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분노. 당시에 처음 들었던 감정이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흔히들 분노를 불같다고 표현한다. 바스러질 듯 메말라버린 나의 감정은 잘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듯 타올랐다. 옮겨 붙은 불은 쉽사리 꺼질 줄 몰랐고 내 안의 모든 감정을 분노로 뒤바꿔 놓았다.
영원히 타오를 것 같았던 불도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고 분노가 가라앉았다. 실업이라는 단어가 헤집어 놓았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보니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여유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늦게까지 푹 자고 된다니. 뭔가를 이뤄내지 않은 하루여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구나. 나는 늘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보냈었다. 심지어는 방학 때조차도 풀타임 근무에 학원까지 다니며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껏 쉼 없이 달려오기만 했으니 몇 달 정도 쉬어간다고 크게 휘청일 것 같지도 않겠다는 근본 없는 자신감까지 샘솟았다. 6개월.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기간이다. 6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홀린 듯 책상에 앉아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차례로 종이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 베이킹 학원 다녀보기
2. 여행 가기
3. 인스타 작업계정 만들기 …
어렵지 않게 10개를 넘겨버렸다. 그동안 내가 미뤄두었던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6개월로도 부족한 거 아냐? 한정된 시간인만큼 쉬는 동안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들로 버킷리스트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중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은 여행이었다.
여행.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의 그 해방감이 나를 설레게 한다. 특히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마음에 여유를 주는 데에는 여행이 최고다. 그런 내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었고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 싶을 때 하나 둘 여행의 길이 풀리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일주일 정도 보내고 와야지. 마침 엄마도 일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참이라 엄마와 여행을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차에 이모도 일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나. 같이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당장에 이모에게 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축하드립니다. 경나니의 효도관광 시즌1에 당첨되셨습니다!...”
정확히 2분 후
“와~~ 당첨이다.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그렇게 백수 3인방은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떠날 것부터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