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왔음을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발가락이었다. 날이 차가워지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발가락 끝부터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 지긋지긋한 수족 냉증이 찾아온 것이다. 발가락 끝이 차가워져서 양말도 신어보고 발도 주물러 보지만 쉽사리 냉기를 쫓을 수가 없다. 따뜻한 차를 마셔도 발끝까지는 그 따뜻함이 퍼지지 못한다. 폭신한 이불 속에서도 발끝만은 여전히 시리다. 몸은 춥지 않은데 손끝, 발끝은 아리도록 시리다.
수족냉증은 혈액순환이 잘 안돼서 생긴다고 한다. 모세혈관의 수축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 수족냉증이 나와 함께 한 시간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힘들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옆 사람의 온기. 아이에게 슬며시 다가가 손을 잡아 본다. '역시 나의 핫팩!' 아이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노느라 바쁜 아이는 금세 손을 빼고 자리를 피한다.
다음 타깃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이다. 허벅지 밑에 발을 넣었다. 차가운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한다. 그 모습에 더 놀리고 싶어 손가락을 목덜미로, 옷 속으로 넣으려 시도하지만 키도 크고 날쌘 남편은 몸을 배배 꼬며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손발 시려" 남편한테 말했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손이라도 잡아주는게 더 나았을텐데 대문자 T 성향의 남편에게서 "양말 신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양말은 이미 신고 있었건만. 무심하게 내뱉은 말에 서운한 마음이 솟아났다. 나는 말을 예쁘게 해야겠다며 당신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수고했어"라며 안아줬다. 아들은 어리둥절하며 "왜이래? 우리엄마가 달라졌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싫지 않은 듯했다.
예쁜 말한마디. 돈드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어려운 것도 아닌데 기분을 좌지우지하며 마음을 들었다놨다한다. 따뜻한 온기가 있는 말은 어쩌면 공감과 상대를 이해할 때 나오는게 아닐까?
말에도 온기가 있다. 말의 온기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게 해준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차가운 몸과 마음에 온기를 준다. 때로는 해결책보다는 공감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