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해도 좋은 마음에 대하여
말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오지만,
글은 최소한 한 번 더 곱씹은 뒤에야 문장이 된다.
그래서 글에는 마음의 침전물이 남는다.
나는 효율과 결과를 중시하는 성향의 사람이다.
시간과 동선, 비용을 늘 계산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무용함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책을
과연 내가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을까 잠시 의심했다.
그러나 책을 손에 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표지의 색이었다.
강렬한 원색이 아니라, 살구빛에 가까운 파스텔톤.
그 색을 보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풀렸다.
돌아보면 내 삶도 그랬다.
젊은 시절엔 강렬한 색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이제야 알겠다.
내게 어울리는 빛은 봄빛, 파스텔톤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내 자서전의 제목도 ‘봄길 속의 여정’이다.
유재은 작가가 선택한 살구빛 역시,
아마도 글을 대하는 그녀의 마음빛일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말한다.
말은 오해를 낳지만,
글은 정제된 문장 안에서 마음을 온전히 건넬 수 있기 때문이라고.
글을 쓰는 동안 삶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지고,
자신을 이해하게 되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결국 글쓰기는 ‘나’를 향해 건너가는 다리이자,
타인을 향한 이해의 통로다.
58개의 색갈 표현으로 구성된
작가님의 책을 대하면서
나는 이전부터 궁금히 여겼던 색갈에 대한
영어와 한글표현의 차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다.
곱다, 노르스름하다, 푸르딩딩하다
같은 우리말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감정과 상태를 함께 담는다.
영어는 색을 ‘분류’하고, 한국어는 색을 ‘느낀다’.
그래서
한국어에는 영어로 정확히 번역되지 않는 색 표현이 많다.
우리 한국인에게 색깔은 겉으로 드러나는
보여지는 대상이기 이전에 마음과 정서적 느낌이었던 것 같다.
작가님의 이 ‘무용함이 좋은’ 책에서
보여진 색깔 표현도
서양색 빨주노초파남보 보다는
그런 한국인의 정서가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서양화의 선명한 채색보다는,
여백이 살아 있는 동양화에 가깝다.
꽉 채우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 머문다.
그것들은 색이자 시간이고, 기억이며 관계다.
작가는 일상을 관통하는 빛을 통해 삶의 속도를 늦추고,
머무는 법을 가르친다.
빠르게 달리는 세계에서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읽힌다.
작가는 ‘무용함’을 성과 없는 시간,
쓸모없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은 그런 여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목적 없이 머무는 시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순간들이
다음 걸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퇴직 이후의 나를 떠올렸다.
30년 넘게 유용함으로 증명해야 했던 삶을 내려놓고,
여행과 글쓰기를 선택했을 때
나 역시 ‘무용한 삶’을 선택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무용함은 나를 소진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살렸다.
유재은 작가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고,
이제는 자신만의 글쓰기를 위해 시간을 내겠다고 한다.
돈이 되는 글쓰기 강의보다,
삶의 본질과 그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를 택한 선택.
그래서 이 책은 이제 아름다운 희망을 말한다.
"무용해도 좋은"은 무용함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오래 유용함만을 좇느라
잃어버린 감각들을 하나씩 되돌려준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마음,
결과를 내지 않아도 존재해도 되는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글의 힘을.
나는 솔직히 무용한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더 예찬을 늘어놓고 싶다.
그러나 여백을 좋아하는
작가님 글의 원뜻을 위해 이만 줄인다.
우리를 진정 살아있게 하고
숨쉬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여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