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도플갱어세요?
걱정 때문이었는지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하지만 역시나 엄마와 이모는 준비를 끝마친 채 창가에 서서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어난지도 모른 채 구경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귀여워 조금 기다렸다가 아침인사를 했다.
오늘은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가동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 있었고 또다시 조식 혼내주기가 시작되었다. 쌀국수와 여러 가지 현지 음식들을 차례로 가져다 먹었고 여러 가지 종류의 음료도 마음껏 마셨다. 어제보다 일찍 내려오니 확실히 음식 종류도 더 다양했고 더 정갈했다. 역시나 각자 두 접시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일어나 한 접시씩 더 가지고 왔다.
식사 후 잔뜩 먹은 배를 통통 두드리며 앉아있는데 이모가 식후엔 커피라며 음료 옆에 있던 것을 뽑아왔다. 엄마와 이모는 한입씩 마시다가 이내 표정이 굳어진다.
“이거는 왜 이렇게 써?!”
‘쓰어다‘라고 하는 베트남 커피인데 아주 진하기 때문에 보통은 연유나 우유를 넣어 마신다. 하지만 그것을 그냥 마셨으니 쓸 수밖에. 다시 연유를 조금 넣어 저어주니 믹스커피처럼 달달한 느낌으로 마실 수 있었다.
조식을 먹는 동안에도 카톡이 복구되지 않았다. 평소처럼 금방 지나갈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결국 프런트에 도움을 받기 위해 내려갔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들은 업체의 이름을 묻더니 전화를 해준다고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며 잠시 후에 다시 연결해 보고 알려주겠다는 대답을 받고 올라왔다. 올라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업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택시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10시. 원래 업체에서 차를 보내주기로 한 시간이다. 혹시나 해서 밖으로 나가 기다렸지만 역시 차는 오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 택시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방으로 전화가 왔다. 카운터에서 걸려온 전화였고 업체와 연락이 되었으니 내려와 달라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1시까지 우릴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받았고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었다. 우리는 체크아웃 준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었고 엄마와 이모는 어제 시장에서 샀던 원피스를 함께 입었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은 또다시 지정석에서 창밖 구경을 이어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11시가 되기 10분 전. 내가 보기엔 어제와 똑같은 풍경을 두 사람은 열심히 눈에 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거야?“
“이제 호이안으로 넘어가면 다시 못 보니까 아쉬워서 그러지~”
두 사람은 장난감 가게 앞을 구경하는 아이들처럼 눈을 못 뗀 채 내게 대답했다. 이제는 정말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두 사람은 아쉬워하며 난간에서 일어났다. 그때 “쩍-”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돌아보니 이모가 팔꿈치 쪽에서 페인트를 떼어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팔을 대고 밖을 보고 있었는지 이모가 일어나자 난간의 페인트가 팔에 붙어 함께 떨어진 것이었다.
당황한 이모와 다르게 엄마와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한바탕 웃고 나서야 체크아웃을 할 수 있었다. 캐리어를 들고나가니 픽업차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가 타자마자 호이안을 향해 출발했다. 그냥 택시를 타고 갔더라면 호텔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붕 떠버렸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다. 한바탕 소동이 있었지만 결국엔 또다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삐걱대는 여행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동안 조금 지루할 것이라고 말해두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연신 좌우를 둘러보며 베트남 구경을 했고 웬만한 관광지보다 훨씬 흥미로워했다.
“언니, 저기는 5명에서 오토바이를 탔어.”
“저기 도로에 소 걸어간다!”
“언니, 언니, 저기 좀 봐봐! “
“저 사람들은 뭐 하는 거지?”
가는 길에 끊임없이 서로를 불러 자기 쪽 창문을 보라며 소리쳤고 감탄과 놀라움, 질문이 끊임없는 시간이었다. 가는 동안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조차 빗나가다니. 이번 여행에서는 계획과 예상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심지어 거의 다 와갈 때쯤에 엄마는 30분이 금세 지나갔다며 즐거워했고 이모는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스파에 도착한 우리는 시원한 차를 한잔씩 받아 들고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남녀 구분을 원하는지 묻기에 같이 받겠다고 했고 덕분인지 꽤 넓은 방으로 배정을 받았다. 일본에 온듯한 느낌을 풍기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각자 배드에 앉았다. 따듯한 물에 발을 담갔고 언 듯 레몬향이 기분 좋게 코를 간질였다. 긴장을 풀어주는 듯한 발마사지가 가볍게 끝나고 본격적으로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90분 코스가 긴 시간일 것 같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나와 이모는 기분 좋게 신음하며 감탄했다.
