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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l 31. 2023

중앙아시아 10~ 카자흐스탄 대자연의 품 속으로~!

콜사이 국립공원과 차린협곡

2023년 6월 10일


카자흐스탄 2일째, 사티마을에서 자고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콜사이 국립공원으로 간다. 

국립공원은 산산맥의 북쪽에 있으며 공원 안에 세 개의 산정호수가 있고 높이가 해발 1900~2700 미터라 사람들은 호수 주변으로 말을 타고 트레킹을 즐긴다. 우리도 일정이 하루 더 머물 수 있었다면 말을 타고 세 호수를 다 돌아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던 게 많이 아쉬웠다.


차를 타고 오면서 늘 우리를 따라오는 텐산(天山) 산맥은 "하늘에 이르는 산"이라는 뜻이다. 암튼 이번에 탄, 탄, 탄국을 여행하면서 이 산맥을 계속 만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진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과 그리고 중국등 여러 국가에 걸쳐있는 이 산맥의 만년설과 웅장한 봉우리가 이제 중앙아시아 하면 내게 맨 먼저 떠오르는 시그니쳐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곳의 산세는 우리와 많이 다름을 발견한다. 한국산은 보통 동네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동네와 사람을 품는 모양이라면 이곳의 산은 거대하고 때론 산도 계곡도 뾰족하니 날카롭다. 삼나무가 위로 쫙쫙 뻗어있는 산인 가 하면 또 어딘가는 거의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기도 하다. 그런 산들이 대개 위압적으로 선이 굵직굵직하다. 

해서 한국산이 산속에 깃든 새들처럼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면 이곳 산은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웅장한 모습이다. 산이 너무 크서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산도 계곡도 호수도 있지만 아기자기한 모습은 아니고 사람이 눈에 띄지 않게 자연에 겨우 숨어 사는 듯한 모습이다.


     



 


전날 말을 타고 갔던 카인디호수와는 또 다른 느낌의 콜사이호수도 물빛만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호수의 물빛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가이드 테밀란이 준비해 온 전통의상을 입고 일행들이 돌아가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와중에 카자흐스탄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뽑는다며 웃고 웃기느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피부색은 백인처럼 하얀데 얼굴 윤곽은 어딘가 동양스러운 가이드 테밀란에게 나는 '너와 너희 나라의 정체성은 뭐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는 동서양 그 어느 한쪽도 아니고 그냥 동서양의 게이트 Gate라고 생각한다는 신박한 답변을 했다.


내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카자흐스탄은 역사 지리적으로 정말 동서양이 혼재한 대국이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이란 국호는  민족인 카자흐에서 유래했고 카자흐는 '방랑하다'라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생활을 했던 그들의 특성에서 나온 이름이다. 여기에 이란어로 '땅·나라'를 의미하는 스탄이 붙어 카자흐스탄이 되었다. 그러니 그들도 몽골, 흉노처럼 원래 아시아계 북방 유목민족이었다.


그런 그들이 국토의 일부가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 속해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우랄산맥이 카자흐스탄의 북쪽에 위치해서 우랄산맥의 서쪽에 있는 카자흐스탄 영토는 유럽에 속한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는  근세에 와서 백 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그 영향아래 있었고 실제 북쪽 국경의 5,000km가 러시아와 접하고 있어 다른 스탄국에 비해 러시아인 인구구성도 가장 많은 나라다.

카자흐스탄은 이런저런 지리적 상황으로 아시아 올림픽 회원국이면서도 유럽축구 연맹회원국이기도 하다. 나는 카자흐스탄을 보면서 지리적으로 동서양에 걸쳐있는 또 한 나라, 터키가 떠올랐다.






콜사이 호수를 보고 다시 차를 타고 가다 블랙밸리란 곳에도  잠시 내렸는데 이곳도 깊은 바위 계곡사이로 흘러내리는 옥색 강물이 장관이었다. 

블랙밸리 언덕 위에서 아래로 절벽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공포심이 일고 두려움 자체다. 휴대폰이 행여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질까 하면서도 대자연 속 한 장의 사진을 남기겠다는 바람으로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자연이 빚은 작품들, 계곡의 바위들과 옥색 강물이 경이롭다. 인간인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만의 창작품이며 시간과 비와 바람이 만들어낸 자연만의 또 다른 예술품이다. 


이 날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해발 1045m, 차린 협곡 Charyn Canyon이었다. 북미 콜로라도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시킨다는 곳이다. 물론 규모는 그에 비해 작지만 고제상기에 형성된 아주 오래된 협곡으로 가파른 경사면의 높이는 무려 150~300미터에 이른다. 12,000년 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바위암석들이 주는 기운이 장엄하게 느껴졌다.


