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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l 18. 2023

고향 서나무 아래에서

내 고향 서나무

나는  어렸을 적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고향 경주에서 대구로 나왔다. 그래도 내 유년의 열 살 전 기억은 고향 마을 산천과 사람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어쩌면 그런저런 추억과 푸근했던 그 기억의 자양분으로 지금의 나도 있는 거라 본다.


고향마을도 동네 바로 앞에 KTX 신경주역이 들어서고 난 후 변화가 많다. 그래서 마을의 수령이 3~400년이 넘는 나무가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번 모이자고 해서 다녀왔다. 시골 마을이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 마을도 경주 김 씨 씨족촌이 되다 보니 거의가 다 언니, 오빠, 아재, 고모등 일가친척들이다. 다들 고향 떠난 객지생활이지만 마음만은 고향을 기억하려고 나무 보호수 지정을 위해 모였다.


나는 아침 일찍 함양에서 대구로 가서 친구를 만나 친구의 무거운 떡 보따리를 같이 들고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내려갔다. 비가 많이 와서 기차도 연착을 하고 이런 날씨에 과연 나무 아래에 앉아 편하게 얘기나 나눌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나무의 정령님들께서 도와주셨는지 우리가 머무는 두세 시간 동안 비를 멈춰주셨다.


그렇게 다녀와서 친구가 50년 만에 다시 뵌 아재, 고모들 이야기를 톡방에서 하기에 나도 감동이 밀려와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몇 자 올렸다


“50년이면 반세기다~~ 하루에 그런 시간의 흐름을 느꼈으니 대단하지... 어렸을 적 종조할아버지 집 앞 거랑가에 너랑 앉아 놀고 있으면 지나가던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꽃님아, 별님아 불러주셨지, 너더러 꽃님이라 하고 내게 별님이라고... 그 기억인지 늘 별을 가슴에 품고 살다 필명도 그리 했고... 꽃님이 말 그대로 꽃을 사랑하고 삶을 꽃밭 가꾸듯 사는 내 친구 희야를 응원한다!


유년의 고향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빠르게 늦게 떠나왔지만 늘 마음의 거름이 되어주었고 이제 때가 되어 다시 찾아보게 되니 더욱 소중하다.


자박자박 걸어 큰 집 갈 때 동네 한가운데 향나무, 학교 갈 때마다 지나쳐야 하는 서나무, 고향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지. 뒷산 파디미는 알프스처럼 높게만 여겨졌는데 지금도 잘 생긴 산이니 차암 좋은 꽃내 화천 안태봉이다. 좋은 곳에 좋은 기운으로 우리가 태어났으니 마지막 한 톨의 시간까지도 잘 쓰고 살다 가자~ 파이팅!!^^”


우리 동네 이름 태봉은 신라 시대 태자의 태를 묻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그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고천 시냇가에는 각양각색 들꽃들이 지천이어서 김유신 장군이 꽃내, 화천으로 지었다는 설이 있다.


마을 가운데 아주 오래된 쌍갈래의 향나무가 있고 거기에  두 개의 우물이 있다.  나무 바로 아래 옛날 우물은 쇠죽을 끊일 때나 농업용수로 사용하였고 그 위에 새 우물은 식수로 사용하였다. 김장 때나 잔치등 마을 큰일을 치를 때는 우물주위에 마을 아지매들로 북적였다.


우물 옆에는 사람이 들 수 없는 큰 돌이 하나 있었는데 김장 때면 돌 위에 절임 배추 등을 올려서 물을 빼기도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정화수를 올려놓고 소망을 빌기도 한 곳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는 서나무가 서낭나무처럼 우뚝 서 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두 벌 논 매고 나서 ‘나다리’ 행사라고 집집이 어머니들이 음식을 해서 머리에 이고 와서 어른 아이들이 먹고 즐겼다. 물론 어릴 적 나는 그 나무가 너무 높아서 올라가서 노는 오빠들을 부러워만 하고 올라가지 못했고 내 친구는 오빠들이 안 올려줘서 울기도 했다.


앞으고향마을이 어떻게 변해 가더라도 나무만은 그 자리에 서 있어 사람이 바뀌고 건물이 바뀌어도 유년의 마음이 깃든 곳이 보존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무를 인연으로 다시 만난 언니, 오빠, 아재, 고모들과는 이제 일 년에 한 번은 꼭 만나서 나 다리 먹기 행사처럼 하기로 다들 약속을 했다.

그렇게 고향을 만나고 돌아온 날, 행복감에 새벽잠을 뒤척이다 깨니 마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뵙고 온 거 마냥 마음이 포근했다.



참고 나다리

~‘나다리’는 ‘낯을 알다’~'낯알이'~라는 말이 변형된 것으로 원래는 농번기에 모내기 등의 농사일을 품앗이로 함께 한 사람들 간에 얼굴을 익히고 노고를 치하하려고 시작되었다 한다. 그런 유래를 가진 행사가 동네에서는 마을주민들이 하루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쉬어가는 날로 자리 잡은 거 같다. 현재 울산광역시는 ‘냉천마을 나다리 먹기’ 행사를 전통문화계승의 일환으로 육성하고 있다 한다. (230715)



나무 아래 간단한 예를 올렸다


우리 모두  단체사진을 남겨야지!^^

다 같이 나무 수치 측정하기

어린 시절 놀이터요 쉼터였던 곳 나무에 감사드리며~~~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따라주는 막걸리가 맛있다!


나무도 건강 보존, 우리도 함께 건강하게 살다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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