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나의 자가용은 자전거이다. 어딜 가든 항상 녀석과 함께한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참 다양한 길을 만난다.
학교에서 마트까지 직선거리의 길이 있다. 나는 주로 평평하고 넓은 왼쪽길로 다니는 편이다. 아무래도 왼쪽이 학교 옆 길이고, 길도 넓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오른쪽 길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평소처럼 열심히 멍 때리며 달리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전거의 출렁거림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파도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써퍼가 된 듯 자전거는 힘겹게 한 발씩 나아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길가의 나무뿌리가 답답하다는 듯 아스팔트를 뚫고 나와버린 것이다. 어떤 곳은 낮게, 어떤 곳은 힘 있게 솟아 있었다. 문제는 이런 곳들이 아주 촘촘히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나는 멍 때리기를 멈추고 바로 앞 도로를 레이저를 쏘듯 바라보며 달려야 했다. 솟아오른 길 중 그나마 얕은 곳을 찾아 뱃살의 출렁거림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노력했다. 그 와중에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으니 길은 점점 좁아지는데 갑자기 흙길이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그것도 평평한 흙길이면 고맙겠지만, 흙과 풀이 엉켜있는 것이 속을 알 수 없는 늪처럼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흙길을 만나면 더 긴장을 하곤 했다. 자전거로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를 나는 마치 피난민처럼 정신무장을 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근거리에 초등아이들 3명이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오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미친 듯이 브레이크를 밟고 잽싸게 풀옆으로 자전거를 세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등학생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깔깔 웃으며 빛과 같이 지나갔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번에는 맥이 풀려 자전거를 타고 터덜터덜 달리니 순식간에 엉덩이가 편안해짐을 느꼈다. 평지였다. 정신없이 당한 험난한 여정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선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평탄한 길의 고마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로 코앞의 험난한 길을 두고 나는 편안한 평지만 달려왔다. 그래서 평지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다. 이제 험난한 길을 경험해 보니 평지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10분간의 사소한 경험으로 몸속에 각인될 소중한 교훈들을 얻게 된 것이다.
1. 뭐든 경험해 봐야 한다. 힘든 일도, 쉬운 일도, 경험해 봐야 내 것이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뼈가 되고 살이 된다. 경험에 투자하자.
2.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결코 당연하거나 하찮은 것이 아님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한 것들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