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엘리 Oct 09. 2024

가을, 어반 스케치 하기 좋은 날

꾸준함의 힘

청명한 하늘과 나무 끝에 노란 나뭇잎이 살짝살짝 엿보이니 가을이 왔음을 실감했다.

지인들과 함께 어반 스케치를 하기 위해 공원으로 향했다. 이런 날이야말로 야외에서 어반 스케치를 하기 딱 좋은 날이지.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멋진 중국풍 정자가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여 있고 그 앞엔 작은 계단식 폭포가 흐르고 있는 풍경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마음만 앞선 초보자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야심 차게 준비한 접이식 간이 의자가 꼬일 대로 꼬여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려봐도 선이 더 꼬이기만 할 뿐. 힘으로도 해결될만한 게 아니었다.

'에잇! 그냥 가위로 콱 잘라버리고 싶네. 갖다 버려야지.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

스케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어찌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작은 의자를 펼치고 그제야 숨을 돌리며 그릴 대상을 살폈다. 보기엔 참 멋진 풍경도 막상 그리려고 하니 막막했다. 어떻게 그려야 하지? 그리다 보니 자꾸 건물이 삐뚤어졌다. 마음이 삐뚤어졌나? 이제 채색할 시간. 물감과 붓을 들고 나름대로 열심히 채색을 했다. 초록색을 옅은 색에서 짙은 색으로 명암도 넣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불편한 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겨우 스케치를 마쳤지만 내리쬐는 햇볕에 도저히 못 참고 결국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모자를 쓰고 왔어야 하는데 가을 햇살을 너무 얕본 탓이다. 초보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햇빛도 힘들고 자세도 잘 안나왔다. 자꾸만 개미가 물통에 기어 올라가는 걸 몇 번을 살려줬는데 나무를 칠하는 사이 기어코 물통에 빠져버렸다. 뭐가 그렇게 개미를 유혹했던 것일까?

딴 생각도 잠시,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작은 의자에 엉덩이가 아파졌다. 허리도 아파졌다. 서둘러 마무리를 짓고 정리를 했다. 완성된 그림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각자 그린 그림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증 사진을 찍으면 오늘의 어반 스케치는 완성! 저쪽에서도 부스럭 부스럭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완성 하셨나요? 모여서 사진 찍어볼까요?"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그림이 확 비교가 되었다. 같은 대상을 보고 그렸는데 각자 그림의 표현들이 달랐다. 다른 사람의 그림의  장점은 잘 찾아지는데 내 그림은 단점만 보였다. 정자는 균형이 잘 맞지 않아 보이고 나무색에 물을 좀 더 탔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혼자 볼 때는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그림과 비교하다 보니 너무 못한 거 같았다. 내 그림이 유치하고 어설퍼 보여 마음이 작아졌다.

서로의 그림을 칭찬하며 감상하는 중에 내 그림을 보고는

"많이 늘었네요" 라고 했다.

그래, 분명 많이 늘었다. 계속 발전해나간다는 것은 객관적인 실력에는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처음 그렸던 그림과 비교하자면 나무 표현도 다채로워지고 명암도 좀 더 자연스러웠다. 잘하지는 않지만 좀 나아진 것이다. 경쟁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함께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주눅 들지 말고 작은 것부터 다듬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린다면, 좀 더 잘 그리고 싶다면 좀 더 자주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꾸준함의 힘은 그림에서도 통할 테니까.

이전 22화 가을 달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