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집 두 고추에 대하여..

by 정효진


분명히 9시에는 나가야 한다고 그랬다. 며칠 전부터 입자가속기라는 기계를 돌리고 있어서 할 일이 많아졌다고. 어제도 밤늦게 들어왔다. 그래서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였다. 토요일에 출근해야 한다니 좀 불쌍하지 않은가. 8시에 눈뜨자마자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나의 부산함에도 꼼짝 않는다. 톤이 메조소프라노쯤 높아지자 드디어 꿈직거린다. 국은 벌써 상에 대령했다. 앉자마자 뜬금포로 회사에서 있었던 썰렁한 일화를 얘기한다. 나는 눈을 제일 찢어지게 만들어 화장실을 가리킨다. 그제야 국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일어선다. 화장실 행차 중 아들과 아이패드 이야기로 빠지려는 찰나 굿타임으로 제지시킨다. 휴.. 씻고 나오자마자 신생아처럼 옷을 챙겨서 힘찬 손짓으로 현관밖으로 내보낸다. 시계를 보니 9시 40분. 속에서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내보내서 다행이다.


사실은 운동을 위한 산책이 목표였다. 집에서 목표인 맥도널드까지 도보로 20분남짓. 아들은 자전거, 딸은 킥보드, 나는 맨다리로 가기에 딱 좋았다. 산책도 하고, 바람도 쐬고. 자전거에 한 무더기 책도 실었다. 맥도널드서 포테이토와 콜라를 곁들여 책을 읽는다. 돈은 아끼고 마음의 양식은 얻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온만큼 걸으니 확실히 하루치 운동은 확보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가재 잡고 도랑 치고, 아싸라비야 콜롬비야다. 잠시뒤 우리가 앉은 곳은 맥도널드 옆 코코스 식당. 아들과 딸의 합심 기습공격이었다.

"난 일본 맥도널드 맛없다고. 내가 언제 여기 오자 했어."

사실 나의 일방적 계획이긴 했다.

"나도 사실 맥도널드는 싫었어. 코코스가 더 좋아."

평소엔 독주보다 독했던 마음이 오늘은 말랑말랑해졌다. 못 이기는 척, 싼 것 두 개만 시키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생전 먹지 않던 비싼 해산물 파스타를 시켰다. 그러곤 딱 한입 먹고 맛이 이상하다며 입을 닫았다. 속에서 분노의 마그마가 쳐 올라왔다. 하지만 입맛이 안 맞는다는데 시뻘건얼굴로 뭐라 하기도 뭣하다. 그래도 배곯지 말라고 스테이크 비슷한 비싼 걸 시켰다. 처음부터 계획에 없던곳에오니 가성비계획을 잊고 맛탱이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스테이크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아들과 가뿐히 2차전까지 완료했다. 2차전의 중간과정은 뻔하니 생략. 마그마 폭발 10초 전이라고만 해두자. 곧 도착한 스테이크는 불굴의 의지로 한 조각을 남겨두고 다 먹였다. 이건 음미의 문제가 아니다. 체해서 소화제를 들이부어도 먹여야 내속이 편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계획 예산의 3 배가 넘는 돈을 내고 식당을 나왔다. 오전설사로 너덜너덜해진 몸속에 해산물 파스타를 구겨 넣은 상태로.


이하 집에 오기까지 아들의 파이널 쿠데타까지 겪자 마그마는 하도 기가 차서 식어버리고 말았다. 파스타로 너덜너덜해진 속과 황폐해진 마음. 그리고 망한 계획. 그리고 한참뒤 나를 꼭 끌어안으며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아들내미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고추 달린 것들은 고춧가루가 되지 못해 한이 서렸나 보다. 어머님에게 김치하시라고 보내고 싶어졌다.

"어머님~~ 고추 안 필요하세요? 김치엔 고춧가루가 가장 중요하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강공주가 별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