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일
알마티의 숙소가 맘에 든다. 오페라 하우스 앞인데 그 이름도 '알마티' 호텔이다. 근처에 바로 레스토랑, 카페, 길거리 버스킹하는 곳이 있는 중심이라 더 좋다.
알마티는 길을 가다가 아리랑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르바트 거리를 걸으면서 연세 드신 한 분이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하다 국적을 묻거나 아니면 이제는 코리안들을 짐작으로 알아채고 <아리랑>을 연주해 준다. 그러면 잠시 뭉클한 마음으로 동전을 넣지 않을 수가 없다.
인구 2백만 카자흐스탄 최대도시 알마티는 계획도시라 바둑판 모양으로 길이 널찍널찍하고 쭉 뻗어있어 걸어 다니기도 좋다. 특히 작은 공원들도 많고 앉을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많이 있다.
알마티란 말이 '사과의 머리'란 뜻으로 뉴욕처럼 상징이 애플이라 박물관 앞에도 사과모양으로 장식이 되어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판필로프 28 공원을 가 보았다. 녹색공원이 깊고도 넓다.
사실 알마티는 공원이 많아 동서남북 온통 숲길이다. 그러니 뚜벅이 여행자들에게는 이런 도시에서 걷는 것이 마냥 즐거울 수 있다.
참고로 내가 걷기 힘들었던 대표적 도시는 복잡한 거리에 차선도 없이 달리는 자동차로 어지러웠던 이집트 카이로, 그리고 외곽 큰길에는 보행자 횡단보도가 많지 않았던 조지아의 트빌리시, 마지막으로 좁은 곳에 사람, 버스, 전철, 자전거 도로까지 다 같이 있어 복잡했던 비엔나등이다.
판필로프 공원에는 1941년 모스크바 외곽의 마을에서 나치의 탱크와 맞서 싸우다 숨진 알마티 보병대의 28명의 병사를 <판필로프 영웅들>이란 기념물로 기념하고 있다.
그 앞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고 연인들이 그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기도 한다니 서로를 향한 숭고한 마음의 약속일 것이다. 가이드 타밀란이 아내와 결혼하기 전 이곳이 주된 데이트장소였다고 말한다. 어쩌면 영원한 불, 생명과 죽음, 희생, 그리고 사랑 이런 키워드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공원과 연결되는 곳에 러시아 정교회 젠코브성당이 있다. 목조건물로 세계 2번째로 높다는데 그보다도 1911년 지진을 견뎌낸 아름다운 건물이라며 자랑한다. 주민 대부분 70% 이상이 이슬람인 나라의 도시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정교회 성당을 공원 한가운데서 보리라곤 예상을 못했었다. 아무래도 러시아 지배기간과 전체인구 중 러시아인 비중이 많은 탓도 있으리라 본다.
성당은 겉 보기보다 온통 금색으로 단장된 내부장식이 더 화려했다. 성당 안에서는 뭔가 밀도 높은 분위기를 느꼈기에 나도 잠시 호흡과 마음을 모아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점심 먹기 전 들린 질료니 바자르는 일명 그린 마켓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고대로부터 알마티가 동서양의 만남의 광장, 교역장이었음이 이 오래된 시장에서도 느껴진다. 우즈베키스탄의 시욥 재래시장에서 본 거처럼 여기서도 다양한 견과류, 건과류 물량이 엄청 많았다.
그러나 내게 특히 놀라웠던 것은 어마어마한 육류코너였다. 소, 양, 말 그림으로 구분된 표지가 있는 육류코너에 돼지머리도 무슨 장식처럼 쫘악 도열해 있다. 카자흐스탄은 다른 스탄국에 비해 러시아인도 많고 140 민족으로 민족구성도 다양해서 돼지고기를 먹는다. 그런데 우리식으로 돼지머리를 그렇게 진열해 놓은 것은 진풍경이었다.
그린마켓의 육류코너를 지나 과일, 야채코너를 둘러보다 반찬가게에 이르렀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모습, 친근한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일명 카레이스키 샐러드, 당근김치에 관심을 보이니 고려인 4세 아주머니께서 한국인이냐며 물으신다.
당근김치는 스탈린 시절 동쪽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강제이주 당해 와서 무나 배추를 구할 수 없었던 고려인들이 당근을 김치 같은 아삭거리는 식감으로 만들어먹음으로써 유래했다.
고사리나물이라며 맛 보라 해서 먹어보고 맛있다 하니 옆에 미역무침에다 마늘종같이 생긴 것도 맛 보라 하신다. 고사리나물만 사려하니 그냥 가져가라며 돈을 안 받으시려 하기에 할 수 없이 시금치나물이랑 서너 가지를 더 사서 돈을 드렸다. 덕분에 푸짐하게 들고 와서 점심때 일행들이랑 나눠먹었다.
