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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몸은 늙어도

60대 중반이 되어보니 알겠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정신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몸은 늙어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수염이 온통 하얗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데 마음과 정신은 외려 더 푸르러지고 풍요로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과 정신은 더 뜨겁고, 더 유연하고, 더 풍부하고, 더 호기롭고, 더 당당하고, 더 묻고, 더 공부하고, 더 도전하고, 더 주체적이고, 더 행복하고, 더 섬세해진다. 세계와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다채로워 보이고, 더 신비로워 보인다. 중세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나이가 들고 몸은 늙었으나 나의 영혼은 늙지 않았다. 영혼은 아직도 늘 젊은 남자의 동경과 꿈을 품고 있다. 내 영혼은 늙지 않았고, 앞으로도 전혀 늙을 것 같지 않다.”고 자전적 고백을 했다. 


  그러니 은퇴 이후를 어찌 덤으로 주어진 여가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삶의 무대 뒤편에서 어슬렁거리는 권태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은퇴 이후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가는 전환의 시간이요,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는 주체의 시간이요, 그동안 농축해온 삶의 자산을 향유하고 나누는 공여(供與)의 시간이요,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성숙의 시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은퇴 이후를 전환의 시간, 주체의 시간, 공여의 시간, 성숙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삶의 무대 뒤편에서 어슬렁거리는 심심풀이의 시간을 살거나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비루한 시간을 살아간다. 20세기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도 이런 현실을 간파하고 “우리의 비극은 미처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퇴 이후의 삶을 은퇴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충만하게 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은퇴 이전과 비슷하거나 은퇴 이전보다 훨씬 비천하고 비루하게 산다. 극소수의 사람은 은퇴 이후에 삶의 최정상에 오르고, 대다수 사람은 은퇴 이후에 삶의 최저 상태로 미끄러진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 43%(OECD 국가 중 1위)가 대변하듯 삶의 양극화가 가장 심하게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은퇴 이후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출발이 아무리 좋아도 출발이 승패를 가르지 않는다. 중간 레이스를 아무리 잘 뛰어도 중간 레이스가 승패를 가르지 않는다. 마라톤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과 마지막 스퍼트다.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아야 완주할 수 있고, 마지막 스퍼트를 할 수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까지 내다보는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고, 은퇴 이후의 마지막 스퍼트를 할 수 있어야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멋지게 완주할 수 있다. 송나라의 대유학자 정이천(程伊川)도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少年登科)이 첫 번째 불행이고, 부모 형제의 지위에 힘입어 위세 부리는 것(席父兄弟之勢)이 두 번째 불행이고, 뛰어난 재주를 타고나는 것(有高才能文章)이 세 번째 불행이다.”


  참 역설이다. 다들 하늘이 내려준 복이라 여기고 부러워하는 것을 정이천이 불행의 덫이라고 말한 것은, 저것들이 자기 페이스를 잃게 만들고, 은퇴 이후의 마지막 스퍼트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으리라. 

  진실로 그렇다. 인간과 인생은 한없이 오묘해서 한 시절의 복이 화가 되는 경우가 많고, 뛰어난 재주가 외려 덫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젊은 시절만 보고 행불행을 말하는 것, 뒷배경만 보고 행불행을 말하는 것, 재능만 보고 행불행을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인생의 진정한 승패, 인생의 진정한 행불행을 말할 수 있는 때는 오직 은퇴 이후다. 은퇴 이후가 가장 중요하다. 은퇴 이후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스퍼트를 해야 할 때다.      

  하여, 나는 은퇴와 은퇴 이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려 한다. 인생의 마지막 스퍼트를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은퇴 이후의 시간을 은퇴 이전과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가는 전환의 시간,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는 주체의 시간, 그동안 농축해온 삶의 자산을 향유하고 나누는 공여(供與)의 시간,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성숙의 시간으로 살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려 한다. 가능한 높은 시선으로. 은퇴를 통해 인생을 보고 인생을 통해 은퇴를 보는 높은 시선, 진실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높은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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