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멀고 험한 숙소로 가는 길

10분 거리 숙소, 3시간 걸려 도착하기

by 한경환

그래도 오랜만에 온 타국의 공항이라고 설레는 마음이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입국심사의 긴 줄도, 늘 그렇듯 내 캐리어만 뱉어내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도,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유심을 팔기 위한 호객행위까지. 눈에 닿는 모든 것이 반갑기만 했다. 반가웠던 모든 것을 지나 공항의 출입구를 나서는 순간이었다. 엥? 베트남의 공기가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 의문이 들었던 것도 당연하듯 도착했을 때의 베트남 기온은 20도를 밑돌았다. 바람도 선선하고 동남아 특유의 꿉꿉함이나 습한 날씨, 숨 막힐 듯한 더위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한국의 늦은 가을의 그것과 같았다.


공항 밖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비행기 안을 가득 채웠던 이들이 또 한 번 공항 밖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합류해 그랩을 잡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그랩 주변에는 아무런 택시도 잡히지 않았고 너무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 어플이라 사용법이 달라진 줄만 알았다. 그제야 웅성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낭 시내에까지 물이 차서 차가 다닐 수가 없대요!”

“저희 단체버스 예약한 것도 못 들어오고 있대요.”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온다는데 언제일지 모르겠다는데요?”



음, 망했군. 확실하게 망했다.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다낭공항은 물이 잔뜩 차올라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적당한 계단에 자리 잡고 앉아 잔뜩 굳은 표정으로 엄마와 이모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이런 날로 잡아서 미안하다고 하려는데 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이런데 나온 것만으로도 좋아.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해.”



친구들과 온 여행이었다면 분명 난리가 났을 상황이지만 두 사람 모두 침착했다. 일단은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고 그동안 그랩으로 열심히 택시를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금액을 올려보기도 하고 3명밖에 안되면서 9인승 택시를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우리 주변에 자리 잡고 앉은 현지화가 잔뜩 되어 보이는 한국인이 말을 걸었다.



“여행 오신 거예요? 날씨가 이래서 어떻게 해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 속을 박박 긁으려 드는 낯선 이에게 말투까지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시내 쪽도 난리래요. 점점 괜찮아지고 있긴 한데 차가 움직이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한 대요. 일주일 정도 오신 거면 일주일 내내 숙소에만 있어야 할 수도 있겠네요.”



뭘까. 이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도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다짜고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게 꼭 NPC인가 싶었다. 그는 다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한국에 다녀오는데 하필 오늘로 입국일을 잡은 것이 큰 실수라고. Too much inpormation.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 것 같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대형버스 몇 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패키지로 온 사람들을 태워 유유히 돌아갔고 개인 여행자들은 부러움의 눈빛으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열심히 그랩으로 택시를 잡기 시작했고 30분쯤 더 흘러서 간신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로 이동하는 동안 본 광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로는 물바다였고 우리는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상황에도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창밖의 풍경만 본다면 우리가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가는 길의 모든 전기는 꺼져있었다. 공항을 제외한 모든 곳이 정전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드문 드문 있는 가로등만이 간신히 앞을 비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매우 천천히 이동했기에 한참이 걸렸다.


드디어 도착한 호텔. 분명 24시간 프런트 운영이라고 적혀있었지만 굉장히 어두웠다. 여기까지도 모두 정전인 것 같았다. 호텔 직원은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이용해 안내해 주었고 어렵사리 체크인을 했다. 우리는 601호였고 정전이기에 엘리베이터는 역시나 작동하지 않았다. 6층까지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는데 분명 6층을 올라왔는데도 4층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층은 식당, 3층은 스파룸, 그리고 그 위층부터 201호가 시작이라 2층이나 더 올라가야 했다. 우리는 601호임에도 8층에 있는 것이었다.



‘음, 뷰는 좋겠군.’



좋은 점만 보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으니. 힘들게 올라온 호텔방. 1박에 2만 원짜리 치고는 시설이 괜찮았다. 꽤나 깔끔했고 나름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정전이라 콘센트 또한 무용지물이었고 우리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으로 비춰가며 대충 씻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제 여행 첫날이라니. 내일이 돌아가는 날인 것 같은 피곤함이다. 이 여행,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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