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은, 아름다운 겨울밤이라고>

Dusvlf

by Dusvlf





그 속은,

아름다운 겨울밤이라고







하얗게 얼어가는 창문을 봤습니다.


작은 결정들이 서로 자리 잡고, 꽁꽁 감싸며, 단단하게 얼어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결백한 마음처럼 보입니다. 그건 순수, 호기심,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당신이 찾아와서, 아니 당신을 만나서,


나는 이 도화지가, 무엇이든 그려 넣는 도화지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 숨겨진 걸 들어내는

차가운 석판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다 그렇지 않나요.

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남을 시원한 창처럼 훤히 보지 못해도,


작은 구멍 내놓고 그 속을 이리저리 탐험하는 것처럼.

당신 또한 그렇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그래서 멋진 고흐의 그림을 그립니다.

내가 달과 별이 좋아서.


당신은 내가 내놓은 그림의 창을 보더군요.


단단하게 얼어있는 그 흰 도화지를 녹이며,

그렇게 투명해진 창을 보며 말합니다.


그 속은, 아름다운 겨울밤이라고.


조그마한 틈 사이로 보이는 저곳은 저곳만 보여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밝게 산란해서 퍼지는 바람 색, 시원하게 불어오는 별빛. 그 모든 것은 황홀경의 아름다운 그 내면인 것이다. 누구나 아름다움과 예술을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가는데, 우리는, 주변에 불어오는 흐름이, 겨울이라 모두 감추고 다니는 것이다. 이맘때쯤 온다면, 언젠가 다시 불어올 따뜻한 바람이 온다면, 나는 떠나 있을 것인데, 그전에 따뜻한 기운 모두 감싸고, 소진한 뒤에, 다시, 봄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너무 추운 겨울 지나가며, 여러 얼어붙은 것들을 봤다. 길가며, 사람이며, 창가며. 흰 것은 많은 것을 그릴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이런 경우에는 그려지지 않고, 지워 나가는 것이며, 그럼에도 강한 추위는 사람을 얼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제자리로 얼어진다. 가까웠던 친구가 멀어지며, 자기 제자리인 양 얼어붙어 감히 손대기도 힘들고, 아무 꽁꽁 얼어있을 것 같은 먼 가족의 사랑도, 연인에 대한 사랑도 다시금 와서 손짓으로 녹여내는 것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워나가면 지워 나갈수록,

얼어붙은 게 녹아내린다.


티는 나지 않더라도, 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그래서 정성스럽게 닦아 준다.


창이라는 것은 물이 있고,

닦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전보다 더 쉽게 얼어붙어 버린다.

그러지 않도록 나는

정성스럽게 흐르는 물을 닦아준다.


같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그 대사를 빌려서 말하기,


말하면 말할수록 좋아하는

대사가 겹치는 것을 알고 놀라며,


생각하지 못한 것,

보이지 않던 부분까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그렇게 다정하게 앉아서,

서로의 말을 빌려, 주저리주저리,


그렇게 서로의 창을 닦아주는 것이다.


저 바다 끝에 걸쳐서 사라져 가는 해를 본다. 서로 각자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사람, 둘이 만나서 저 태양을 본다. 나 같은 경우, 항상 해가 지는 것만 보았고, 저 바다 끝에 있는 산을 어렸을 때부터 항상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같이 바다와 지는 해를 보면서, 우리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2악장을 들었다. 이제는 바다와 노을의 상징이 되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바다에 둥둥 떠있는 하나의 배를 우리는 성이라고, 도시라고 불렀다.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을 보며, 서로 마주 보고 있다고 신기해하는 것이다. 또 가면서, 흔들의자에 앉는다. 인생은 짧다. 짧은 순간에서 기억과 의미는 짧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령, 저기 해가 다 졌어도, 그 여운만큼은 구름을 색칠해서, 푸르고, 보라색에, 분홍색 빛의 직선들을 반사하는, 폭발시키는 구름을 보기도 하는 것처럼, 해가 지는 것은 짧게 지더라도, 그 빛과 여운, 의미 같은 것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알 수가 없다. 언젠가는 혼자 공원을 돌고 있어 보면, 늘 똑같이 보는 풍경에서, 무엇인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서, 이것을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면서, 풀어나가는 것이, 어쩌면 모래알 세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진다. 과거와, 삶의 미래는 모래알 세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모래알 세는 것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세다가도, 까먹어도 다시 하나둘 세는 그 지속성. 세는 것을 멈추지 않고, 허리를 굽히며, 노을이 지면, 반짝이는 모래를 보며, 오늘 하루 세는 모래 개수는 잊어버리고, 잠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어두워졌을 때 비로소 허리를 곧바로 세우고, 달을 보는 것이다. 오늘 하루는 열심히 살았다고.


