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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엘리 Nov 20. 2024

네 이름이 뭐니?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보다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아는데 모르는 물건 이름 맞히기>라는 게임이었다. 예를 들면 "귤 표면에 있는 하얀색의 이름은?"귤을 먹을 때마다 보는 건데 따로 이름이 있다고? 정답은 귤락이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양말 샀을 때 두 짝을 한 켤레로 잡아주는 쇠의 이름은?"이것도 많이 본 건데 이름이 뭘지 감도 안잡혔다. 정답은 양말 코핀이다. 분명 일상속에서 자주 본것들인데 이름은 생소한 것들이라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자주 보지만 이름을 몰랐던 아니 이름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물건조차 누군가 부여한 이름이 있다. 공원에 산책을 할 때 만나는 꽃도 길가의 흔한 풀에도 각자 다 이름이 있다. 예쁜 꽃을 볼 때마다 얘는 이름이 뭘까? 하고 궁금해 찾아보곤 하지만 금세 까먹는다. 비록 내가 이름을 까먹을지언정 꽃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름을 모른다 하여 그 물건이나 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알겠지만 누군가는 모르는 채로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꽃은 피고 물건은 별 탈 없이 사용된다.


그렇지만 몰랐던 것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나만 아는 즐거움으로 별일 없는 하루가 조금은 재미있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끈이 책끈이 아닌 '가름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비밀을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책에서 가름끈을 발견할 때마다 '네 이름이 가름끈이었지!' 하고 반가운 마음에 그 책에 더 애착이 갔다. 만일 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고 있다면 적어도 무심결에 꽃을 밟아버리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꺾어버리는 행위는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상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을까? 우리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들, 그 물건을 이루는 작은 부품들 하나까지도 모두 이름이 이있다고 생각하니 그냥 지나치다가도 한번 더 눈길이 간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역할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각자의 역할이 있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결국엔 커다란 사고나 실수고 이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배달된 피자 상자를 열었을 때 만나는 하얀색 플라스틱, 피자 세이버가 "맛있는 피자가 한쪽으로 쏠리지않고 잘 배달되었어요"라고 말하는 듯 한가운데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마치 자기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뿌듯해 보였다. 상상하면 너무 귀여운 일이다. 


살다보면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작고 사소한 것의 이름부터 주위의 사람들까지. 상대를 배척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그저 다름을 클림으로 단정짓고 선을 긋고 편을 나눈다. 결국 젠더갈등이나 세대간 소통부제로 인한 다툼으로까지 번지며 많은 문제들을 을빚어낸다. 

아는 것의 시작은 이름을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통성명을 먼저 하는 이유이다. 요즘은 엘리베이터에 모르는 사람과 함께 타는 것만으로도 괜히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과 함께 탄다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부도 묻고 집까지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다. 


'이사람, 저사람' 혹은 '이것, 저것'이 아닌 각각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작은 관심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궁금해하는 마음이 무관심과 편견에서 벗어나 따뜻한 마음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이처럼 작고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다정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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