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남의일만할거야?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네트워킹의 꽃이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자유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몇 년 선배였던 K대리의 캘린더를 우연히 볼 일이 있었는데,
점심시간 칸에 6개월 치 약속이 꽉 차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한 칸도 비어 있지 않았다.
“와… 점심 약속을 6개월치나 잡아놓는다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일에 미쳐서 야근이나 주말 출근하는 사람은 봤지만,
점심을 그렇게 치열하게 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K대리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유독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자였다.
어린 마음에 '밥맥의 힘'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도 조심스럽게 시도해보기로 했다.
회사 선배에게, 옆자리 동기에게, “오늘 점심 같이 하실래요?”
처음엔 부끄럽고 어색했다.
나는 원래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둘이 비밀 얘기 하려고 하냐" 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달을 하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 꾸준함과 뻔뻔함이 내 커리어를 바꾼 것 같다.
나는 회사 뿐 아니라 회사 밖에서도 밥맥을 이어 나갔다.
식당을 검색하고 예약하는 즐거움은 덤이었다.
고객과 점심하는 날이면, 고맙게도 회사에서 법인카드를 주셨다.
회삿 돈으로 고객과 좋은 곳에서 즐겁게 식사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혼밥이 편하다는 사람, 너무나 많다.
유튜브 보면서 혼자 도시락이나 먹는 게 더 좋다는 사람도 있다.
복잡한 직장 생활, 밥이라도 편하게 먹자.. 그런 생각, 수긍은 된다.
근데 냉정하게 말하자.
회사에서는 혼밥이 ‘손해’일 수도 있다.
매일 같이 일하고 보는 옆자리 동료, 상사와 먹는 밥도 손해일 수 있다.
왜냐면 회사 안에 ‘정보’는 공식 문서가 아니라 사람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회도, 평가도, 결정도, 결국은 ‘사람’과의 연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회사 밖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변해도 '언제 밥이나 같이 하자' 라는 말이 없어지지 않듯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세평'이 큰 역할을 하듯이,
사람은 같이 밥 먹은 사람에게 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조금 더 알려고 하고, 조금 더 도와주고 싶어지고, 조금 더 기회를 주고 싶어진다.
점심과 저녁 두 번씩 일주일에 최소 5번, 최대 10번의 기회가 있다.
점심만 따진다고 해도 한 달에 20번, 1년이면 240 차례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단순한 ‘식사 시간’으로만 쓴다.
같은 팀 사람들과만 몰려가거나 늘 그 멤버, 그 메뉴, 그 장소.
이건 루틴이 아니라 그냥 자기 매몰 아닐까.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란 '사료 먹는 시간'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이렇게 정의를 붙여 본다.
“점심시간은 하루에 한 번 있는 당신 커리어를 위한 1시간짜리 세미나다.”
재무팀, 인사팀, 기획팀, 개발팀, 영업팀…
위기 때 혹은 기회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협력사, 고객사까지 확장하면? 이건 그냥 네트워크가 아니라 인생 자산이다.
나중에 창업을 하거나 독립을 할 때, 그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기억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같이 밥 먹으며 웃던 사람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샌드위치 회의하고, 컵라면 먹으면서 일한다고?
그쪽은 점심시간 자체가 없다.
왜? 시간 = 생산성 = 돈이니까. 거긴 시스템이 그렇게 짜여 있다.
근데 한국은 아직 다르다. 밥 문화는 아직 살아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기회가 생기는” 절묘한 구조를 만든다.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상이 매일 혼밥을 하는게 행복해 보인다고?
그건 제목 그대로 미식에 초점을 맞춘 예능일 뿐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따라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작은 조직, 중소기업에선 밥맥을 만들기가 더 용이하다.
거의 대부분의 리소스가 회사 내에 존재하는 대기업 큰 조직과 달리,
중소기업은 상당한 부분을 외부의 협력과 조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객사와의 인간 관계도 더 돈독하게 만들려는 속성도 있다.
실제로 나는 직원 천명이 넘는 대기업에서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직원 3명 소기업에서 더 많은 밥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단순히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을 넘어서 실제 도움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팁하나 던져 드리고 마무리하려 한다.
네트워킹이란 갑자기 하면 정치가 된다.
가급적 빠르게, 신입 입사부터 혹은 이직한 첫날부터 일관되게 해야 한다.
갑자기 옆 부서 상사나 외부 사람들과 밥 먹기 시작하면?
“쟤 뭐지?” “밥으로 줄 서기 시작했네?” 이런 말,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
사람들은 ‘습관화된 행동’에 너그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