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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Mar 12. 2024

내수

지금도 지방에 살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시내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작은 시골에 살았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끝동에 있었는데, 복도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웃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1층 주차장 앞 잔디에서 다 같이 삼겹살 파티를 한다거나, 더운 여름날 모든 집들이 문을 활짝 열고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파트 전체가 내 공간이었다.

아파트 뒤로는 다양한 크기의 돌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주차장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공터에 눈이 허리춤까지 쌓이면 학교가 휴교를 했는데, 그럴 때면 옷을 있는 대로 껴 입고 나가 온몸이 빨개질 때까지 놀 수 있었다. 조그만 키로 바라보는 주차장 부지는 언제나 황폐한 사막같이 보였고, 드넓은 사막을 지나면 그보다 더 넓은 논이 들판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 번은 황소개구리를 보여주겠다는 친구의 말을 따라 파란 지붕이 있는 집까지 논을 건너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파란 지붕이 가까워지지는 않고, 오히려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포기하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온몸이 진흙 범벅이라 엄마에게 혼날까 봐 옆집 문을 두드렸는데, 비밀로 해주시겠다던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씻겨주시고 친절하게 엄마에게 알려주셨다. 어른의 세계에는 비밀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밀투성이라는 것도 모르고.

학교에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작은 빌라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오르막이 나오는데, 죽은 뱀이나 청설모를 자주 보곤 했다. 나는 그 죽은 것들이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겁이 없는 개구쟁이 아이들은 죽은 것들을 가지고 놀거나 살아있는 것도 죽게 만들곤 했다. 때로 죽은 것보다 산 것이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학교 정문을 나와 왼쪽 풀숲으로 난 지름길도 있었다. 뱀이 자주 나온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다니지 못하게 했던 길이었다. 몇몇 용감한 아이들은 매일 지름길로 다니면서 그날의 모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방울뱀 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큰맘 먹고 딱 한 번 지름길로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방울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그 소리가 방울뱀 소리였는지, 어린아이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청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여하튼 온몸의 감각이 일어나는 나날이었다.

4학년이 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왔다. 자연이 장난감이었던 내게 이 신도시 단지는 놀이공원처럼 보였다. 알록달록한 고무 타이어 바닥을 통통 뛰어다니며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도시에서는 도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며 난생처음 학원도 다녀보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아서 금방 그만두곤 거의 학교만 다니다시피 했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학우들을 보며 도시 생활에 더욱 마음을 쏟았는데, 바쁜 하루를 보내고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도시의 화려함에 물들다가도 나의 모습은 어딘가 촌스럽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생활에 치이다가 작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본가에 내려가면 안심이 됐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며 가만히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했다. 결국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걱정 없이 행복했던 기억과 다채로운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따금 나를 간질이는 그 시절의 향수 때문에, 나는 시골이 좋다. 한적한 곳에서 새소리를 듣고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넓은 들판은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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