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여러 이슈로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5학년이 되어서야 첫 소풍을 갔다.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한 줄 문구.
"롯데월드 내 식당에서 사용 가능한 교환권을 제공합니다. 도시락은 싸오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다니! 티는 안냈지만 내심 기뻤다.
지금은 아이들이 급식을 먹는 세대라 도시락을 쌀 일이 없지만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땐 점심, 저녁 두 개씩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가뜩이나 사 남매로 아이도 많은 데다가 아빠의 도시락까지 쌌어야 했던 엄마였다. 매일매일 밥 차리는 것도 힘든데 도시락까지 싸야 한다니. 엄마의 아침은 얼마나 바쁘고 힘드셨을까?
고1 때였나? 여느 때처럼 왁자지껄한 점심시간.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과 모여 하나둘씩 도시락을 꺼냈다.
아무 의심 없이 내 도시락 뚜껑을 연 순간, 이런! 도시락이 텅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도시락통을 들고 온 것이다. 어쩐지 오늘 가방이 가볍더라니. 엄마가 도시락을 미처 싸기 전에 내가 막 들고나온 것일까? 아니면 아침부터 정신없이 도시락을 몇 개씩 싸야 했던 엄마가 하필 내 밥을 깜박하신 것일까?
친구들과 나는 물기만 또르르 흐르는 빈 도시락통을 보고는 잠시 얼었다가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웃음이 많았던 여고생들이 서로를 부여잡고 웃기 바빴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빈 도시락통과 자지러지게 웃던 모습들만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기억의 왜곡인지는 몰라도 그날의 일은 창피함보다는 너무 웃겼던 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는 친구들은 옛날 얘기를 하다가 꼭 그때 도시락 얘기를 꺼냈다.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은 빈 도시락통을 기억해 내며 어김없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 역시 텅 빈 도시락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었나 보다.
그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별말 안 했을 것이다. 엄마의 노고를 헤아렸거나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날 기억이 창피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아서였다. 만약 친구들이 놀렸다면 지금처럼 재밌는 일화로 기억되었을까? 집에 와서 엄마한테 화풀이하듯 화를 냈을 테고 그러다 혼났겠지. 억울한 감정에 울면서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일이라도 반응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당황스러웠을 상황에서 웃음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웃음은 주변을 전염시키고 금세 분위기를 장악한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시트콤처럼 웃긴 상황이 상처가 될 리 없다. 옆 사람과 한바탕 웃어버린 일들에 화가 자리잡기는 힘들다.
물론 모든 일에 다 이렇게 행동할 수는 없다.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일들은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일 년 전의 고민이, 반년 전의 다툼이 지금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것처럼. 텅 빈 도시락통이 몇 년째 친구들의 재밌는 수다꺼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