 남편인 백범을 부르려고 하자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당시 홍구 폐병원은 프랑스 조계(租界) 밖에 있었고, 일경들이 백범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음에도 백범은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백범의 동지들이 의연금을 추렴해 최 여사의 장례를 치르고 묘비까지 세웠는데 최 여사의 그때 나이는 서른여섯, 백범과 혼인한 지 18년째였다.
이후 백범은 새장가를 들지 않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살다가 1949년 안두희가 쏜 흉탄을 맞고 서거했다. [출처] 최준례(崔遵禮) 여사, 안악군 황해도 출신, 백범 김구 선생 부인, (1889~1924)|작성자 이동현 이북도민작가
우리는 거름이 된 그 세대위에서 꽃 피고 자라났다. 그러니 우리 또한 앞으로 그분들이 그리도 소원했던 독립은 이루었지만 분단된 조국을 넘어서서 거름세대가 되어 살만한 나라, 기술,자원,군사력,인구로 G5에도 들수 있는 위대한 통일 코리아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되지 않을까?
프랑스 조계지로 넘어와서 멋진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여전히 프랑스어 간판의 식당과 베이크리가 지금은 역사적 공간으로 관광지로 여겨지겠지만 남의 나라 남의 땅을 침탈해서 자기네 것처럼 사용하고 갔다는 것이 씁쓸하게 여겨졌다.
프랑스어로 된 간판이 있는 가게
프랑스 조계지에 있던 옛 건물을 이용한 카페
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오신 세 분, 즐거운 수다가 느껴져서 찍어보았다. 상해 난징루 어린이 장난감 가게 앞
신혼 침구세트도 빨강, 인민공원앞 길거리 풍경, 난징루 자본주의 냄새가 팍팍나는 도로
상해인민공원
인민공원에서 빨간표지판은 지금 장기 시합중이란 뜻~장기 삼매경
나는 이 놀라운 진풍경에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군집해있고 이런 글들이 즐비했다. 자세히 보니 혼인광고였다. 우리로 치면 결혼정보회사 기능을 가진 글을 두고 광고를 보러오는 사람들과 광고대행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자세히 읽혀지는 내용을 보면 "83년생 키 178 남자, 87~91년생 키 165 이상 상해여자구함등" 그리고 연락처는 주로 모친 전화번호가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도 자주 보이고 유능하고 인품좋은 남자를 구한다는 말도 보인다. 자식을 혼인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마음이 이렇게 이런 식으로도 표출되는구나 싶었다.
상해인민공원의 아줌마노래가 구성졌다
아들이 상해에서 우릴 맞이해준 고모,고모부를 위해 맛난 저녁을 대접하려고 검색을 했다. 중국어를 모르지만 따종 디엔핑이라는 중국의 맛집을 소개하는 어플을 사용하여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찾아보았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거가 어떻겠냐?고 해서 다들 좋아하며 갔는데 우리 입맛과는 잘 안 맞았다. 나는 차라리 한국에서 먹는 베트남 샤브샤브가 훨 맛있다고 말했다.
훠거집에서 국수추가하면 직접와서 만들어넣어준다
상가 건물안의 음식점 표지판, 내가 본 가장 큰 상해 신세계 백화점, 훠거집 상차림
난징루 거리(남경로)
동서양을 통틀어 중국요리는 다양성으로 유명하다. 흔히 중국의 4대요리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 쓰촨(四川) ,광둥(廣東) 요리를 일컫는다. 넓은 땅의 지방별 기후, 풍토, 산물에 따른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여 4대 요리가 형성되었는데 황허강 유역 및 기타 북방은 베이징 요리를 대표로 하고, 양쯔강의 하류는 상하이 요리를, 양쯔강의 중상류는 쓰촨 요리를, 쭈강 유역은 광둥 요리를 대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나 생선 등 주재료에 따라 전문 식당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한 식당에서 육해공이 모두 준비되어 다양한 음식을 회전판에 올려 함께 나누어 먹는 편이다. 상해 요리는 다양한 지역 출신 사람들이 모인 국제 도시답게 호텔 조식처럼 음식도 누구나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역마다 특색을 나타내는 말이 있으니 "남담북함 동남서랄"이라고 남쪽은 담백하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달콤새콤하고, 서쪽은 맵다고 하는데 상하이의 음식은 남쪽 지방답게 담백함이 특징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