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여행을 힘껏 즐기는 방법
우리는 3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했고 4시 정도에 잠이 들었다. 그것치고는 굉장히 이른 시간인 8시쯤 잠에서 깼지만 이미 엄마와 이모는 샤워까지 마친 상태였고 함께 창틀에 기대 창 밖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일어나자마자 이것저것 신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새벽 내내 비가 얼마나 왔는지부터, 바람이 어떻게 불었는지, 강에 뭐가 떠내려왔는지, 누군가 강에서 무엇을 잡았는지, 건물 옆 쪽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몇 시에 일어났는지, 마당을 뭘로 쓸었는지까지.
엄마랑 이모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나는 비몽사몽 한 채로 눈을 뜬 지 1분 만에 지난 2시간 동안의 바깥풍경을 압축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출발부터 삐걱거린 여행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일정대로, 계획대로 완벽하게 흘러가는 여행은 흔치 않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여행은 더더욱 흔치 않다. 그래도 좋다. 그 아쉬움이 우리를 다시 여행길로 인도할 테니까. 나는 이 완벽하게 삐딱한 여행을 힘껏 즐기기로 했다. 다른 두 사람처럼.
우리는 조식을 먹기 위해 2층으로 내려갔다. 비가 그치고 나자 비상발전기를 이용해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까지는 무리였나 보다. 우리는 걸어서 내려가야 했고 그 덕분에 더욱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조그마한 접시가 안쓰러울 정도로 빈 공간 없이 음식을 담고서야 우리는 자리로 돌아왔고 약속이나 한 듯 앞에 놓인 접시를 다 비우기 전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모는 처음 보는 음식이라면 무조건 그릇에 담았고 꼭 맛을 보았다. 반면에 엄마는 이모가 맛있다는 평가를 남긴 음식들만 손을 대었다.
우리는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야 식사를 끝냈고 엄마와 이모도 둘 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배를 통통 두드렸다. 1박에 2만 원 대에 예약했기에 조식에 대한 기대가 없었지만 굉장히 맛있었고 심지어 메뉴도 다양했다. 특히 쌀국수가 진국이었다. 후에 이곳은 이모의 인생 쌀국숫집이 되었으니까.
만족스러운 식사 후였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 힘겹게 걸어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꺼지지 않을 정도의 양을 먹은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는 다낭에서의 첫 식사에 대해 떠들며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낭 시내를 구경할 시간. 나는 빠르게 준비를 끝낸 뒤였지만 두 사람은 아직 한창이다. 분명 화장만 대충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30분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엄마와 이모는 둘 다 네이비색 원피스를 입었다. 안 그래도 꼭 닮은 외모가 이제는 쌍둥이 같아 보였고 누가 우리 엄마냐며 헷갈려하는 내 농담에 두 사람도 즐거워 보였다.
우리는 그랩을 이용해 시내로 났다. 우리의 첫 일정은 환전이다. 베트남에서는 금은방에서 환전하는 것이 환율이 가장 좋기 때문에 우리 외에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남의 화폐는 우리나라보다 한참 크기 때문에 환전 후나 물건을 사고 거슬러 받을 때 꼭 계산을 잘해야 한다. 타국의 화폐가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으려 최대한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금은방으로 입장했고 베테랑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무심하게 계산기를 내쪽으로 밀었다. 100달러당 받을 수 있는 돈이었고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본 최신 정보보다 조금 높은 금액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환전을 끝마쳤다.