새가 날아가는 과정을 우리 둘이서 목격한다. 물에서 힘차게 발길질과 날갯짓을 해서 마침내 올라간다. 파닥파닥 올라가는 그 날개가 활짝 펴지면서 하늘을 난다. 설레 보였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앞을 나아가지 않더라도, 바람에 맞서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날갯짓을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해도, 가능한 공중에 떠있는 것,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 새는 자유롭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샌가 하늘 위로, 주위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훌쩍 올라서서 아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선회한다. 날개를 접어 빠르게 하강하며, 수면직전 날개를 펴 물에 시원하게 착지한다.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인생이다.


자기 자신의 역사는 그것 자체로 아름답다. 개인의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는 것이 남이 뚜렷하게 보지는 못해도, 일정 부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곳에는 기쁨과, 사랑과, 아픔이 있고, 그중 슬픔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쁜 것은 몇몇 순간이 있지만, 슬픈 것은 순간뿐만 아니라, 거대한 마음속 웅덩이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러하다.


나 또한 꽁꽁 얼려서 내 창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놓고, 남들이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궁금하게 만들면서, 사람들 앞에서 빈 석판으로 다닌다. 나를 들어내지 않기로. 내 아픔 같은 것들, 꽁꽁 마음을 닫은 채로. 나는 얼어있는 구석에, 가족과, 친구와, 이전 사랑에 대한 아픔, 한탄 같은 것들을 철저하게 얼린다. 내 슬픔은 창가에 한처럼 맺혀서 그렇게 서서히 자리 잡아가며, 얼어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남과 남을 대할 때, 우리는 마음의 창을 닫아둔다. 살아가면서 사람에 치이고, 점점 꽁꽁 얼어버린, 마음에 창에서, 어릴 때는 헤벌레 하면서, 깨끗하고, 투명한 창이 어느샌가 하나하나 얼어붙어서 새하얀 도화지로 바뀌었다. 우리는 남과 남을 대할 때 하얀 도화지를 마주 보고 서 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얀색에서 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가까이하고 싶어진다. 더 가까이, 이것은 이제 창문이 아니다. 빈 하얀 석판이다.


남과 남 사이가 아니고, 점점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그래서 당신에게 내 손길을 하나 더한다. 내 따뜻한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주면, 얼었던 창이 슬며시 녹기 시작한다. 뚝뚝 흐르는 얼음물들, 울지 마... 그렇게 닦아도, 일정 부분 다시 몇몇, 나는 어쩌면, 이 창문을 다 닦아서 투명해질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 닦아 줄 수 없다면, 내가 그 대신 멋진 그림을 그려줄게. 나의 세계로 와. 내 세계를 하나하나 그려주니까.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가고, 항상 웃게 해주는 내가 있으니까. 당신이 저 배를 도시라고 말한다면 내가 성이라고, 동화처럼 꾸며줄 테니까. 그러면 당신은 내가 그려놓은 그림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세요. 나는 그려진 그 틈사이로 들여다보겠습니다.


당신의 역사는 그것 자체로 아름답다. 개인의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는 것이 내가 뚜렷하게 보지는 못해도 일정 부분 들여다보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어루만져주면서 내 석판을 녹인다. 점차 투명해지고,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 나에게는 살면서 저 먼 구석에 있는 가족에 대한 분노가 어느샌가 아련한 사랑으로 자리 잡아 녹아가기도 하면서, 가까이했던 친구가 멀어져, 제자리를 잡아가며, 멀어지고, 굳어지고. 이 관계라는 것은 어느 때 가까이했다가, 어느새 멀어지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위에 대한 의심, 배신감이 불어오는 어느 빙하기에 내놓은 창문은 그저 가만히 있다. 내적으로 자리 잡고 불을 피워서 창문을 녹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과연 어느 누구 정도 있을까. 그 속은, 내면은 따뜻한 당신 혹은 나.


어느새 빙하기가 끝나면, 얼음 다 녹아서, 남과 소통하려, 창을 열 것인데, 아마 이 계절에 당신을 만난 건, 그런 따뜻한 순간이 오기까지, 부둥켜안아서, 창을 녹이고, 닦아 주는 그러한 계절인 것이다.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단지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아버지의 창을 닦아주고, 어머니의 창을 들여다보고, 동생과의 추억을 가슴속 깊이 담아두는 것이 어쩌면, 이 빙하기를 잘 견디는 방법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 나는 이제 잠시 멀리 떨어질 것입니다. 짧지만, 밀도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짧지만, 밀도 있게 살아가니까요. 가족도, 친구도, 당신, 나 자신에게도 어쩌면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서로 밀고 당기고, 얼리고 녹이며, 살아가는 어느 겨울.




이 겨울의 끝에서는,

따뜻한 해가 물어옵니다. 따뜻한 봄을.

날이 가면 갈수록 차가웠던 어떤 것이

녹아내리는 계절을.

해가 덥석 물어 끌고 옵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불빛도,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도

다 우물쭈물 빛납니다.


빛이 사라지고, 노을의 실안개가

분홍빛으로 빛날 때,

나는 항상 당신 곁에 있습니다.


아직 잘 모르지만,

잠깐 보았을 때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나나 당신을

계속 보는 이유이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보며, 말합니다.


그 속은 아름다운 겨울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