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진 Feb 09. 2024

일본 할아버지에게 배우는 친절

오늘도 나 혼자 급하다. 아이들은 여유롭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는데 매일 나만 부산스럽다.(부글부글)

모자를 씌우고, 지퍼를 올려주고 학교로 출발한다. 얼굴은 똥을 본 것처럼 잔뜩 구겨졌다. 자전거를 만들어 타는지 한참을 뒤에 있는 아들을 재촉하며 딸내미 킥보드를 끈다. 낑낑대며 이제는 네가 밀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표정은 일초만에 환해진다. 자동반사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일층에는 노인부부가 사신다. 그중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꽤 자주 마주친다. 아침 산책 후 들어가는 할아버지와 아이들 등교 시간이 겹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만나면 꼭 인자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신다. 그리고 아이들과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시며 일본어로 한마디를 건네신다. 무슨 말인지 의미는 모른다. 하지만 인자한 미소로 건네는 말의 의미는 중요치 않다. 이미 그 따뜻함이 말을 건너뛰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장 전달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맹숭맹숭했다. 심지어는 뚱한 표정으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두 달이 넘어가자 할아버지와의 아침인사는 어느새 행복한 하루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인사라고 해봐야 고작 안녕하세요 한마디. 그리고 웃음 가득 하이파이브. 그리고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아주 짧은 행위가 나와 아이들을 순식간에 행복한 감정으로 데려다준다. 학교 가는 동안 할아버지의 미소와 즐거운 하이파이브가 머릿속에 남아 내내 마음을 따숩게 데펴준다. 


타인에게 친절하라. 그대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현재 그들의 삶에서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플라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모든 비난을 해결합니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꿉니다.

-톨스토이-


나의 구겨졌던 얼굴을 순식간에 펴주고, 무채색이었던 가슴을 무지갯빛으로 만들어주는 할아버지의 친절!

훗날 이곳을 떠나게 되면 가장 그리워하게 될 할아버지의 미소와 하이파이브!(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다)

할아버지의 작고 사소한 친절에 나와 아이들은 매일 근사한 하루를 미리 선불받는다. 글을 쓰고 있자니 내일은 따뜻한 음료수 한잔이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주시는 선물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지만. 


이전 26화 일본치과에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