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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할아버지의 물음 아닌 물음

내가 왜 사나

    

어젯밤에도 비가 내렸다.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고 바람까지 적당히 부는 게 꼭 가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순간 마음이 상쾌해지면서 이런 날 집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훅 들어왔다. 밥을 먹고 곧바로 모자와 땀 닦을 수건과 물을 챙겼다. 보통 걷는 코스를 따라 걸으면 8천 보에서 만 보 정도를 걷는데 오늘은 날씨가 쾌청해서 최대한 멀찍이 돌기로, 2만 보 정도를 걸어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집을 나섰다. 맑은 하늘 아래 논과 밭 사이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시골길, 개천을 따라 난 시골길을 홀로 걷고 또 걸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발과 다리에 힘을 느끼며. 일찍 올라온 벼 이삭을 바라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그렇게 멀리 돌아 마을 입구에 들어오니 두 다리가 좀 뻐근했다. 마침 83세 된 할아버지 부부가 긴 의자에 앉아 쉬고 있기에 반갑게 인사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디까지 갔다 오느냐고 물으시기에, 백암 근처까지 갔다 온다면서 17,500보를 걸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우리는 과수원까지만 갔다 온다면서 ‘너무 과하면 해롭다. 적당히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왜 사나’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 젊어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서울에 올라와 죽을동살동 모르고 열심히 살았고, 그 덕분에 작은 성취를 이루어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왜 사나’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부산에 형수가 홀로 살고 있어 가끔 전화를 드리곤 하는데 형수도 ‘삼촌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더라며, 형수에게는 ‘왜 그런 생각을 하시냐’고 대꾸했지만 자기 자신도 ‘내가 왜 사나’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탄식하듯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와 헤어져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할아버지 말씀이 마음에 맴돈다.   

   

[내가 왜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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