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_마라맛, 스물여덟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면서요?

by 한경환

스물여덟. 너무 어리지도, 또 그렇다 해서 너무 많지도 않은 나이. 나의 스물여덟 번째로 맞이한 여름은 제법 매운맛이었다.


멋진 작가를 꿈꾸며 작업실을 만들고 작업을 하며 3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작업할 시간을 벌기 위해 비교적 시간조정이 자유로운 일들로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일은 한의원이었다. 주말 내내 일을 하는 대신 월급이 높은 편이었고 일의 양도 많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는 스케치와 작업계획을 세우며 이것저것 알아보기에도 안성맞춤인 일자리였다. 두 번째는 아동미술 과외로 주 1회였지만 시급이 높고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게는 정말 좋은 일자리였다. 세 번째는 러쉬. 대학생 때 2년간 했던 일인데 만기퇴사 후에 올해 초 다시 재입사의사를 묻기에 승낙했다. 월단위로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골라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그리고 여름의 녹음과 더위가 밀려들어올 5월 1일, 스물여덟의 매운맛이 시작되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마음이 좋지 않네요.”


입사한 지 딱 1년이 되던 날. 원장님은 나를 원장실로 불렀고 다들 1년이 되었으니 월급 인상 때문에 부르신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잔뜩 기대를 안고 찾아간 원장실에서 들은 말은 나의 기대를 바닥까지 내려놓기에 충분했다. 법이 바뀌어서 주말 당직일도 조무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지 말라니.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찾아온 불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마음이 좋지 않다던 그녀는 정말로 좋지 않은 마음을 먹은 것인지 월차수당을 비롯한 연장수당, 휴일수당, 휴일연장수당 등을 입금해주지 않았을뿐더러 쓰지도 않은 계약서를 썼다며 돈을 줄 수 없다고 하기 시작했다. 결국 노동청까지 찾아가게 되었고 2달 정도의 노력과 고생 끝에 모든 돈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이미 너무 지쳤다.


그러나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고 했던가. 이 일이 마무리될 때쯤, 한의원보다 먼저 하고 있던 과외생의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미술에 흥미가 없는 것 같아 이번달까지만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찾아온 불행은 멈출 줄 모르고 이어졌다. 7월을 한주정도 남긴 어느 날, 여느 날과 같이 러쉬로 출근했을 때 분위기가 어딘가 어수선했다. 영문을 모르던 나를 매니저님이 조용히 휴게실로 불렀고 침착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내가 이미 2년 동안 일을 하고 퇴사를 했는데 2년을 일한 근로자는 법적으로 다시 파트타이머로 출근이 어렵다며 이번달에 계약종료로 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기퇴사자도 다시 일할 수 있다고 불러놓고 갑자기 나가라니. 여태껏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내게 그 한마디는 꽤나 크게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잔뜩 오므려든 채 덜덜 떨리는 입을 숨길 수 있었으니. 아무래도 바로 다음 주 퇴사는 너무 갑작스럽다는 말에 사정을 봐주어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퇴사를 2일 남긴 시점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던 교수님과 저녁 식사자리를 가진 뒤 집에 돌아가던 길. 스타렉스 차량 한 대가 다가왔고 빠른 속도에 미쳐 피할 새 없이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도 함께 멈추어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대로 나를 치고 지나갔다. 눈이 시릴 정도의 밝은 빛, 그리고 한순간 어둠. 내 생의 첫 교통사고였다. 나의 왼발은 부러져 버렸고 발가락은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차에 부딪히고 바닥에 굴렀더니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하지만 몸보다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대한 대가가 겨우 이것이라니. 무너져 내린 마음 탓이었는지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는 나의 스물여덟은 제법 맵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머리가 띵하고 온몸이 얼얼한 것이 나의 스물여덟은, 분명 마라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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