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움과 당황을 안고 입실했다. 입원생활 스타트였다. 지금에야 담당의 면담으로 흉골뼈가 눌린 걸 확인했지만 사고당시 응급실 소견상으론 골절로 나왔기에 정말 패닉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진정되자 4인실의 환자들도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아이고, 어떻게 들어오셨대? "
"교통사고로 흉골뼈가 골절됐어요."
"아이고, 어쩐댜, 참 아플터인디. 그래도 푹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깔끔한 백발머리의 할머니 목소리는 다정하면서도 정확했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물어봐주시고 공감해 주심에 따뜻함이 베어났다. 엄마와 나의 좋은점을 찾아서 아낌없이 칭찬해주셨다. 도움이 필요하실때는 센스있는 부탁으로 해결하실줄도 알았다. 연륜과 경험에서 오는 지혜가 빛이났다. 이틀뒤에 퇴원하실 때는 어쩐지 묘한 아쉬움까지 남았다.
할머니가 퇴원하신날 저녁엔 80대 초반의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두명의 사람과 함께였다. 곧이어 담당의가 들어와 MRI를 찍어야 되는데 가족동의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따님은 오는 중입니다. 제가 따님 대신이니 그냥 다 찍어주세요."
목사부부는 의료진의 거부에도 본인의 막강한 권한력을 주장했고 답답해했다. 곧이어 딸들이 도착하고 나는 재례시장 한복판에 와있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4명의 대화로 왁자지껄한 와중에 하느님 소리도 두어 번 들었다. 곧 저녁밥이 들어오고 할머니는 혼자서 힘겹게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식사 중이신 할머니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엄마, 우리도 밥 먹고 올게. 식사 다하고 식판은 그냥 둬. 누군가가 치워줄 거야. "
그 누군가는 내가됐다.
다음날 아침에 힘들어하시는 할머니 곁에 보호자는 없었다. 식판을 나르고 치워주는 일은 또 나의 몫이었다. 아침을 마치고 한참 후 왁자지껄하게 들어온 그들은 보호자침대에 철퍼덕 누워 본인들만 쉬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퇴원했다. 원 거주지인 공주로 전원시킨다며.
종합병원 다인실의 병동생활은 어떤 면에선 참으로 재미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보고 겪으며 나는 어디쯤에 서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따뜻한 향기는 아니더라도 구린내는 풍기지 말아야겠다. 구린내는너무 지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