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고승덕이 될 수는 없다.
로스쿨에 처음 입학했을 때, 공부하는 동기들의 모습을 보고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난다.
고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대학에 다닐 때도, 이후에 대학원을 다닐 때도 대충 벼락치기로 때워왔었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딱히 공부에는 취미도 없고, 자신도 없었다. '공부로 먹고살 것'이라는 생각은 평생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변호사 시험 합격을 위한 3년 간의 장기 레이스는 몹시 생소하고 두려운 도전이었다.
3년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변호사 시험에서는 전국 200등 대(200등 아닙니다.)의, 내 기준에서는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변호사 시험에 원서접수를 한 응시자수가 총 3,763명이었으니, 대략 상위 8%의 성적을 거두었던 것이다. 3년 간 좌충우돌 로스쿨 생활을 보내면서, 합격하는 공부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나처럼 공부에 재능과 흥미가 없었던 사람이라도 '시험에는 합격할 수 있는 공부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타고나길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쉽게도 나처럼 책만 펴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주변 환경을 반드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로스쿨 1학년 1학기 때까지는 본가에서 통학을 했다. 당시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집이 회사 바로 앞이기도 했고, 대구에서 경산까지 차로 30분 밖에 안 걸리는데 굳이 나가 살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공부하기에는 내 집중력이 따라주지 않았고, 은근히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그래서 학교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곳으로 이사를 했다. 학교에서 너무 가까우면 동기들과 놀고 싶을 것 같았고, 학교에서 정신적으로 분리가 될 필요가 있다고 느껴 적당한 거리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로스쿨 2, 3학년 때는 거의 집에서 계속 공부를 했다. 학교에도 수업이 있을 때만 나갔다. 1학년 때는 로스쿨 열람실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정서적, 신체적으로 소모가 있는 것 같아 집에 틀어박히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정말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집이 잘 맞았지만, 사람마다 공부가 가장 잘되는 최적의 장소가 있으니 반드시 찾아보기를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반드시, 1) 자신이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내어 2)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모두가 고승덕이 될 수는 없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왜 이렇게 집중을 못했지, 나는 최악이야.'라고 자학하는 것이다. 나도 불안감을 잘 느끼는 성격이라, 로스쿨 1학년 때는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를 했고,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유튜브 세계에 떠돌아다니는 영상들만 보더라도, 누구는 16시간 공부를 했다더라, 비빔밥만 먹으면서 공부를 했다 더 나, 불 끌 힘도 없어서 누워서 공부를 했다 더, 커피가루를 씹어먹으면서 공부했다더라 같은, '기인(畸人)'들의 이야기가 자꾸만 들려오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의 정신력과, 버텨주지 못하는 신체가 야속했던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야 할 것 같고, 딴짓을 하는 모든 시간들에 자괴감을 느꼈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안 해도 된다. 아니 못한다.
어차피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대신, 정말 집중하고 몰입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중력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가장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대에 맞춰 일과를 짜야한다.
KBS 울산 방송국, 그리고 대구 SBS(TBC)를 다니는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던 나는 스스로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그냥 아침 월급형 인간이었다. 자꾸 미라클 모닝을 하라는데, 아침 7시에 일어나도 9시 수업에서 졸고, 그냥 계속 졸릴 뿐 집중을 못했다.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는 9시 수업을 최대한 수강신청에서 제외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잘 봐줘야 아침 10시부터 시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를 택했다. 변호사 시험 일주일 전에도 그냥 아침 9시, 10시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그리고, 잠을 줄여서는 안 된다. 로스쿨 1학년 때, 불안해서 밤새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며 수면 시간을 줄였다가 정말 쓴 맛을 봤다. 자빠질 뻔하고 나서야 벼락치기는 장기 레이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이 버텨줄 수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부시간이 줄더라도, 수면시간은 절대로 줄여서는 안 된다. 레이스를 끝까지 버티지도 못한 채 건강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는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00미터 달리기처럼 뛰다가는 결승선은 보지도 못하고 무너질 수 있다.
공부할 때는 반드시 자신에게 잘 맞는 인풋(in-put) 방법을 찾아야 한다. 로스쿨 입학 전, 대부분 정연석과 윤동환의 민법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2번씩 열심히 듣고 입학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말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인강형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강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냥 냅다 들었던 나로서는 딱히 도움을 못 받았던 것 같다(이후에도 거의 인강을 듣지 않았다. 정말 필요할 때에만 발췌해서 들었는데, 활용법은 후술 하도록 하겠다.).
성격이 급하고, 응용력이 다소 부족했던 나에게는 '답지부터 보고 공부하는 방법'이 잘 맞았다. 어차피 인강만 들어봤자 문제를 못 풀 것 같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객관식이든, 사례형이든 기록형이든 뭐든 냅다 답지부터 외웠다. 그리고 다행히 이 방법이 상당히 잘 통했다.
어차피 공부는 '밑 빠진 독에 누가 누가 물을 빨리 잘 붓나.'의 싸움이다. 합격자와 불합격자는 진짜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어떻게 투입해야 내 공부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1년 이상 공부해야 하는 시험이라면, 운동은 진짜 필수다. 수험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몸이 망가진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니 자세가 틀어지고,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거북목이 되고, 눈도 아프고, 그냥 다 아프다. 심지어 수험 공부를 하는 동안 나이도 든다. 20살의 체력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력이 안 되면, 공부를 끝까지 해낼 수가 없다. 감기만 걸려도 기분이 나쁘고, 콧물만 나와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인간이다. 아프면 안 그래도 없는 집중력이 바닥난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이해가 안 돼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산책 한 번 하고 들어오면 훨씬 이해가 잘 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자세로부터 비롯되는 신체의 통증을 예방해주기도 한다. 대신, 체력 수준을 고려해 적절한 수준의 운동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1학년 때는 크로스핏을 했었다. 재미있어서 꾸준히 다녔는데, 데드리프트를 고중량 고반복으로 하다가 근육을 잘못 사용한 다음날 허리가 아프고 손이 떨리는 것을 경험하고는 바로 그만뒀다. 중요한 건, 절대로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공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이후로는 매일 저중량의 헬스를 했다. 아파트 바로 밑에 헬스장이 있었기에 동선이 가장 좋았고, 자세를 바로 잡는데 최적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선택했다. 허리나 엉덩이가 아픈 날에는 집에 요가 매트를 깔아 두고 홈트로 자세를 교정했다. 시험을 앞두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다치지 않을 정도의, 그러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한다. 무슨 운동이든 좋으니, 반드시 운동을 하자. 정신력은 정말이지 체력에서 나온다. 시험 직전 막판 스퍼트를 위해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