협곡을 보면서 다시 한번  어마어마하다는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강수와 풍화작용 그리고 메마름의 건조함이 뭉쳐서 이뤄낸 계곡이었다. 계곡길이가 2킬로가 넘어서 사람들이 그 아래로 내려가서 걸어보기도 하는데 6월의 날씨는 이미 길 위의 더운 바람만으로도 아래쪽의 열기를 충분히 짐작하였기에 일행들은 내려가지 않았다. 계곡 아래는 바람이 안 통해서 더 덥고 많이 힘들 거라고 미리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우리는 계곡 앞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우리나라 널을 닮은 그네를 타는 애들도 보고 잠시 쉬었다.






그렇게 쉬면서 화장실 갔다 오다 보니 우리 일행의 리더 격인  J선생님이 계곡을 보며 수심에 차 있어 왜 그러시냐? 니까 지금 또 다른 J샘이 안 돌아와 걱정이라며 조바심을 내고 계셨다. 두 분은 동명이인이시다 ㅎㅎ 말인즉슨 그 샘이 굳이 계곡 아래로 내려가 보겠다고 들어가신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안 오니 행여나 더위에 쓰러졌을까 하며 걱정이 되어 일행 중 남 선생님 두 분을 찾으러 보내야겠다 하신다.


해서 진짜 두 분 남선생님들이 특파원 아니 구조대로 출동하시고 얼마 후 J2샘을  찾아 호위하고 오셨다. 계곡으로 들어갔던 J2샘은 머리카락이 온통 땀으로 젖어 비 맞은 듯했고 나는 그분의 모험심과 용기도 대단하지만 눈이 빠지게 염려로 기다리며 계속 눈을 계곡에 두고 걱정하다 드뎌 특파원까지 보내신 J1샘에게 더 존경심이 일었다.


대부분 여행에서 우리는 쉽지 않은 일정을 소화하면서 내 것 챙기기도 급급하기에 여유롭게 동료애를 가지고 배려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때론 서로 더 많이 보겠다거나 불가불 생략하는 일정을 두고도 갈등, 불화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번 팀은 정말 모범적이었고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크게 느껴지는 좋은 팀이었다. 물론 이번 팀은 자발적으로 구성된 자유여행팀인데 팀원들끼리는 이미 지인들로 엮인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와 딸이 함께 여행 가도 속 상하는 일이 일어나고 부부가 같이 여행 가도 티격태격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왜냐면 여행은  일상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기에 낯선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여러 상황적 변수가 일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작은 예로 정말 마음먹고 멋진 사진 찍고 싶었던 장소에 가니 연일 비가 내린다던 지, 사진상으론 멀쩡했던 숙소에 가니 천정에 비가 샌다던 지, 택시 바가지에 소매치기에 등등 변수가 많다. 그렇기에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해 간들 여행은 달라질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때로 계획은 단지 계획에 불과하고 변화되기 위해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여행하면서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늘 열린 마음이어야 스트레스가 없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나 또한 지난 5개월 혼자 여행하면서 실제적으로 배운 교훈이기도 했다.

단체가 움직이는 여행에서 개인이 일탈 행동을 하거나 결과적으로 전체 일정에 지장을 준다면 그는 비판받을 행동이다. 그런 면에서 혼자 말도 없이 계곡을 내려간  J2샘은 비판받을 수도 있었지만 비판이나 비난보다는 염려로 지켜보다가 찾으러 일행을 보낸 J1 선생님 마음이 귀하게 여겨졌다.


여행도 결국은 사람이다


여행 중 두대의 차를 운행하면서 나는 말레이시아 팀 차를 탔는데 계속 앞자리 좋은 자리를 양보해서 되려 미안했다. 원래 좌석은 하루씩 순번으로 돌아가며 앉기로 했고 그게 국룰인데도 그냥 한국팀 3명에게 말레이시아 친구들 4명이 일방적 양보를 해 줘서 너무 고맙고도 미안했다.

그래서 평소 '여행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은 결국 풍경도 건물도 아니고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고 배려해 가면서 가는 여정이요, 그 가운데 결국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우리 마음도 더 열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력도 점점 더 깊어져 가는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카자흐스탄의 자연을 보고 이제 알마티로 가는 길 위에 오르고 가이드 타밀란은 이제 이 길은  신 실크로드라며 설명을 해 준다. 2천 년 전부터 동과 서로 연결되어 오가던 실크로드에서 특별히 알마티는 장안에서 출발해서 천산북로로 가는 비단길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이제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면서 카자흐스탄은 그 노선의 핵심 허브로 부상했다. 중국의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중국 장안은 물론이고 더 동쪽에서 출발하여 이란 테헤란을 서쳐 네덜란드까지 이른다.


중국이 그 옛날 비단길의 영광을 되살릴 물류유통의 길로 펼치는 이 정책에서 카자흐스탄이 독립 후 30여 년 만에 중앙아시아 경제 중심이 된 데는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위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는 대표적 국가가 된 셈이다. 중국은 2012년에 카자흐스탄과 공동 투자를 통해 호르고스 물류센터 등을 조성했는데  호르고스는 이제 신물류 허브로 자리 잡았다.


