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이라는 토템_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평생 남의 일만 할거야?

by 손동진

아프리카 어느 부족 마을 한가운데엔 거대한 나무 기둥이 서 있다.

그들은 이걸 토템 폴이라 불렀다. 장식이 아니었다.

그 기둥이 쓰러지면 부족은 흩어졌다.

신앙의 중심이 무너지면 공동체도 함께 무너졌다.

그들에겐 그게 전부였다.


나는 본업이라는 개념에서 토템이 떠오른다.

본업은 단순 직업이 아니다. 신앙과 같은 것이다.

내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중심축이다.

이 축이 단단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부업을 해도, 취미를 가져도, 언젠가 창업을 꿈꿔도 다 제자리에서 논다.

중심이 잡혀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중심축을 세우기도 전에 가지부터 치려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 부캐, N잡. 말은 멋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본업이 텅 비어 있다.

그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은 뻔하다.

모든 게 가볍다. 금방 질린다. 조금만 힘들면 접는다.

왜냐, 신앙이 없으니까.


토템은 그냥 세워놓는 나무가 아니었다.

그 안엔 마나가 깃든다고 믿었다. 에너지다. 힘이다.

현대인에게 그 마나는 어디서 나올까.

나는 본업에 대한 몰입에서 나온다고 본다.

매일 같은 문제를 붙잡고, 같은 고객을 상대하고,

같은 구조 안에서 버티며 조금씩 숙련도가 쌓일 때. 그게 의례다.

출근은 의식이고, 야근은 수행이고, 성과는 응답이다.


본업을 대충 하는 사람은 자기 토템을 방치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존감이 왜 낮은지 묻는다.

삶에 왜 에너지가 없는지 묻는다.

당연하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서 힘이 나올 리 없다.

아무리 아침마다 요가를 해도, 밤마다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주말마다 워크숍에 가도 소용없다.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어떤 자극도 의미가 없다.


토템 신앙엔 반드시 금기가 있었다.

함부로 훼손하지 말 것. 가볍게 대하지 말 것.

"본업을 우습게 여기지 마라"는 말은 사실 이 뜻이다.

네가 서 있는 마지막 땅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마라.

그 땅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위기가 왔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인생이 잘 풀릴 때는 본업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냥 월급 받는 곳, 그냥 다니는 회사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위기가 오면 다르다.

회사에서 잘렸을 때, 산업이 흔들릴 때, 몸이 버티지 않을 때.

그때 나를 지켜주는 건 유행도 아니고, 부캐도 아니고,

잠깐 반짝인 사이드 프로젝트도 아니다.

오래 쌓아온 업이다. 몸에 밴 문법이다. "이 일만큼은 내가 안다"는 감각이다.


나는 창업 아이템을 상담할 때 항상 이걸 먼저 본다.

"이 사람, 본업을 신앙처럼 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창업은 아직 이르다. 그건 독립이 아니라 도피다.

진짜 독립은 중심이 단단한 사람만 할 수 있다.

중심 없이 뛰쳐나간 사람은 결국 어디선가 또 흔들린다.


어느 날 오후, 한 후배가 상담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 요즘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제 길을 찾고 싶거든요."

나는 물었다. "지금 하는 일, 제대로 해봤어?" 후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글쎄요. 딱히 열심히 한 것 같진 않아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친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길이 아니라,

지금 선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경험이었다.


본업은 현대인의 토템이다.

우리가 세상에 내리는 뿌리다. 이게 깊지 않으면, 아무리 멀리 가도 결국 쓰러진다.

본업을 버리고 자유를 말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가장 중요한 신을 잃은 상태다.

그리고 그 신을 잃은 사람은 어디를 가도 방황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새로운 도시로 가도.

중심이 없으면 모든 게 공허하다.

그러니 묻는다.

당신의 토템 폴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기둥은 지금 얼마나 단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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