인구구성으로 보면 전체 카자흐스탄의 0.6%인 고려인 후손들, 그러나 지금 고려인 4세대와 그 자녀들인 5세대는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과 성실함으로 자리 잡고 잘 살아가고 있다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대부분 여기 사람들은 고려인 하면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들로 알고 있고 전통문화와 가족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란 평판을 가진다 한다.
역사의 강물에 떠 밀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 머나먼 땅으로 이식되었지만 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동포들의 모습에 가슴 뭉클했다.
케이블카를 서너 번 갈아타고 설산 가까이 침블락 스키장으로 올라가 본다. 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큰 LG간판이다. 한국은 카자흐스탄과 독립 후 1992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섬유·기계·자동차 등 공산품을 수출해 왔다. 그리고 원유와 합금 철 등을 수입하면서 양국은 돈독한 경제협력 체제를 이루고 있고 그래서 카자흐스탄은 우리에게 중앙아시아 최대 투자대상국 중 하나라 한다.
침블락 스키장은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다.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여름에는 캠핑과 트레킹코스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늘 멀리서 바라볼 때는 신비로워 보였던 텐산의 설산이 이제 가까이 와서 보니 눈이 남아있는 그냥 평범한 산일 뿐이었다. 내가 스탄국 와서 차를 타고 달리면 늘 어디서나 배경처럼 멀리서 가까이서 보이던 설산이었는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베일 벗은 신비주의처럼 그냥 눈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평범한 모습의 산일뿐이었다. 해서 내가 가졌던 설산의 신비감에 대해 혼자 웃었다.
역시 모든 게 거리를 두고 좀 멀리서 볼 때가
더 멋있고 신비로워 보일 수도 있다 ㅎㅎ
침블락에서 내려와서 콕토베 티브이 송신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알마티 뷰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이라 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비틀스가 다녀갔는지 그의 동상이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이 생각 나 사진을 찍어본다. 이곳도 알마티의 핫 플레이스로 꼽혀서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서 도시 뷰도 즐기고 하는 곳이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카자흐스탄 그동안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왜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고 남의 일처럼 여겨졌을까~! 이렇게 평화롭게만 보이던 알마티도 불과 일 년 전에 큰 시련을 겪었다고 했다.
외부 언론은 석유가스등 물가인상이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오랜 독재를 했던 전 대통령 누르술탄과 그의 부패세력들로 인함이었다 한다.
30년 독재자 대통령이 형식적으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현 정부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했고 그래서 일어난 시위였다. 그런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응하는 정부의 폭력성 진압으로 방화와 유혈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급기야 그에 대한 진압을 빌미로 정부는 러시아 공수 군까지 투입했다고 한다.
이제는 안정되어 평화로워 보이는 거리에 할머니들이 손주 손을 잡고 걸어가신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 많은 활기찬 거리 알마티를 보며 사람이 살아가는데 평화와 안정만큼 절실하고 필요한 게 또 있을까 싶다.
나는 인류 문명이 돌도끼에서 핵개발까지 발전되어 왔다면 의식 또한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진화 발전되어 왔어야 했다 본다. 그러나 여전히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며 자기 욕심을 앞세워 다수인을 지배하려 한다면 그건 물질문명의 진보와 맞지 않은 의식의 퇴보요 역행이라 본다.
그러니 이제부터야말로 모든 갈등과 충돌에 대해 더 이상 폭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나 씁쓸하게 되뇌어보았다.
문명의 발달 수준만큼 인간 의식이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결코 인류는 한 발짝의 진보도 이루지 못한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박물관 앞 알마티의 상징인 사과 모양
판필로프 공원입구
젠코브 성당 앞에서 말레이시아 친구들과
화려한 금색내부의 성당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하며 평화의 기도를...()()...
판필로프 28인 동상~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카자흐인들이 2차 대전 때 러시아를 위해 싸운 것은 러시아를 위해서라기보다 본인들의 가족과 땅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침블락 스키장~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스키장으로 두세 번 케이블카를 바꿔 타고 해발 3000미터 이상까지 오른다. 눈이 남아있는 설산정상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콕토베는 알마티 전체 뷰를 볼 수 있는 티브이 타워가 있는 곳이다
콕토베의 비틀스 동상
알마티 상징 콕토베의 사과
민속음악축제~ 잠깐 나의 착각인 지 우리나라의 사물놀이 비슷한 소리도 들렸다.
시들지 않은 꽃다발과 영원한 불이 있는 판필로프 28인 동상 앞
길거리 버스킹
가이드 타밀란이 카자흐스탄 국기포장의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는데 센스있는 선물이다. 국기에는 하늘색 바탕에 황금색의 카자흐 전통 문양과 32줄기 태양 그리고 초원수리가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