참고로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실크로드 경제 벨트'라는 두 가지로 이뤄지는 중국의 광범위한 경제 및 인프라 개발 계획인데 2013년 당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발표한 계획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쳐 교역, 투자, 인프라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대일로(一带一路)에서 일(一带)은 '실크로드 경제 벨트'로,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남아시아를 통해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경로를 의미한다. 반면, 로(一路)은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경제 벨트'로, 중국의 남부 해안을 출발점으로 인도양, 아프리카, 유럽을 통해 연결되는 해상 경로를 의미한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경제 성장과 국제 영향력을 높이는 한편, 참여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 개발에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로 인해 일부 나라에서는 빚더미에 앉는 경우도 있고 중국이 경제 발전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할 목적이 있다는 의혹을 주기도 하는 등 일부 논란이 있는 프로젝트로 본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한 이후 처음 10년 간은 초인플레이션과 구조조정으로 경제난을 겪었고, 그로 인해 대규모 인력이 유출되었다. GDP 대비 국가 부채가 400%에 이르러 사실상 한 때는 국가부도 상태까지 갔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석유 매장량, 다양하고 풍부한 천연자원과 이를 이용한 친서방과 친러 정책을 펼치면서 2000년대 후반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독립국가들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할 때 그곳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전에 훨씬 잘 살았는데 지금은 카자흐스탄이 역전되어 훨씬 더 잘 살게 되어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고 들었다. 이는 경제를 모르는 나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비해서 자원이 풍부한 이 나라의 엄청 넓은 국토와 우즈베크보다 훨씬 더 작은 인구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


알마티로 가면서 가도 가도 텐산의 설산이 따라오니 차 안에서도 사진을 찍어본다.


콜사이 국립공원과 세 호수, 우리가 간 곳은 첫 번째 호수


물빛이 사진 그대로다

하늘과 호수빛이 거의 같은 날

가이드 테밀란은 우리 아들 나인데 벌써 7개월 된 아들이 있다 해서 대견했다.

콜사이 호수의 물빛 그림자

블랙밸리, 절벽 계곡아래로 흐르는 물색이 옥빛으로 아름답다

차린계곡입구

만 년 전 고대의 지형들이 다시 시간을 느끼게 한다

차린 계곡

널 같은 그네를 타는 아이들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신장 위구르지역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정말 다 맛있었다.

라크만이 무슨 중국식 볶음짬뽕 같기도 하고 튀김 가지요리가 달달하니 맛있고 빵도 특별히 더 맛있었다. 민트와 여러 가지를 섞은 차도 좀 달아서 일행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나 국물녀인 나는 국 대신 차는 언제든 반갑기에 오케이였다. 한참을 건조한 초지를 달려온 후라 더욱.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자치구로, 면적은 약 166만 제곱킬로미터로 중국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다. 인구는 약 2,400만 명으로, 이 중 위구르족이 약 45%, 한족이 약 40%를 구성하고 있다. 

서쪽으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접하고 있어서 상당수의 카자흐인이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이후  한족 농민들을 대거 서부로 이주시키면서 인구 비율이 달라져서 한족이 더 늘어났다. 

이 지역을 인수한 중국은 한족을 대규모로 이주시키고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 와중에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 러시아인이 대거 구소련 영토로 망명하면서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한족이 위구르인과 비슷한 규모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한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의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인구비율이 다시 높아지자 중국 당국은 위구르인들을 강제수용소로 집어넣어 불임시술을  단행하는 등 2010년대 중후반 내내 위구르인 대상으로 산아제한을 강제하고 한족의 산아제한은 풀어주었다. 

중국이 이렇게 신경을 썼던 이유는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중국의 안보 상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전 한나라 때부터 이 지역은 흉노의 오른팔로 여겨졌고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들은 이 지역으로부터 농산물을 비롯한 생필품을 공급받고 이 지역의 도시들을 거점 삼아서 막대한 무역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도 이 지역을 장악하지 못하면 항상 북방 유목민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도 신장 위구르 지역은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유라시아의 허브요 교차로라고 불리고 있다. 

여행자들에게도 고대와 중세 실크로드 유적 및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니 방문할 가치가 높은  흥미로운 곳이다. 중국 안의 중국과는 다른 이슬람교 유목 문화의 색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도 신장 위구르 관광이 미식 투어로 유명한데,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말린 과일은 우수한 품질의 특산품으로 유명하고, 라그만, 양꼬치, 화덕에 구운 두툼한 빵인 낭 등의 위구르 요리들은 중국 전역에서도 별미로 유명하다. 

우리 일행들도 지금껏 스탄국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메뉴를 먹어봤지만 이곳 식당이 제일 맛있었던 사실이다.

신장 위구르식 라크만

달달한 볶음가지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가도 가도 텐샨은 우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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