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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진 Mar 27. 2024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길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필름 같은 한 장면이 있다. 왜 이 장면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떠오르는지는 나도 정말 알고 싶은 수수께끼이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충남의 산골 마을 중턱에 허름하게 자리 잡은 우리 집은 그래도 마당이 있었다. 마당 없는 시골집이 어디 있었겠느냐만은 텁텁하고 인정머리 없는 시멘트나 돌이 아닌 부드럽고 포근한 흙마당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뛰어놀기에 아주 딱 좋은 봄 언저리 어느 날. 마당 가장자리에 턱 하니 자리 잡은 텃밭은 씨를 뿌리기 위해 흙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중간중간 흙밭을 나뉘어줄 몇 갈래 길들이 잘 나뉘어 있었다. 일몰시간이 다되어 하늘은 어중간한 주황색의 신비로운 배경을 만들어 주었고, 집안에서는 엄마의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공기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생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몽실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 기억이 내 행복의 베스트 필름이기 때문이다.


진돗개는 아닌데 진돗개처럼 생긴, 하지만 똥개라고 하기엔 너무 잘생겼던 하얀 우리 몽실이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웃는 게 아니었다.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귀까지 올린다. 눈은 반달이다. 꼬리는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예의 주시하면서 말이다.  나는? 나 또한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임전무퇴의 자세로 몽실이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 나와 몽실이는 엄마가 열심히 다져놓은 흙밭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북한의 남침도, 세계전쟁 발발도, 엄마의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 따위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 둘만의 세상에서 잡고 잡히는 치열한 교전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잡으려는 나와 절대 잡히지 않으려는 몽실이의 머릿속엔 정말 그 순간만 있었을 뿐이었다.


요래조래 눈치 게임을 하면서 왼쪽으로 쫓아가면 오른쪽으로 도망가고 위로 뛰어가면 아래로 달려가는 아마 한 시간 언저리였을 시간들. 몽실이의 해맑게 웃고 있던 초롱초롱한 눈. 전투 자세로 꼬리를 흔들며 나의 모든 것을 예의 주시하던 모습들과 행동들.  그리고 그런 몽실이를 열심히 쫓아다니며 즐거워했던 나의 모습.


아름다운 일몰과 푹신푹신했던 흙밭과 밥 짓는 냄새까지, 몽실이와 함께했던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은 하나의 필름으로 나의 머릿속에 박제되어 내 인생을 지탱해 줄 행복의 순간이 되었다. 슬픔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때를 떠올리면 매번 눈물이 차오르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왜 그 순간이 그리도 행복했을까.


애써 분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엄마가 우리 몰래 팔아버려서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헤어진 몽실이가 행복했길 바랄 뿐이다. 부디 남은 생을 더 행복하게 살다 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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