원래는 환전을 한 후에 바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조식을 든든하게 먹은 탓에 건너뛰고 카페로 향했다. 베트남에 오면 꼭 데려가고 싶었던 카페가 콩카페였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카페이며 현지의 스타벅스보다 매장 수가 많다고 하니 베트남이 처음인 엄마와 이모에게 베트남 카페의 맛을 소개하기에 제격이었다. 두 사람은 시그니처 메뉴인 코코넛 스무디 커피를 주문했고 나는 나만의 최애메뉴 그린 라이스 스무디를 시켰다. 구수하면서도 달달하고 안에 찰떡같은 무언가가 함께 들어있어 씹는 맛도 있는 메뉴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코코넛 커피의 맛에 만족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카페에서 나온 뒤 다음 코스인 한시장으로 향했다. 한시장은 콩카페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다낭의 대표 시장이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고 베트남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 보는 열대과일들과 여러 기념품들을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쇼핑을 하기에도 좋다. 다만 처음 들은 가격으로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팁을 주자면 일단 그 가격에 절반정도를 낮춰 부를 것. 흥정을 통해 구매하는 것도 한시장의 매력 중 하나이다. 역시나 엄마가 모자를 만지작 거리자 주인아주머니가 바로 머리에 씌워주며 12만 동을 외친다. 12만 동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6천 원 정도. 저렴한 가격이지만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6만 동으로 시작해 점차 거리를 좁혀 최종적으로 8만 동(4000원 정도)에 합의를 보았다. 오랜만의 흥정이었지만 첫 시도치 고는 나쁘지 않았다. 엄마는 모자가 마음에 드는지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꾸만 바라보았고 나는 사고 싶은 거 말만 하라며 큰소리쳤다. 역시 푼돈으로 하늘이 되기엔 동남아만 한 곳이 없다.
이모도 모자를 챙겨 왔다며 한국에서 가져온 모자를 썼다. 그런데 이런, 취향까지 닮은 건가. 어째 두 사람은 모자까지 비슷하다. 서로 꼭 닮은 모습을 한 채 과일가게 앞을 지나던 참이었다. 달달한 망고냄새가 코를 찔렀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 먹을 망고를 바로 구매했다. 그때 내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구린내가 풍겼고 돌아본 곳에는 반갑게도 두리안이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과일인 두리안. 엄마와 이모에게도 맛을 보여줘야겠다 싶어 반쪽을 함께 구매했다. 이모는 그냥 하나 다 사지 왜 반만 사냐며 나무랐지만 일단 먹어보고 또 사자며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베트남 전통복인 아오자이를 맞추거나 현지옷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는 두 사람의 아오자이를 맞출 예정이었지만 한 번 밖에 못 입는 옷을 사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아오자이를 입고 호이안에서 꼭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두 사람은 낭만이 없나 보다. 아쉬운 대로 그 옆에서 원피스라도 고르라고 했고 두 사람은 이것저것 서로의 몸에 대보며 옷을 골랐다. 엄마랑 이모는 서로 비슷한 옷을 입는 것이 좋았는지 원피스도 비슷한 것으로 골라 입기로 했다. 디자인은 똑같지만 서로 패턴만 조금씩 다른 옷을 골랐고 역시나 흥정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시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핑크 성당에 들렀다. 무언가를 하려고 간 것은 아니었고 단지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유명 관광지이기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했지만 잠시 사람들이 없어진 틈을 타 재빨리 두 사람을 성당 가운데로 데려갔다. 비슷한 옷을 입고 똑같은 포즈를 한 두 사람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투샷을 잔뜩 찍은 뒤 단독샷을 찍으려는데 이모가 너무 어색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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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다른 포즈~”
“이모는 그런 거 잘못해~~”
우리 이모는 늘 찍어주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모는 카메라맨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들을 잔뜩 찍어주었다. 덕분에 우리가 커가는 모습을 지금도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도 볼 수 있었지만 그 안에 이모는 없었다. 가끔 들리는 목소리나 누군가가 잠깐 들고 있던 캠코더에 이모가 찍히는 순간들만 짧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번 여행에는 카메라를 놓지 말아야겠다. 이모가 우리의 어릴 적 추억거리를 남겨준 것처럼 나도 이제부터 추억거리를 잔뜩 남겨줘야겠다. 나중에 꺼내 보아도 금세 오늘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핑크성당에서 다양한 사진들을 잔뜩 찍은 후에 걷기에 지친 우리는 로컬샵에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다낭에서의 첫 마사지였다. 간단하게 1시간 코스로 마사지를 받기로 하고 결제를 했다. 로컬샵이라 시설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마사지만큼은 다른 곳에 뒤지지 않았다. 두 사람도 굉장히 좋았는지 조금씩 코를 골기 시작했고 나지막하게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마사지가 끝이 났다.
