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먹었던 그 맛!
라오스에 가게 된다면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에 대답은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바게트 샌드위치!”
라오스의 바게트 샌드위치는 길쭉한 바게트빵을 기름을 잔뜩 두른 철판에 구워주는데 그 안은 풍성한 식재료로 가득 차있다.
바삭해진 겉면과 달리 속은 여전히 부드럽고 그 안을 가득 채운 고기와 신선한 채소들, 각종 소스들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한화로 2800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3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고기와 신선한 야채가 가득 채워진 거대한 샌드위치를 즐길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사러 가는 길이다.
이미 오는 길에 봐둔 곳이 있었다.
아마 5년 전에 왔을 때도 있었던 가게인 것 같다.
쓰여 있는 한국어가 너무 익숙했으니까.
몇 년 전 그날처럼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뉴의 개수가 상당했다.
이럴 땐 역시 맨 위에 있는 메뉴가 맛있는 법이다.
‘beef chicken bacon egg cheese’.
맛있는 거 옆에 맛있는 거.
이 조합이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아니, 맛이 없기가 더 힘들 조합이다.
같은 것으로 2개를 주문하고 음료도 2잔을 주문했다.
아보카도와 망고.
망고는 민정이의 픽, 아보카도는 나의 픽이었다.
동남아 어느 국가를 방문해도 생과일주스를 파는 곳은 흔하다.
신기하게도 나라가 달라도 메뉴는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늘 아보카도를 주문했다.
시럽의 달달함과 아보카도의 부드러움. 환상의 조합이다.
주문을 마치자 아주머니는 익숙한 손길로 바게트를 철판에 올리고 음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만의 리듬이 있었다.
하늘 위의 길처럼 그녀에게만 보이는 길이 있는 듯싶었다.
바게트를 뒤집고, 손질한 과일을 믹서기에 넣고,
베이컨을 올리고, 다시 믹서기를 작동시키는 흐름.
손동작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녀만의 분명한 방식과 순서가 존재했다.
춤을 추듯 움직이는 손.
우리는 그 춤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저 침을 삼키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끝에는 오랜 시간 반복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노련함이 묻어 있었다.
베이컨이 구워지는 소리, 과일이 잘릴 때 퍼지는 달콤한 향, 철판에 떨어진 계란이 순식간에 색을 바꾸며 익어가는 모습.
오감이 한꺼번에 자극당하는 순간이었다.
군침이 도는 이 광경에 한 장면이라도 놓칠 세라 모두 영상에 담았다.
그 모습을 본 세희가 한마디 했다.
“이 정도면 레시피를 훔쳐가는 거 아냐?“
잠시 후, 우리의 손에는 갓 구운 따끈한 바게트 샌드위치 2개와 음료 2잔이 쥐어져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도중 틈이 났을 때 그녀에게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것조차도 그녀만의 방식인 것 같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음식에는 값을 매기지 않는 것.
우리는 그녀의 방식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 만들어진 음식을 우리 손에 쥐어준 뒤에서야 마침내 그녀는 우리에게서 그 값을 받아갔다.
그제야 진지한 표정으로 음식을 만들던 그녀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길가에 서서 각자 바게트 반쪽씩을 들고 음료를 나누어 마셨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바게트.
기름에 잘 볶아진 달달한 양파와 각종 고기가 한입 가득 들어찼다.
케첩과 소스들이 고기의 풍미를 한층 살려주었고, 육즙 가득한 닭고기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치즈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입을 베어 물자 재료들이 흘러내릴 듯 가득 차있어,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쥐어야 했다.
육즙이 흐르는 닭고기, 부드럽게 늘어나는 치즈, 달달한 양파.
단연코 단짠단짠의 선두를 달릴 맛이었다.
우리는 마치 누가 빼앗기라도 할 것처럼 정신없이 한쪽을 먹어 치웠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미 바게트를 싸주었던 종이만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음료까지 포함해 약 8400원.
이 돈으로 4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니.
천국은 멀리에 있지 않다.
길가에 서서 식사를 하는 동안 차츰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소스가 잔뜩 묻은 손은 대충 바닥에 고여있던 빗물에 닦았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밥을 꼬치에 꽂아 구워주는 간식을 발견했다.
이미 배가 부른 뒤였지만 궁금한 음식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가격도 굉장히 저렴했으니 더더욱 지나칠 이유가 없었다.
쫀득한 밥을 튀김가루를 입혀 구운 듯보였고 보이는 그대로 맛도 딱 그랬다.
나보다는 민아가 훨씬 잘 먹었다.
