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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진 Feb 14. 2024

센소지, 그 걸음을 멈추어다오.

남편 친구가족이 다녀갔다. 친구네가 온다니 알았다. 아~~ 그날이 구정이구나.(혹은 난 자유의 몸이구나..ㅎㅎ)

3박 4일의 일정 중 일박은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물론 모든 식사는 맛집을 돌기로. 부인 힘들까봐라는 남편의 말과 다르게 눈은 내 음식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넘쳐흘렀다. 뭐 나야 뭐가 됐든 음식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 눈빛에 괘씸죄로 잠시 솜씨 좀 내볼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ㅎㅎ


오랜만의 친구와의 만남이 남편은 마냥 좋았나 보다. 새벽까지 자기만 웃긴 과거사를 열심히도 복기했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부터 본인만 해보고 싶은 친구와의 다도를 즐겼다. 하품과 졸림이 가득한 친구의 눈이 참 애처로워 보였다. 아무튼 간단히 과일과 떡으로 요기를 때운 우리는 곧장 도쿄로 출발했다. 우리 가족 4명, 친구가족 4명, 캐리어 두 개. 그래도 차는 잘 달렸다. 가끔 정체 모를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면서.


센소지사원

센소지 사원은 에도 시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도쿄를 방문했을 때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이기도 합니다. 


도쿄 관광지를 검색했을 때 무려 첫 번째로 나오는 곳. 후기가 7만이 넘는 곳. 블로그를 잠깐만 들어가도 휘황찬란한 후기가 가득한 곳. 그곳이 센소지였다. 사실 검색에 있어 나의 진정성이 조금만 들어갔다면 센소지를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당히 대중적이고 유명하고 사진 찍기 괜찮을 것 같은 곳을 5분 이내로 해결하고 싶었던 얇실한 내 마음의 결과였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마치 잠결에 일어난 전쟁에 놀라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속옷 차림으로 도로로 뛰쳐나온 것 같았다. 입구에서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두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눈빛은 결연해졌다. 여유로운 관광객의 눈빛은 진작에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앞사람, 뒤사람, 옆사람에 끼여 그저 앞으로 앞으로 무한 행진을 반복했다. 양옆으로는 사진으로 본 기념품가게들이 즐비했지만 행렬을 탈출하는 건 오만가지의 번잡스러운 일들을 감내하겠다는 뜻이었다. 기념품가게는 택도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행렬을 끝내면 행운의 쪽지 뽑기, 초 불태우기, 동전 던지기 등과 같은 새해기념 의식들이 있었다. 이때는 영혼이 머리 꼭대기에 달랑달랑 붙어있던지라 전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족들은 즐겁게 하나씩 사람들을 보며 따라 했다. 우리에게도 친절하게 권하며.


쥐구멍은 어디에 있던가...



친구가족분들은 시장통 같은 그곳 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향을 피우고, 부적 뽑기를 하며 순간순간을 즐겼다. 즐기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빠진 불쌍한 고양이 눈을 한 나뿐이었을 것이다. 주차를 막 마치고 나중에 합류한 남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건넸을 때에도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재미있다고 연신 대답해 주었다. 나에겐 그 말이 마치 반어법과 역설법을 총동원한 말로 들렸지만 말이다. 너무 죄송하고 고맙고 죄송하고 고맙고 또 죄송하고 고마웠다. 그리하여 약 30분에 걸친 혼을 빼가는 센소지 관광은 다행히 무료 원숭이 공연으로 생쥐코털만큼의 행복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결연히 작별하는 연인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탈출했다.



혹시 센소지가 꿈의 버킷리스트이신가요?

센소지에 굉장히 스페셜한 의미가 있으신가요?

센소지를 가보지 않으면 상사병이 날 것 같으신가요?


그게 아니시라면, 저처럼, 영혼 없이, 생각 없이, 그저 사진 한번 찍어보겠다고, 그저 발도장이나 남겨보겠다고 무념무상으로 가시지 않길 정중히 권해드립니다.... 혹여나 영혼가출체험이 궁금하시다면 그건 적극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센소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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