마사지가 끝나자 출출한 기분이 들었고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로컬 식당이라 대로변에 있지 않아 찾아가기 까다로웠지만 한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메뉴판도 있을 만큼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각자 쌀국수 한 그릇씩과 스프링롤을 주문했고 우리가 오기 전부터 미리 준비해 두었던 듯 곧장 음식이 나왔다. 역시나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는 최고였고 스프링롤은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이모는 스프링롤의 튀김옷 가루가 옷에 다 떨어진 것도 모르고 먹었으니 그 맛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낭의 한강을 구경했다. 바람을 쐐며 태풍에 휩쓸려 떠내려온 나무들과 풀, 곳곳의 쓰레기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고 역시나 두 사람은 열심히 관찰하며 떠들었다. 떠내려온 쓰레기들에 대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대해, 베트남어를 하며 지나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해. 두 사람은 굳이 관광지가 아닌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재밌어하며 구경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도 잠시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 옆에 있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여기 좀…”
아뿔싸, 내가 부른 사람은 엄마가 아닌 이모였다. 28년을 함께 한 엄마를 헷갈리다니. 두 사람은 서로 내가 진짜 엄마라며 까르르 웃었다. 시간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웃으며 사진을 찍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는데 두 사람은 역시나 아침에 서있던 그 창문가에 함께 서서 창밖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언니, 저 오토바이 좀 봐봐.”
“저건 뭐지?”
“저 쪽에 저 사람 보여?”
“어머, 저기는 예쁜 꽃이 피었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넷플릭스보다도 재밌나 보다. 한참을 구경하게 둔 후에 냉장고에서 망고와 두리안을 꺼냈다. 망고는 물론 이미 알고 있는 맛이었기에 다들 맛있게 먹었지만 문제는 두리안이었다. 이미 냄새에서 엄마는 빠르게 하차했고 궁금한 건 못 참는 이모와 나뿐이었다. 이모는 겁도 없이 큰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고 맛보기 시작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은 정확히 5초 후였다.
“이게 뭐야! “
물컹한 식감과 밀려오는 냄새에 참지 못한 이모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새로운 두리안팬 영입에 실패한 나는 쓸쓸하게 혼자서 남은 두리안을 다 먹었다.
“반통만 사길래 한 통 다 사지 그랬냐고 했었는데 반 통만 사길 다행이었네! “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망고를 집어 먹었고 야시장을 향해 출발했다. 선짜야시장은 다낭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야시장이다. 동남아의 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와 쇼핑거리, 볼거리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야시장이 한창일 시간이라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야시장 특유의 야식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랍스터구이를 먹기로 했다. 여러 가게들 중 우리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했던 집을 골랐고 수차례의 가격 흥정과 해산물의 구성을 흥정하여 마음에 드는 구성과 가격으로 합의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합의한 구성을 사진으로 미리 사진으로 남겨 두었고 우리의 구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손님이 많은 시간대라 우리의 메뉴가 나오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고 드디어 기다리던 메뉴가 나왔는데 역시나였다. 우리가 구매한 것이 아닌 비슷하지만 크기도 작고 조금씩 다르게 구성된 요리가 나왔고 곧장 아까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산 것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했고 아니라고 하던 그는 사진을 보여주자 곧장 다시 가져오겠다고 했다. 잠깐만 방심하면 바로 뒤통수를 친다. 꾸밈없이 순수하고 여유로우며 욕심 없어 보이지만 기회만 있다 하면 관광객의 뒤통수를 노리는 곳.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다면 단언컨대 졸업논문 주제로 뽑았을 것이다.
