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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엘리 Dec 04. 2024

창밖의 고요한 아침풍경

여행의 이유

여행을 가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창가에 앉는다. 아이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고 사방은 아직 조용하다. 불을 켜지 않은 채 바스락대는 이불에서 빠져나와 창밖 풍경에 빠져든다.
어느 도심의 높은 호텔에서도, 한적한 시골마을 펜션에서도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아침의 풍경은 고요하다. 그 고요를 말소리 하나 없는 더 깊은 고요속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좋다.
평소와 다른 멋진 풍경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혼자 간 여행이 아닌 다음에야 겨우 이 시간밖에 없다.
그렇다고 새벽 4~5시에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래봐야 6시쯤거다. 아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30분도 안되리라.

얼마 전 갔던 여행은 예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축제 기간에 겹쳐서였을까? 인기가 많은 관광지여서 였을까? 어디를 가도 사람에 치였고 식당과 카페는 긴 줄 서는 것은 기본에 여기저기에서 시끌시끌, 쿵짝쿵짝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곳의 매력을 좀처럼 느낄 수가 없었다. 예쁘다는 한옥마을에서도 유명한 간식거리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면서도 뭘 한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보내다 해가 저물었다. 돌아온 숙소에서 뻗어버린 것은 그 때문이었을테다.
다음날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하얀색 커튼을 열었다. 한지가 발라진 격자무늬 창문 밖으로 어젯밤 무심코 지나온 아담한 정원이 보였다. 작은 연못과 소나무가 한옥집의 단정함을 느끼게 했다. 낮은 돌담 뒤로 한옥집이 이어진 오래된 골목길이 고전의 멋이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게다가 반대편 작은 창문밖으로 보이는 감나무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기와지붕 위에 살며시 드리워진 감나무에는 주홍색 감이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이런 곳이었구나'
그제야 이곳이 좋아졌다. 왜 이렇게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지도 알 것 같았다.
마침 비도 그쳐 맑아진 하늘에,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들과 한옥 지붕들이 어우러져 가을의 낭만을 느끼게 해주었다.
전날까지도 뭔가 정신없고 복작복작한 관광지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에 좀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

창밖을 보고 있으면 다채로운 풍경에 서서히 빠져들게 된다.  테라스가 있는 숙소라면 테라스에 나가 조금은 차가운 공기를 들이켜며 경치를 감상하다 책도 읽고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테라스가 없다면 코가 닿을 정도로 그저 창 앞에 매달려 있는다. 불멍이 아닌 창멍이다.
인기척에 깬 남편이 "뭐해?"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 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지만 몸은 아무것도 안 해도 마음속에서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 구경보다 재밌는 게 자연 구경이다. 사람이 빠져나간 후 자연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인위적으로 예쁘게 꾸민 포토존보다 자연스러운 자연 풍경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어떤 날에는 방 안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에는 창을 가득 메운 푸르름이 가득한 산의 자태에 감탄하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창 앞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하늘과 맞닿은 파란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곧 있으면 튜브를 들고 아이들이 첨벙 첨벙거릴 바다지만 아직은 은은하게 빛나며 하염없이 파도만 철썩이고 있는 모습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파란 바닷속을, 하얀 구름을 마치 미술 작품처럼 감상해 본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소리들.
고요함이 감싸 안았다.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까지도 내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시간.
하루 중 몇 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게 삶의 위로라고 하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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