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날 선 말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관계가 무너지는 일은 드물다. 다만 싸움 속에 쌓이는 말투들, 반복되는 언어의 습관이 어느 순간 마음을 닫게 만든다.
서로를 향해 던진 말이 점점 대화가 아니라 서로를 찌르는 칼처럼 느껴질 때, 감정은 서서히 식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망치고, 상대방이 나를 망치게 만들고 있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상대를 망치는 건 결국 날카로운 혀에서 나온,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이다.
이 글은 앞선 글에 이어,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말투를 들여다본다. 갈등은 끝났지만, 감정은 회복되지 못하게 만드는 말의 흔적들. 사랑을 지치게 하고, 결국 이별로 이끄는 말투의 패턴 7가지를 정리해 본다.
사람마다 상처의 깊이는 다르다. 그런데 싸움 뒤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걸로 그렇게까지 화를 내?”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왜 그래?”
이 말은 감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차단한다. 상대가 느끼는 상처의 크기를 ‘너무 민감한 반응’으로 규정해 버리는 순간, 감정은 말이 되지 못한 채 묻힌다. 사랑은 감정의 공유로 깊어지는데, 그 감정을 부정하면 더는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사람마다 예민한 구석들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해 못 할 예민함들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감정의 평행선이 자꾸만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 더 나아가 맞춰나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의 태도는 혼자만이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겠구나 느낀 상대방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다툼의 목적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받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싸움 도중 감정이 경쟁처럼 흐르면, 대화는 공감이 아니라 비교로 변질된다.
“너도 힘들었겠지만 나는 더 힘들었어.” “나는 너보다 참아왔어.”
이런 말은 위로를 가장한 무력감만 남긴다. 감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옆에 나란히 앉아 들어주는 것에서 회복된다. ‘누가 더 아프냐’를 따지는 순간, 둘 다 위로받지 못한 채 돌아서게 된다. 사랑하는 상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런 속상함 없이 본인의 힘듦만을 생각하는 태도가 대화에서 드러난다면 상대방은 허탈해진다. 저 사람의 고통과 힘듦을 알아주고 싶었고, 반대로 나의 힘듦도 나누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어떤 벽보다도 더 큰 절망을 느끼게 된다.
“됐고, 이제 그만하자.” “왜 이렇게 오래 끌어?”
싸움이 길어질수록 피곤해지고 지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화해를 종용하면, 상대는 더 큰 허탈감을 느낀다.
특히 갈등의 깊이나 다름의 온도가 다를 때, 한쪽이 일방적으로 끝내려 하면 관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싸움에서 중요한 건 ‘누가 먼저 풀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충분히 다루었느냐’다.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 없이, 그저 갈등을 무마하고 싶어서 화해를 강요하는 태도는 이때까지의 대화조차도 무쓸모한 것으로 만든다.
분명한 말보다 무심한 말이 더 치명적일 때가 있다.
“됐어. 말 섞기 싫어.” “지금 너랑 얘기할 시간 없어.”
이 말은 말 자체보다 태도에서 더 큰 거리감을 준다. 갈등 중 말이 멈출 수는 있지만, 그 이유가 감정자체를 회피하고 싶어서인 경우,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한 번 무시당한 감정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누구나 갈등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다. 잘 이겨내보고 싶어서, 잘 지내보고 싶어서 대화를 시도했는데 말도 섞기 싫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나와의 관계보다 자신의 귀찮음이 먼저구나 싶을 수밖에 없다. 말 섞기 싫어하는 시간 동안 상대방이 받을 고통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밀어내며 갈등을 묵은지처럼 묵히기만 하는 태도는 결국 사람을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든다.
갈등은 평등한 관계에서 논의될 때 풀린다. 하지만 싸움이 설명이 아니라 훈계로 흐를 때, 상대는 대등한 대화자가 아닌 ‘지적당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래서 너는 인간관계가 힘든 거야.” “이건 너부터 고쳐야 해.” 같은 말은 문제 해결을 빙자한 ‘지적’이다. 이런 말이 반복되면 상대는 배우는 게 아니라 피하게 되고, 점점 이 관계 자체가 위축된다. 사람의 행동은 단편적이지 않다.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그렇게 입체적인 상대방이 고심 끝에 행동했음에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듯한 태도는 상대의 이성을 멸시하는 태도이다.
분위기를 무마하고 싶은 마음에, 자포자기식으로 던지는 말이 있다.
“그냥 다 내 잘못으로 해.” “내가 나쁜 사람이지 뭐.”
이 말은 겉보기에 포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정적으로 회피하는 방식이다. 상대는 ‘사과’가 아니라 ‘피로’만 느낀다. 진심 없는 자기 비하성 발언은 대화를 끝내는 듯하지만, 오히려 문제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 채 관계를 지치게 만든다. 나쁜 놈을 만들고 싶어서 대화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잘 이겨내고 타협해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함께이고 싶어서 어렵게 말을 꺼낸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마음이 상해도 말을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속으로 곪게 되는 것이다.
과거는 감정의 창고다. 문제는, 그 창고를 자꾸 열어젖히는 말투다.
“너 예전에 그랬잖아?” “나 만나기 전에도 그랬잖아.”
과거의 일까지 끌어오면 싸움은 현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매번 과거를 언급하면, 상대는 그때마다 자신이 변한 게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회복의 의지가 꺾이고, 결국 “나는 이 관계에서 계속 실패하고 있구나”라는 자책만 남는다. 특히, 과거는 다시 돌아가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반면, 우리의 관계는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미래 속에서 나의 과거가 추격자처럼 계속해서 쫓아온다면, 그리고 과거의 망령이 도저히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견뎌내야 할 상처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해해보려 해도,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과거를 견디는 일은 스스로를 자학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 관계를 놓는 선택을 하게 된다.
말투는 사랑의 온도를 바꾼다
싸움은 관계의 필연이다. 그러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싸움은 결국 관계를 망친다. 사랑은 결국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조차 서로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을 때,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칼처럼 날카롭게 쏟아낸 적이 적지 않게 있다면, 부디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금까지 칼을 묵묵히 받아준 상대방은 정말로 당신을 많이 사랑했다는 걸. 사랑했기에, 끝까지 버티려 노력했으나, 결국에는 다시 한번 쏟아지는 칼들에 무너지고 마는 자신을 보며 찢어지는 마음으로 끝을 선택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