좋은 면을 보자면 해산물구이는 아주 맛있었다. 잘 익은 킹크랩 2마리와 새우들, 조개까지. 그걸 3만 원에 먹을 수 있다니. 엄마와 이모는 서로 앞다투어 내게 먼저 먹을 것을 권했고 망설임 없이 손으로 집어 껍질을 까주었다. 두 사람의 엄마 본능은 타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 혹시나 손을 닦을 수 있냐고 묻기 위해 매장 뒤편으로 갔다. 마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고 그에게 다가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3개의 서로 다른 대야에 순서대로 그릇을 넣어 닦고 있었지만 3개의 대야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찌든 때를 닦고 거품 세척을 하고 그다음 마지막에 물로 한번 더 헹구려는 요량이었겠지만 오래 사용해서인지 그저 음식물과 거품이 떠다니는 서로 다른 물통에 담갔다가 빼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분명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아픈 기분이다. 원효대사님이 꼭 이런 기분이었겠지. 잠시나마 높으신 분의 그것을 느끼게 해 준 그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동남아니까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식사 후에는 버릇처럼 카페가 당긴다. 우리는 즉석에서 신선한 과일을 넣고 갈아주는 생과일주스를 먹기 위해 돌아다녔고 마침 야시장 중간의 코너에 테이블도 함께 있는 상점을 찾았다. 나는 내 최애메뉴인 아보카도를 골랐고 이모도 최애인 패션후르츠를 골랐다. 엄마는 오랜 고민 끝에 망고를 고르고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렸다. 주문 즉시 그 자리에서 갈아주는 음료는 시원하고 달달했다. 한국에서는 비싼 과일들을 현지에서는 아주 신선하게, 그리고 훨씬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때에 우리는 보고 말았다. 뒷 테이블 사람들이 마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두고 가자 주인아주머니는 잽싸게 챙겨서 미리 담아 두었던 물에 넣어 한 두 바퀴 휘휘 흔들더니 새 컵들 위에 얹어두는 것을. 동남아니까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인 지 꼬박 10분 만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일어났고 다른 곳을 구경하며 잊기로 했다.
우리는 주말에만 볼 수 있는 용다리불쇼를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불쇼는 9시에 시작이라 그전까지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고 이미 사람들이 가득인 마사지 샾으로 들어갔다. 발마사지 30분에 10만 동. 약 5000원 정도다. 우리는 30만 동을 지불하고 여유롭게 마사지를 받았다. 한참을 걸었던 다리에 마사지를 받으니 나른한 것이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나와는 달랐는지 엄마와 이모는 자리에 앉아서도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두 사람을 자주 집밖으로 끌고 나와야겠다.
마사지가 끝난 뒤 우리는 천천히 걸어 용다리로 이동했다. 용다리는 말 그대로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다리인데 핑크성당과 마찬가지로 관광포인트로 꼽히는 곳이다. 이미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사람들이 가득이었고 우리도 그 틈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9시, 용다리 끝의 용머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10분 동안 불쇼는 이어지지만 끝나고 나면 택시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에 적당히 관람한 뒤 그랩을 이용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야시장에서 사 온 다낭맥주와 과일안주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맥주에 마시고 운전금지 표시가 있다면 다낭맥주에는 특이하게도 오토바이 금지 표시가 그려져 있다. 역시 오토바이의 천국 다운 경고문구였다. 다낭맥주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각자 한 캔 씩 비우고 나서 얼굴에 팩을 올리고 누웠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것은 그때였다. 오늘 하루종일 정신없기는 했지만 틈틈이 핸드폰을 보았을 때도 카톡이 전혀 오질 않았다. 그런데 하루종일 그 누구에게서도 연락 한통 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우리 가족들은 우리의 여행이 궁금하지 않은 건가. 그리고 네이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카톡 서버에 불이나 카톡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 온 우주가 나의 여행을 방해하는 기분이었다. 베트남은 대부분의 예약이 카톡으로 이루어 지기에 카톡의 먹통은 여행 중인 우리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당장 내일 호이안으로 이동하려고 예약한 스파의 픽업 차량도 카톡으로만 연락이 가능했다! 큰일이다. 과연 내일 아침 10시에 아무런 연락도 없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호이안에서 다낭까지 픽업차량을 보내줄지 의문이었다. 다시 한번 머릿속에 질문이 떠올랐다. 아니, 진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걱정이 가득한 채로 잠에 들렸는데 두 사람 다 오늘 너무 재밌었다며 내일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내일 일정은 과연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두 사람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물하겠다는 것은 너무 허황된 꿈이었을까. 생각나는 모든 신들이 원망스러운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알차게 돌아다닌 일정의 끝은 가득 담은 걱정이었고 그 모든 걱정을 품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