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일보다 웃어주는 일이 많아졌다. 목에 콱 걸린 감정을 삼켜 넘기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목소리는 더 높게 올리고.
친절이라는 예의를 입고 웃음을 연기하는 게 일상이 됐다. 처음에는 기저 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또는 수많은 당신을 붙잡기 위해 재미있어지기로 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일상처럼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다.
웃음을 가장할 때면 속으로는 익살을 품는다. 타인에게 보이는 다정함을 거울에 비춰보면 자조가 보인다. 나를 위해 스스로가 웃어준 게 언제였더라.
언젠가 나의 웃음이 텅 비어버릴까, 걱정을 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