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창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오늘이 베트남에서 마지막 날이야!”
두 사람에게서 아쉽다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이모는 처음에 5박 6일이 너무 길어 지겨울 것 같았지만 지금은 더 있고 싶다며 벌써부터 나니투어 시즌2를 기대한다고 했다. 대기가 너무 많아 예약부터 걸어야 한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왔더니 손님이라곤 우리뿐이었고 여유롭게 호수 쪽 자리에 앉아 식사를 즐겼다.
“이렇게 맛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엄마와 이모는 연신 아쉽다를 외치며 마지막 조식을 음미했다. 며칠간 조식을 먹으며 엄마와 이모가 푹 빠져버린 메뉴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후식으로 제공되는 요거트! 너무 달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었고 여러 가지 토핑이 제공되어 함께 섞어먹는 맛도 있었다. 특히 신선한 망고와 사과, 용과 등 여러 가지 과일들을 섞어먹는 요거트를 제일 좋아했다. 요거트에 대한 아쉬움이 커졌는지 계속해서 먹다 보니, 식사를 다하고 나서 후식으로 먹는 요거트임에도 불구하고 12컵이나 먹게 되었다. 덕분에 소화제를 먹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원래 체크아웃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짐을 싸서 나왔다. 처음 호이안에 올 때 이용했던 스파를 한번 더 이용하면 두 번째에는 픽업과 드롭,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야기에 바로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체크아웃을 기다리며 홀에서 대기하는데 첫날 나를 알아본 직원분이 다가왔다. 그녀는 호이안을 충분히 즐겼냐고 물어봤고 나는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음번에도 이 호텔을 이용할 예정이라면 여기로 연락하라며 호텔 명함을 건넸고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찡긋 웃었다. 그녀의 따듯한 배려에 감동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짐을 싸서 나오자 업체에서 보내준 택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덕분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이전과 같은 설문지를 작성한 뒤에 자리로 안내받았다. 이모는 저번에 해주셨던 분으로 부탁드렸고 엄마와 나는 새로운 분이 담당해 주셨다. 한번 와본 곳이라 그런지 우리는 익숙하게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 알아서 족욕부터 시작했다. 잠시 후 들어온 마사지사 분들이 우리를 보고 웃으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마사지에 피로가 풀려서 그런가 깜빡 잠이 들었고 엄마인지 이모인지 모를 누군가의 코골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코골이 소리는 어느샌가 감탄 섞인 신음으로 바뀌어 있었고 셋 다 거의 동시에 마사지가 끝이 났다. 이번에는 다행히 셋 다 아주 만족할 만한 마사지를 받았고 각자 5만 동씩 팁을 드렸다. 이모는 이모 담당에게 쪼르르 달려가 저번 것까지 합쳐서 준 것이라며 10만 동을 쥐어드렸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뒤에 우리는 드롭 서비스를 이용해 미리 예약해 둔 다낭의 호텔로 향했다. 사실 오늘 밤에 떠나는 비행기라 호텔은 필요치 않았지만 워낙 숙박비가 저렴하다 보니 캐리어 보관과 잠깐의 휴식을 위해 잡은 호텔이었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시간이라 출출해진 우리는 호텔에 짐을 두고 반미를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마지막 날의 호텔은 다낭의 딱 중심에 있어 모든 스폿에서 가까웠고 마지막 날을 즐기기에 딱 좋았다.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반미집이었는데 현지인들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서 그런지 인테리어나 위생이 깔끔했다. 동남아의 로컬느낌은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깔끔하게 식사를 하고 싶다는 두 사람의 의견이 방영된 식당이었다.
