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연 작가의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브런치에서도 글 한 편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문하연(화양연화) 작가님의 북토크에 우연히 참여했다.
보통은 작품을 읽었거나, 개인적 친분이 있거나, 최소한 관심이 있어야 참석하는 자리지만
줌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북토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반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작가님의 자연스럽고 따뜻한 말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차분하면서도 마치 책 제목처럼 딱 ‘명랑한 ’ 톤이었다.
분홍빛 옷차림에 안경 너머로 살짝 피곤해 보이던 모습도 불편하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의 피로처럼 느껴졌고, 가끔 웃을 때 드러나는 아이 같은 표정에 살짝 마음이 놓였다.
작가이기 이전에 느껴지는‘사람’의 온기였다.
며칠 뒤 책을 빌려와 아침 눈 뜨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휘리릭 절반을 넘길 즈음 남편이 아침 먹으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명랑한 중년>은 처음엔 웃기고, 읽다 보면 찡하다.
인생의 매운맛과 쓴맛, 그리고 끝에 남는 달큰함까지 오미자 같은 맛이다.
젊고 감각적인 필체, 흉내 내고 싶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리듬감이 무엇보다 매력적인데,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는 않다.
결국 감동은 문장력 이전에 삶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이 웃기면서도 마음을 치는 이유는,
글 곳곳에 작가의 진한 삶의 체온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남들보다 1.5배 속도로 움직이며 과로를 불사하던 이야기.
결국 병동으로 옮겼지만 환자로부터 결핵에 감염되었던 경험까지. 그런 시련 속에서도 버텨온 근성은 훗날 글쓰기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듯하다.
쉬어도 몽롱한 3교대 근무와 해도 해도 쌓이기만 하는 일. 찢어진 환자 꿰매고 나면 약물중독 환자, 그를 위세척하고 나면 교통사고 환자. 아무리 뛰어다녀도 느리다. 몸이 여기저기 부딪혀 멍드는 건 예삿일. ~19쪽
일을 할수 록 간호사가 천직이라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살을 부딪치며 깨닫게 되는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이어서 감히 돈으로는 교환할 수 없는 값진 뭔가를 남긴다.
삶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어져 지켜야 할 중요한 것과 흘려보내도 되는 사소한 것을 구별 하는 힘이 생긴다.
~ 39쪽
학창 시절 언니와 함께 라디오에 원고를 보내 경품을 타고,
대학 시절엔 뜬금없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인기상을 받던 에피소드.
비전공자임에도 『다락방 미술관』을 쓰고,
오마이뉴스 기자상(게릴라상)을 두 번이나 받은 이력은 이미 예고된 재능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원 회식 자리에서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불러 최고상을 받고, 그 자리에서 훗날 두 아들의 아빠가 될 장래남편을 만나게 된 이야기에서는 웃음과 찡함이 동시에 터진다.
말 그대로 ‘명랑한 중년’의 서사다.
이후 밀쳐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 들고, 대학생들로 가득한 백일장에 참여했을 때의 인터뷰도 인상 깊다.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 기분이 어떻습니까?”라는 다소 황당한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경쟁하러 나온 게 아니라, 평생의 꿈에 도전하러 왔습니다.”
나는 작가님의 이런 당당한 태도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타고난 감성과 끼, 그리고 예민함으로 삶의 아픔을 콕 집어 표현하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균형감각.
남편 이야기는 무뚝뚝하게 흘려보내지만, 시아버지를 향한 며느리의 애정, 북극곰 같은 아들을 향한 애틋함,
친정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사랑까지 이 책을 덮고 나면 눈물 한 스푼, 그리고 내 얼굴을 환하게 하는 미소가 남는다.
문하연 작가는 창작 오페라 〈아파트〉를 집필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했고, 네이버 플레이리스트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되어 현재 드라마와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에세이, 예술, 소설, 대본을 넘나드는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근작 소설 <소풍을 빌려드립니다>는 국내 소설로는 유일하게 국립중앙도서관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웃기지만 가볍지 않고, 따뜻하지만 여운을 주는 책. <명랑한 중년>은 중년을 위로하면서 삶 속에 명랑해질 용기를 준다.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께 추천드린다. 웃다가, 찡해질 준비를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