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즐기는 엑티비티
초등학교 때쯤의 소풍 전 날이었을 것이다.
설레서 잠이 오지 않고, 간신히 잠에 들더라도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진 날이.
그리고 그로부터 한 20년쯤 흘렀으려나.
오늘이 나에게는 또 다른 소풍날이었다.
6시 반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졌으니까.
역시나 세희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시차 때문일까, 낯선 환경 탓일까.
세희는 아직도 잠에 깊게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설렘에 잠을 자지 못한 나와는 정반대지만 피곤한 것은 같으리라.
창밖으로 어렴풋 새어 들어오는 아침이 부드러운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넓은 샤워부스에서 따뜻한 물을 맞았다.
다른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이라 조금 여유롭게 씻을 수 있었다.
바로 뒷편이 문이고 그 문 바로 뒤가 침대였던 비엔티안의 숙소를 생각하면 이곳은 궁전이었다.
그곳의 화장실은 문 앞에 바로 침대가 있었고 샤워할 때 물이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뜨거운 물이 어깨 위로 흐르는 동안, 조금 더 오래 이 공간에 머물고 싶어졌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선크림을 발랐다.
그때쯤 민정이도 기지개를 켰다.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이지만 주섬주섬 준비를 하는 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대견했다.
마치 스스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초등학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민아는 아직도 꿈 속이었지만.
우리는 민아를 깨워 1층으로 내려갔다.
조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누가 보면 아침식사를 꼭 하는 편인 것 같겠지만 사실 나는 아침식사를 챙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만 오면 조식이 중요해진다.
호텔을 예약할 때마다 조식 포함 여부를 체크하는 나 자신을 보면 조금은 웃기기도 하다.
여행이란 일상에서는 하지 않는 일들을 해보는 시간이니까.
아침을 먹지 않는 내가 아침을 챙겨 먹는 것도, 어쩌면 그 중 하나일지도.
그런 거 다 떠나서 일단은 맛있잖아.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호텔이기에 조식 또한 간단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알찬 구성이었다.
계란 프라이나 스크램블 에그, 오믈렛 등을 주문할 수 있는 코너와 빵을 직접 구워 토스트를 해 먹을 수 있는 코너, 그리고 자유롭게 떠다 먹는 뷔페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각자의 접시는 각자의 취향대로 채워졌다.
누구는 고기 위주로 챙겨 왔고 누구는 샐러드와 채소를 챙겨 왔다.
빵을 굽느라 바쁜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취향 앞에 한없이 진심인 우리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때쯤 가장 늦게 일어난 민아는 준비를 하겠다며 먼저 일어났다.
나머지도 디저트와 과일로 마무리한 뒤 민아를 따라 올라갔다.
우리는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가기로 했다.
방수가방도 큰 것과 작은 것, 딱 한 개씩만 가져가기로 했다.
큰 사이즈의 수건 2장과 약간의 간식, 선크림, 물안경, 방수케이스, 현금 조금. 갈아입을 옷은 챙기지 않았다.
비에 젖고 물에 젖을 테지. 햇살에 마를 거야.
그리고 뒤꿈치가 막혀있는 신발. 야시장에서 하나 살까 했지만 마음에 드는 신발이 없었다.
그냥 신고 온 쪼리를 신고 가려다가 민아의 크록스를 빌려 신기로 했다.
사이즈는 조금 작았지만 남은 여행을 맨발로 보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여럿이서 가는 여행의 단점은 내가 맞추고 싶은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7시 50분에는 나가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여럿이서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진 않았다.
결국 준비가 다 된 순서대로 1층에 가있기로 했다.
나와 민정이가 먼저 1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툭툭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을 태운 채로. 나와 민정이는 서둘러 툭툭에 탑승했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외치며 남은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뛰어내려왔고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툭툭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바퀴가 튈 때마다 몸도 마음도 덩달아 붕 뜨는 기분이었다.
마치 오래 잊고 있던 두근거림이 다시 심장을 두드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쳇바퀴 굴러가듯 똑같이 흐르는 일상 속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곳에 온 이후 매 순간순간이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것 같다.
이 작고 불편한 트럭을 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조차도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다가오니까.
덜컹이며 달리던 툭툭은 다른 툭툭들과 함께 어느 여행사 앞에 정차했다.
이곳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출발하는 것 같았다.
툭툭에서 내린 기사 아저씨는 툭툭에 타고 있는 팀의 숫자대로 분홍색 방수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전에는 이런 서비스는 없었던 것 같은데.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손등에 매직으로 대충 쓰여있는 문구를 살펴보았다.
아마 우리가 오늘 하게 될 액티비티들이 쓰여있는 것 같았다.
각자의 생각들을 조합해 그 이상한 문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툭툭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20분 정도를 더 달렸을까, 가는 길에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지만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젖나 잠시 후에 젖나 똑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작은 빗방울은 설렘을 가득 실고 달리는 툭툭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툭툭은 이제 철문을 지나 산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툭툭 안은 설렘으로 가득차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솜사탕 가게 앞의 어린아이들처럼.
설레는 일은 많을수록 좋다.
그 설렘이 실망이 되더라도 말이다.
예전에 '실망하는 것이 싫어 기대하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망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다치는 일이니까.
그래,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면 절대로 발가락을 찧을 일이 없을 것이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발가락을 찧기 쉽지만 그만큼 어딘가에 도달할 가능성도 커진다.
찰스 케터링이 했던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많은 기대를 품고 살아야 하며 그보다 더 많이 설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대하는 동안의 설렘은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
그 설렘이 또 다른 기대를 품게 하니까.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있는 인생은 아무런 실망도 없는 삶보다 멋지지 않을까.
우리의 설렘을 가득 실은 툭툭이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