요거트와 마사지의 콜라보 덕분이었는지 우리는 모두 배가 고파져있는 상태였기에 각자 반미 한 개씩은 금세 해치울 수 있었다. 각자 반미 한 개씩과 음료 한 잔씩, 이렇게 해도 한국돈으로 만원 조금 넘게 나왔다.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서 가장 그리운 것 중 하나가 이 말도 안 되는 물가가 아닐까 싶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에 우리는 그랩을 불러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다낭의 필수코스라고 불리는 롯데마트. 역시나 이곳이 한국인 건가 싶을 만큼 한국인들로 북적인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을 체감하며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저마다 특별한 간식들과 기념품 등을 카트에 가득 싣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우리도 곧장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생각이 날 것 같은 쌀국수라면을 잔뜩 담고 스리라차 소스(개당 300원 정도였다!), 각종 과자와 티백, 커피 등으로 카트를 가득 채웠다.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갖고 다른 제품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영복 코너!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라던 그들은 사뭇 진지하게 디자인을 꼼꼼히 살폈고 그중 탑 3을 선정해 단톡방에 투표를 붙었다. 치열했던 투표 끝에 오렌지 색 포인트가 들어간 검은색, 심플한 수영복으로 골라졌다. 두 사람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트 맨 위에 수영복 2벌을 내려놓았다. 카트가 가득 채워질 만큼 담았지만 계산해 보니 5만 원 정도도 안 나왔다. 저렴한 베트남의 물가를 또 한 번 놀라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의 캐리어에 정리를 하고 수하물로 붙일 짐에는 액체류를 가득 채웠다. 캐리어를 닫기 전 엄마는 출국 비행기에서 입이 심심했다며 과자 몇 개를 따로 빼두었다. 캐리어를 다 정리한 후에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러 밖을 나왔다. 역시나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이었도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라 인테리어도 위생도 깔끔하고 맛도 좋다는 평가들이 많아서 주저하지 않고 루트에 넣었던 곳이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식당은 한눈에 보아도 깔끔해 보였다. 우리는 파인애플 볶음밥과 해물볶음면,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단연코 생각이 날 쌀국수를 다시 한번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들이 차례로 나왔다. 가장 기대했던 파인애플 볶음밥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파인애플의 속을 볶음밥으로 채운 것이었는데 파내버린 파인애플로 음료를 만들어 함께 제공된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이미 긁어내서 나온 파인애플 속을 수저로 박박 긁어먹었다. 쌀국수도 진한 육수는 아니었지만 깔끔하고 부드러워 맛있었다. 함께 제공되는 다진 마늘과 베트남 고추를 취향껏 넣고 사장님이 직접 담그셨다는 마늘청을 조금 넣어먹으니 다른 곳에서 먹어본 적 없는 쌀국수맛이 탄생했다. 이모는 베트남 여행에서 쌀국수를 주문할 때마다 함께 오는 민트에 푹 빠져버렸고 몇 번이나 리필해서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배가 엄청 부르지만 다른 메뉴도 궁금하다며 하나만 더 시키자고 했다. 우리는 고민 끝에 다른 종류의 볶음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메뉴는 금방 나왔고 파인애플에 들어있지 않다 뿐 다를 것 없는 볶음밥이 나왔다. 우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역시나 맛있는 볶음밥이었다. 그릇을 싹 비운 후에도 금방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불렀다. 이 틈을 타 호기심 대마왕 이모는 한국인 사장님께 궁금했던 것을 전부 물어보았다. 특히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모두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이유가 여행 내내 궁금했기에 가장 먼저 물어보았다. 베트남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오토바이에 익숙하기에 면허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헬멧을 쓰지 않고 가다가 혹여 경찰에 잡히면 큰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주일간의 의문을 해결하고 나니 이모의 표정이 한결 더 가벼워 보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비행기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우리는 여행동안 즐겨마셨던 다낭맥주를 하나씩 사서 돌아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알차게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매었던 일이나, 같은 곳에 여러 번 방문했던 것, 더 새로운 메뉴들을 준비하지 못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아쉬움을 더했다. 이 아쉬움들이 다음 여행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겠지.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우리는 각자의 아쉬움 속에 맥주캔을 부딪쳤다. 롯데마트에서 사 온 과자 몇 개를 뜯어 펼쳐놓으니 웬만한 펍 저리 가라였다. 맥주캔을 조금씩 비워가며 우리는 그간 여행에서의 일들을 함께 곱씹으며 웃었다.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와 이모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모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엄마는 향신료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사람구경을 좋아하고 마사지는 무조건 강한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디저트가 들어갈 자리는 남겨놓으며 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은 필수다. 엄마는 수영을 잘했고 이모는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엄마는 시사상식이 풍부했고 이모는 궁금한 것은 참지 않는다. 함께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부분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 여행의 이유가 하나 더 생기게 해 준 이번 여행에 감사한다.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다. 숙소를 체크아웃하려는데 직원분이 하루를 다 있지 않았다며 아쉬워했고 대신 1명 추가분을 빼주겠다고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의 예쁜 마음에 감동하기에는 충분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한 후에 그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공항까지는 금방이었고 공항에 도착하니 이제야 여행의 끝이 피부에 와닿았다. 우리는 짐의 무게를 재고 수하물을 붙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셋이 나란히 앉아서 올 수 있었다. 평소 창가자리를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모에게 양보했다. 엄마와 이모는 창밖을 구경하며 이륙을 기다렸다. 어디에 데려가도 창문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일 것이다.
드디어 잠시 후에 이륙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비행동안에 먹을 과자까지 준비해 왔으면서 이륙하기도 전에 이미 머리를 맞대고 잠에 들어있었다. 가끔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짐스럽고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즐거워했고 신기해했으며 피어나는 감정에 솔직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때때로, 혹은 자주 생각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러 감정들이 떠오를 때쯤 비행기도 함께 떠올랐다.
아쉬움. 베트남을 떠나며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이었다. 이 비행기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대감과 아쉬움을 싣고 오르고 내렸을까. 이제는 느껴지는 아쉬움을 애써 외면하지 않았다.
이 아쉬움이 우리를 인도할 곳이 분명 멋질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