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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진 Nov 24. 2023

그 일본의사는 행복할까?


딸아이의 목감기는 다행히 거의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반대로 악화되고 있었다. 목감기가 떠나기 싫다는 듯 딸아이에게서 기어코 나에게 달라붙었다. 결국 나는 잔기침이 남아있는 딸아이와 이비인후과로 갔다.


그곳은 산골도 아니었는데 산속 은밀한 귀곡산장느낌을 폴폴 풍기고있었다. 당연히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다. 아는 동생이 알려준 이비인후과는 마감시간 3분이 지났다며 야박하게 고개를 흔들었고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나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검색해 들어갔다.


우리네 80년대를 연상케 하는 구수하고 예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낡은 인형과 빛바랜 장난감을 갖춘 키즈놀이터까지 있었다. 비록 딸내미가 들어가려다 '내 스타일 아니야'라는 쿨한말과 함께 퇴장했지만.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그래도 이유를 모르게 15분을 기다렸다. 비정상적으로 넓은 진료실에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의사가 있었다. 아이와 나의 상태를 파파고로 간단히 설명하고 추가로 기침흉내까지 냈다. 아이의 코를 빼겠단다. 한국에서도 했던지라 그러려니 했다. 한번, 두 번, 웬만해선  잘 참는 아이가 손사래를 쳐도 멈출 기미가 없어 내가 옆에서 제지하였다. 나는 콧물이 없어 그 짓을 당하진 않았다. 그러고 나서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데 내가 파파고를 뒤적이고, 파파고로 물어봐도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일본어로 뭐라 뭐라 해대는데 그냥 적당히 알았다 하고 일어났다.


진료가 모두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간호사가 요상하게생긴 의료기기 앞으로 앉히더니 딸내미는 콧물을 또 빼고, 나는 입으로 무언가를 불고 내쉬라는 거였다. 의아했지만 하라는 대로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도 모두 고통스러웠다. 콧물도 거의 없는데 이렇게까지 또 해야 하나 싶어 안 했으면 좋겠다고 두어 번 말했다. 그제야 간호사가 책을 보는 의사에게 설명하러 갔고 의사의 무심한 표정과 함께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방전을 가지고 찾아간 약국에서는 매일 세 번 먹는 사흘 치 항생제를 받았다.  이보다 더한 딸아이의 기침에도 항생제 처방에 소극적이던 이전 소아과와 참 대조적임을 느꼈다.


약국에서 약을 기다리는데 남편이 아들과 허둥지둥 들어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병원 리뷰를 보다 걱정돼서 왔어. 의사가 대화도 안되고, 자기 말만 하고, 치료가 터프해서 아이들이 많이 울었대. 그런데  약을 엄청 세게 줘서 치료엔 직방이라고 하더라. 좋은 건가? 하하하 "


처음 들어설 때의 스산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와, 그저 의사 면허증이 있기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의 의사... 과연 저 의사의 개인생활은 어떠할까? 그래도 나이가 드셨으니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따뜻한 저녁을 오순도순 나눠드실 것이라 생각, 아니 소망했다.


문득 나의 삶도 생각하게 된다. 밥걱정은 않겠지만 사람 간의 따뜻한 대화와 정이 메마른 삶을 원하는가? 물론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특히 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공감과 희망과 따뜻한 온기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온기 없는 삶은 싫다. 죽을 때 몇 명이라도 따뜻함과 희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즉흥적으로 방문한 병원의 냉기에서, 무표정한 의사의 얼굴에서 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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