순식간에 90분이 지나가고 마사지가 끝났다. 옷을 갈아입었다. 이모는 베테랑 마사지사를 만나 매우 만족했고 팁을 드리고 싶어 했지만 우리가 가진돈이 단위가 너무 큰 것 밖에 남아있지 않아 드릴 수가 없었다. 반면에 엄마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마사지사 같다며 아쉬워했다. 아쉬움과 만족감을 나눠가진 채 미리 예약해 두었던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호이안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외곽이었고 택시로 이동했다. 지난번 호이안 여행 때 너무 마음에 들었던 숙소라 이번에도 같은 곳을 잡았다. 조용하면서도 넓고 쾌적하며 수영장과 맛있는 조식, 그리고 잘 가꾼 정원과 멋진 조경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리니 호텔 측에서 바로 캐리어들을 꺼내 옮겨주었기에 편하게 체크인할 수 있었다. 엄마와 이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 바빴고 너무 예쁘다며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구경하는 동안 체크인을 하는 중이었다.
“전에 여기에 방문한 적이 있니?”
조금은 어색한 영어로 프런트 옆에 서있던 다른 직원이 말을 걸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낯이 익은 사람이 내렸다는 것이었다. 3년 만에 돌아온 나를 단번에 알아보다니! 심지어는 내가 다른 친구와 왔었다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음번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메일을 보내주면 더 할인된 가격으로 결제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명함까지 건네받았다. 그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더 좋은 방으로 업그레이드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쌍둥이 맞지? 옷도 같은 것으로 입었네.”
내 눈에도 닮아 보이는 두 사람이 다른 이의 눈에는 쌍둥이처럼 똑같아 보이나 보다. 실은 그냥 자매라며 굉장히 닮은 것뿐이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두 사람을 지켜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너무 똑같은 걸!”
엄마와 이모에게도 말해주니 그냥 쌍둥이라고 하지 그래냐며 웃었다. 우리가 안내받은 방은 내가 예약했던 방보다 더 큰 방이었다. 뷰도 좋을 뿐 아니라 바람도 잘 통하고 숙소 바깥을 향해 있는 위치라 조용하면서도 중심과 멀지 않았다. 엄마와 이모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며 1박에 얼마냐고 연신 물어보았다. 1박에 1인 추가요금까지 10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이었고 코로나 전에는 더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내부도 정말 좋지만 이곳의 매력은 숙소 밖에 있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숙소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베트남의 자연경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과 중앙의 큰 호수, 호수 바로 옆의 식당, 그중 단연코 호텔 내부에 있는 스파로 가는 길이 압권이다. 물 위의 다리를 통해 건너가야 하는데 그 주변이 온통 거대한 야자나무로 꾸며져 있어 굉장히 이국적이며 아름다운 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만 수 백장의 사진을 찍은 것 같다.
호텔 구경을 마치고 룸서비스를 시켜 먹었다. 원래 계획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푹 쉬려고 했지만 엄마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간단하게 먹기 위해 피자와 스피링롤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음식은 빠르게 도착했고 그것보다 더 빠르게 해치운 뒤 밖으로 나왔다.
거의 매 시간마다 호이안 시내로 향하는 무료 셔틀이 있기에 시간표를 확인한 뒤 셔틀을 이용했다. 이번 외출 때는 내가 여행을 위해 주문제작한 티셔츠를 함께 입고 나갔다. 나니투어 season1이라고 적혀있고 팔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나니투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시즌별로 각자의 이름을 넣어주기로 했다). 호이안 시내에는 올드타운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전통 베트남의 향기를 제대로 맡을 수 있는 곳이기에 내가 베트남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 다낭을 여행하다가 잠깐 시간을 내서 들리는 곳이 호이안이라지만 호이안의 매력에 빠지고 나면 다낭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저녁시간에 도착했고 이때에는 굉장히 붐비는 시간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막차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고 야시장 구경을 하며 내일 엄마와 이모가 입을 원피스 두 벌(이번에도 역시 패턴만 다른 같은 디자인의)을 샀다. 야시장이 끝나는 지점에는 호이안의 인기 스폿 중 하나인 소원배타기가 한창이었다. 그 앞을 지나는데 이모가 사탕가게를 앞에 둔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또다시 장난기가 돌았다.
“이모, 저거 타고 싶어? 저거 엄청 비싼데..”
“에이, 저거 타서 뭐 해. 이모는 안타도 돼.”
말은 그렇게 해도 눈가에는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엥? 우리 내일 저거 탈 건데, 이모는 안타도 돼?”
그제야 이모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맥주와 과자를 하나씩 사서 셔틀을 타고 돌아왔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맥주와 과자를 뜯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하루하루가 기적 같았다. 첫날에는 태풍 때문에 입국도 어려웠는데 거짓말처럼 도착하자마자 비 한 방울 없이 오히려 날씨가 좋다니. 심지어 오늘은 해도 뜨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서 습하지도 덥지도 않은 우리나라 봄날씨 같았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는데 마음을 비우고 상황을 받아들이니 거짓말처럼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일도 모레도, 출국날까지. 어쩌면 비가 올 수도 있고 내가 밤을 새워가며 계획한 일정대로 진행할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여유를 갖기로 했다. 기회는 이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번 여행에서 하지 못한 일은 다음 여행에서 하면 된다. 받아들이는 만큼 딱 그만큼씩 여유가 생겼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가 유난히 시원하고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