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eport: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은 헌신적이라는 형용사가 잘어울린다. 헌신해야만 사랑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그런데 틀리다.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헌신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이기적인 것이 사랑이다.
이기적 사랑
우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이기적 사랑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제겐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제겐 당신을 사랑한 권리가 있고,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올 권리가 있습니다” -68p-
시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내겐 저 여자가 필요해. 그녀가 필요하다고…… . 그녀를 갖지 못하면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될 거야.’ -68p-
이 구절은 애인이 있는 폴을 사랑하는 시몽의 대사이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절실히 원한다. 일방적인 그의 사랑은 폴이 없으면 고통이며 폴을 갖게 된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원하고 있다고 보여질 수 있겠다.
애인이 있는 사람에게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그 사람이 애인과 전혀 헤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포기할 수도 있지만 뺏어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 순간은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싶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는 헌신적인 사랑보다 이기적인 사랑이 더욱 강하다. 어떻게해서든 그 사람을 꼭 내 것으로 만들겠다던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제 아무리 이기적인 행동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그런 이기적인 나의 모습으로 사랑이 시작된다. 내 행복을 위한 사랑인 셈이다.
헌신적 사랑
폴은 로제와의 관계에서 헌신적이라고 본다. 폴은 항상 로제를 기다리며 그의 장단에 맞추려 자신을 누르는 모습이 여러 포착되었고 헌신적 사랑이라고 보인다.
처음에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점점 나보다 너가 소중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전 과정이 사랑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사랑의 숙성 시간에 따라 점점 헌신적인 사랑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그냥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이기적이기도 하며 헌신적이기도 하다. 인간세계에 있는 모든 개념, 그러니까 인간 혹은 관계에 해당되는 개념은 모두 입체적이고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그 무엇보다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미지근한 사랑
사랑이 지나치게 이기적이지도 헌신적이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흘러가기 위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은 필수적이다. 작은 취향을 물어보는 일에서 시작해 너라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 폴은 주저했다. 그동안 로제는 그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취향을 물어보는 질문 따윈 하지 않았으며 시몽이 물어봤을 때, 그제서야 자신의 취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로제와 만날때는 로제 중심의 대화로 이루어졌고 그의 스케줄에 따라 그녀의 일상이 좌지우지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시몽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또 다른 설렘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썸머는 톰과의 첫 만남인 엘레베이터에서 그에게 'The Smiths' 좋아햐느냐 물어보지만 이후 썸머와의 연애에서 톰은 그녀에게 취향을 묻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결국 썸머는 자신에게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해주는 남자와 결혼을 결심한다. 썸머는 그런 사람을 선택했고 폴은 그 반대였다.
결국 폴은 자신이 외로워질 것임에도 다시 로제의 품으로 간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