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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Feb 08. 2024

사투리

내가 살던 곳은 사투리가 심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말미에 “~겨”를 꼭 붙이곤 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들이 그 말미를 사용했기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사투리를 쓰고 사는 줄 몰랐다.

내가 쓰는 언어가 사투리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친구가 얼굴이 벌게져서는 “호주에서 온 애가 내 말투를 듣고 놀렸어.”라며 방방 뛰고 화를 냈다. “그게 뭐여, 어쩌라는겨.” 이 같은 말을 듣고 촌스럽다며 웃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친구를 다독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걔가 외국에 오래 있다가 와서 한국말을 몰라서 그런겨!”

지금도 집에서는 참새처럼 조잘거리지만, 어렸을 때는 하루의 모든 일을 부모님께 하나하나 말했기 때문에(특히 그날의 일은 자랑스럽다고 여겼기에) 집에 가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내가 쓰는 건 표준어지?”, “아니, 너 충청도 사투리 쓰잖아.”

세상에, 그날 작은 내 세상은 무너졌다. 그동안 믿어 왔던 모든 게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쓰던 표준어가 전부 사투리였다니. 나름 도시말을 쓴다고 자랑스러웠는데, 한순간에 시골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그 후로는 조금씩 언어 사용을 조심했다. 고등학교에서 타 지역 학우들과 어울리며 서울말의 사용 빈도를 늘려갔고, 상경하면서부터는 거의 사투리를 쓰지 않게 되었다. 본가로 내려와 직장을 잡으면서 다시금 기억 속 사투리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하는데, 어릴 적 촌스러워 보였던 사투리가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추억이라는 옷을 두둑이 껴 입어서일까, 그 시절의 티 없고 맑던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요즘은 일부러 정감 가는 사투리를 찾기도 한다.

아마 나에게, 사투리는 영원히 나만의 표준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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