야시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비가 완전히 그쳤다.
야시장에 가기 전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환전과 액티비티 예약하기.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에서 편하게 예약했다는 후기를 보고 찾아간 곳이었다.
그곳에서 환전과 함께 내일 있을 액티비티의 예약도 끝냈다.
우리가 고른 것은 카약킹과 집라인, 블루라군 1.
이렇게 3가지를 반나절동안 즐길 수 있는 패키지였다.
동굴 튜빙도 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 잔뜩 내린 비에 강물 수위가 올라가 동굴이 잠겨버렸다고 했다.
아쉽지만 이런 아쉬움이 다음에 다시 돌아올 이유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즐기기로 했다.
예약을 끝마치고 나오니 밤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지나가버린 먹구름들이 달을 데려왔다.
내리는 비 대신 그 자리를 달빛으로 채워갔다.
그리고 달이 데려온 어둠이 가게마다 불을 밝혔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밤하늘 비행기 안에서 보고 상상했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직접 만든 목걸이였고 또 다른 이야기는 여러 종류의 티셔츠였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늘 즐겁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말을 섞고 표정을 주고받는 일.
말 한마디, 짧은 눈 맞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
내가 그들의 이야기가 되는 것.
이게 여행일 테지.
그게 삶일 거야.
어쩌면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의 삶을 스쳐 가며 나의 일부를 남기는 것, 또 그들의 일부를 가져오는 것.
여행도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지.
방비엥의 야시장은 규모가 크지 않다.
100미터 남짓한 길.
천천히 구경한다 해도 10분이면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상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천천히 걸었다.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며 관심이 가는 제품의 가격도 기억해 두었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있지만 가격은 다 달랐다.
앞 가게에서 5만 낍을 부르던 파우치가 뒤쪽으로 가자 4만 낍이 되었고 어느 곳의 만 낍짜리 가방은 다른 상점에서는 8천 낍이 되어있었다.
야시장의 물건에도 유행이 있다.
올 해에는 어글리 파우치가 유행인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파우치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자수로 그려 넣은 것인데 전부 비슷비슷한 모양이지만 만드는 사람에 따라 컬러며 마감이며 천차만별이다.
구경만 하는 것도 물론 재미있지만 약간의 흥정을 통한 구매가 야시장의 매력이다.
5만 낍을 부르는 물건을 장난스레 눈을 찡긋하며 4만 낍을 부른다.
사장님이 제시한 가격과 우리가 제시한 가격의 절충액을 찾는 일.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깎는 것이 포인트이다.
라오스 사람들이 순박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이 야시장에서였다.
베트남이나 태국처럼 처음 부르는 게 터무니없는 가격인 일이 없었다.
애초에 높은 가격을 부른 것이 아니기에 많은 금액을 깎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바가지를 쓰는 일은 드물었다.
그 작은 골목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더니 민아는 멋진 라탄백을 찾았고 세희는 팔찌를, 나는 조카에게 줄 아기옷을 들고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는 길에 우리의 발을 잡은 상점이 있었다.
티셔츠를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는 곳이었는데 다른 곳에 비해 종류가 굉장히 많아 보였다.
찬찬히 살펴보던 우리는 라오스티셔츠를 맞춰 입기로 했다.
여러 티셔츠 디자인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디자인을 정하고 색깔을 골랐다.
꽤나 신중하게 고르는 것을 보니 단체티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도 꽤나 큰 것 같았다.
어쨌든 다들 같은 디자인의 티를 입는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깊어진 우정이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각자 손에는 동남아 특유의 얇은 비닐봉지를 여러 개 들려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쩐지 내가 청춘이라고 느꼈던 시기와 별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젊음의 열기, 웃음소리, 밤하늘 아래에서의 자유.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청춘이라고 느꼈던 순간들은 비단 그렇게 빛나는 순간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았다.
밤새도록 과실에서 작업을 하던 일도, 바닥에 둘러앉아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과자를 먹던 일도,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던 일들도 지나고 보니 모두 청춘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청춘일까.
낯선 나라의 야시장을 거닐며, 흥정을 하고,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르며 고민하는 이 순간도?
친구들과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맞춰 입고 웃고 떠들며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도?
어쩌면 청춘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순히 나이가 어린 어느 한순간도 아닐 것이고 거대한 꿈을 좇거나, 대단한 성취를 이루어야만 청춘인 것도 아닐 것이다.
이국의 거리에서 한 조각의 삶을 경험하고,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작은 설렘을 느끼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두 손은 제법 묵직했지만 어쩐지 마음은 이상하도록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