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의 일만 할거야?
‘좋좋소’에 등장하는 조충범이 생애 첫 직장으로 선택한 곳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중소기업 ‘정승네트워크’였다.
인수인계도 없고, 명함도 없고, 자리는 무허가 책상.
회사 로고는 엉성했고, 대표는 자리에 없었다.
직급도 애매하고, 본인이 뭘 맡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몇 화가 지나며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전화는 조충범을 찾고, 고객은 이름을 기억하고, 회의에선 그가 중심에 서 있다.
그제야 알게 된다. 이 곳은 명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일하는 곳이라는 걸.
대기업에서 일할 때는 몰랐다. 아니, 애써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어도, 결국 사람들은 그 프로젝트를
‘1본부에서 했던 그거’ 혹은 ‘3팀에서 진행한 캠페인’이라 불렀다.
밤새 기획서를 썼고, 고객사 임원에게 프레젠테이션도 내가 했고,
회사를 대표하여 예산을 실행하고 현장도 내가 뛰었지만
결과물에는 항상 ‘회사와 조직 이름’이 우선으로 남았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조직의 일부니까. 그게 내가 월급을 받는 이유니까.
성과는 팀의 것이고, 실패는 개인의 것이니까.
뭔가를 잘하면 회사 전체가 돋보이지만
반대로 누구 하나가 삽질하면 회사 전체가 욕을 먹는다.
때로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회사로 인해 평가가 절하되기도 한다.
매번 잘하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억울한게 없다.
그래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 다닌다고 자부심은 있었다.
명함 꺼낼 때마다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면, 괜찮은 자리인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거기 까지였다. 명함을 내려놓는 순간, 나라는 사람도 같이 내려졌다.
한 번은 퇴사하고 몇 달 뒤, 예전에 맡았던 클라이언트를 우연히 만났다.
“어?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어디 회사 였더라?”
순간 민망했다. 내가 했던 모든 일은 ‘그 회사의 누군가’의 몫이었던 거다.
나라는 사람을 업계에 한번 던져 보리 라는 생각으로
큰 맘먹고 이직한 소기업에서의 첫 출근 날.
가장 신기했던 건 책상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내가 먼저 영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 깨닫는데 일주일 걸렸다.
시스템도 없고, 체계도 없고, 일은 바닥부터 다 해야 했다.
견적 내고, 기획하고, PT 만들고, 고객 미팅까지.
‘아니 이걸 다 내가 해야 돼?’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가장 먼저 손절한건 다름 아닌 은행이었다.
신용대출 이자율이 50%가 뛰었으니 말이다.
차차 적응이 된 시점부터 인생을 바꿔 놓은 일이 생겼다.
“손팀장님 계세요? 지난번 그 제안 너무 좋았어요.”
“이번에도 그 분이 직접 해주시나요?”
고객이 회사를 찾는 게 아니라,‘나’를 찾기 시작한 거다.
어떤 순간 깨달았다. 이제서야 진짜 내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회사가 아닌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기에,
고객이 주문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주는데 고단함이 없었다.
그리고 칭찬과 인정은 나라는 브랜드의 자존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대기업에선 내가 빠져도 돌아간다.
내가 없어도 누군가는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성과는 시스템이 만들고, 내 몫은 월급과 승진뿐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다르다. 내가 빠지면 일이 멈춘다.
대기업처럼 회사가 나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나라는 사람 자체가 브랜드가 된다.
성과는 ‘내 이름’으로 쌓이고, 내가 맡은 고객은 퇴사하고도 연락을 한다.
나는 이게 진짜 커리어라고 생각한다.
남의 시스템 안에서 ‘부속’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 일하고, 기억되고, 책임지는 것.
명함 속 회사는 영원할지 몰라도 그 안에 있는 ‘나’는 금방 잊힌다.
하지만, 고객이 나를 찾고, 내 이름을 기억하고, 내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건 회사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남은 것이다
명함에 적힌 로고는 회사의 것이고, 거기서 쌓인 신뢰는 내 이름에 남는다.
결국 기억에 남는 이름이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