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는 순간, 추억은 시작된다.
베트남을 떠나는 비행기는 별 탈없이 곧장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우리에게 수많은 추억을 쌓아주었던 베트남이 아주 작은 빛으로 바뀌었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의 비행기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어둠 속을 달렸다.
비행기가 곧 인천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에 눈을 떴다. 창밖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둠 속을 달리던 비행기는 어느새 햇살 속을 비행하고 있었고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밀려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 비행기 안의 모든 사람들의 여행이 함께 끝이 났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이제 모두가 함께 화려한 야자수 패턴의 옷을 벗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차례로 내려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버스를 타는 이모와 작별인사를 하고 엄마와 함께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 사이에 조식이 익숙해져 버린 걸까,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던 우리의 배가 미친 듯이 꼬르륵거렸다. 마침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데 갓 구워진 델리만쥬 향이 코를 찔렀고 우리는 홀린 듯 다가가 결제까지 마쳤다. 지하철에서 자고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갓 나온 뜨거운 만쥬를 입에 물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출발할 때보다 조금은 쌀쌀해진 날씨에 쪼리를 신은 발이 조금은 시렸지만 따뜻한 만쥬가 있어 두렵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은 든든하기까지 했을지도.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고 일주일이나 우리를 보지 못한 우리 집 막내딸 호두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짐을 풀기도 전에 우리는 침대에 누워 여행사진을 보았다. 뭐가 맛있었고 뭐가 재밌었는지, 어디가 좋았는지에 대하여 한참을 떠들었다. 이때 정말 재밌었다고, 여기 정말 아름다웠다고, 여기는 꼭 한 번 다시 가보자고 지나온 여행을 되돌아보며 기억으로 옮겨갔다. 여행이 끝이 나면 그 여행은 곧 기억으로 옮겨간다. 기억 속에서 몇몇 특별한 것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우리의 여행도 추억이라는 폴더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서서히 마치고 있었다.
여행의 피로감이 몰려왔는지 잠이 쏟아졌다. 다시 눈을 뜨고 나면 이번 여행도 완전히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는 순간 추억은 시작된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속에 꼭꼭 숨어있다가 문득문득 떠올라 우리에게 웃음이나 힘을 주곤 한다. 길을 걷다 우연히 쌀국숫집을 보거나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볼 때, 창문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다가, 예쁘게 타고 있는 초를 보았을 때, 어쩌다 맛없는 술을 마셨을 때, 문득 흘러나오는 재즈에 고개를 돌렸을 때, 백발노인의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 추억은 반짝하고 기억으로 옮겨진다. 우리는 그 기억이 주는 힘으로 또다시 나아갈 것이다.
당신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기를. 아무렇게나 떠올린 기억도 당신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나아가 당신도 타인에게 예쁜 추억으로 남기를.
Ps.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 준 나니트립 1기 멤버, 행정리 장 씨 가문의 아리따운 첫째 딸과 막내딸 두 분께 이 글을 바칩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