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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진 Nov 15. 2023

일본약의 융통성없음에 대하여

둘째 아이의 기침이 오래갔다. 처음 며칠은 간간히 콜록대길래 약국에서 기침약을 사 먹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기침이 줄어들지 않아 병원에 갔다. (외국이다 보니 병원 가는 게 큰일이 돼버린다. 한국은 마실 가는 거였는데..) 예약시스템을 몰라 한 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고 기침약을 받아왔다. 나중에 아는 동생에게 물어보니 내가 간 병원이 쓰쿠바시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큰 소아과였다. 뭘 모르니 몸이 고생하는 찐 경험을 했다. 동생은 기침이 심해지면 예약도 불필요하고 항생제도 바로 써주는 이비인후과까지 알려주었다. 일본은 웬만해선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병원까지 다녀와서 든든했던 마음과 달리 딸아이의 맑았던 기침은 점차 가래기침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침 횟수가 줄어 가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 오늘아침 아이의 이마가 뜨끈함이 느껴졌다. 미열이었다. 동생이 알려준 이비인후과와 고민하다 처음 갔던 소아과를 다시 가기로 했다. 의사가 이미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고, 약을 다 먹은 후에도 기침이 멈추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기의 고통을 줄여보고자 간호사가 알려준 예약 어플을 켰다. 연달아 등장하는 일본어의 향연을 파파고와 함께 만끽하며 그렇게 미션을 점차 클리어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예약 성공!! 당일 아침 7시부터 예약가능임을 감안하면 대기 41번째는 순항 아닌가 싶다. 아니 스스로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에 잠시 대기 41번도 잊었다.


그렇게 남편과 병원에 도착하여 같은 의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위대한 파파고의 힘으로(의사도 번역기기가 있었다.) 아이의 증상을 좀 더 큰 리액션으로 설명했다. (사실 항생제를 타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구토는 했는지, 설사 복통이 있었는지 꼼꼼히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손가락으로 채혈을 하고 산소포화도? 같은 것도 측정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결과지를 보여주면서 아이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현재 기관지염입니다. 염증수치와, 산소포화수치 모두 평균보다 낮아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기관지염 초기라도 보시면 됩니다. 기침약, 항생제, 필요하면 해열제까지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아이에게 처방할 약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해 주었고 항생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크게 안도하였다.


일본도 한국과 같이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탄다. 대기가 평균 30분인걸 알기에 마트에서 장도 미리 보았다. (약국 안에 마트가 있다.) 죽과 수프와 마실걸 사고 나서도 10분을 더 기다려 약을 타고 집으로 왔다. 10시에 나간 것 같은데 집에 오니 1시. 아이가 아프면 하루의 전부가 멈춰진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왜냐면 항생제를 먹이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아니 아이에게 먹일 약인데 고약하게 쓴 가루약을 봉지 한가득 주시다니요. 결국 아이는 처음약은 모조리 뱉어내었다. 아이에게 투덜거리며 약을 한 번 맛본 나는 굉장하게 쓰디쓴 맛에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옥수수 수프를 한가득 끓여 수프 한 스푼에 가루 살짝 섞어 30번을 반복하고서야 간신히 먹일 수 있었다.(사실 20프로 정도는 결국 못 먹였다.)

약을 먹이며 나는 어제까지 칭찬했던 일본인들의 친절함 따위는 잊어버리고, 융통성 없는 일본의 실태에 대해 하나하나 떠올리기 바빴다. 글을 쓰는 지금 다행히 아이는 약을 먹고 숙면에 들어갔으며 나는 일본 소아과에서 주는 가루약의 형편없음에 대해 발설하고자 한다. 아니 꼬장 좀 부려야겠다.

"아니 친절하면 다입니까?~~~ 어른이 먹어도 오징어처럼 구겨질 약 한 사발을 아이에게 주면 어쩌라는 겁니까~ 안 친절해도 좋으니 융통성 있게 약 좀 주십시오!"


아,, 이렇게 진상 외국인이 되어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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