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에 꽃나들이로 한창 절정을 이룬 봄날. 하늘을 가득 메운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강을 따라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벚꽃명소를 갔다. 그 옆으로 예쁜 정원이 있는 단독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와 저 집 정말 예쁘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하니
"난 저런 집에 안 살고 싶다. 저 정원 다 관리할라봐. 얼마나 힘든데. 아유~ 이젠 안하고 편하게 사는게 최고여" 엄마는 고개를 흔드시며 딱 잘라 말하셨다.
지금은 우리집도 부모님집도 모두 아파트여서 추억속에만 있는 마당있는 집.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앞마당에 예쁜 뜰이 있었다. 커다란 감나무도 있었고 빨간 앵두나무도 있었고 이름 모를 꽃들도 많이 있었다. 가을이 되서 커다란 감나무에 감이 주렁 주렁 열리면 나무 의자에 올라가 감을 땄다. 삐걱거리는 나무의자를 아빠가 잡고 있는데도 흔들거리는 게 겁이 났다. 언니가 먼저 올라가 감을 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용기가 생겼다. 언니가 감을 다 따버리기 전에 나도 감을 따는 재미를 놓칠 수 없지.
"나도 해볼래" 붉게 잘 익은 감을 작은 손에 쥐고 살살 돌리니 똑 하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감. "휴" 떨어뜨릴 새라 걱정했던 마음까지 시원하게 떨어졌다. 언니와 나는 앞니가 빠진 채로 환하게 웃었다. 하나를 따본 후엔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감은 따고 윗부분에 있는 감은 긴 막대기로 꼭지 부분을 살살 쳐서 떨어뜨렸다. 까치가 먹을 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니랑 내가 딴 감을 엄마는 실로 꾀어 햇볕에 곱게 말려서 곶감을 만드셨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뜰에서 찍은 사진이 유독 많다. 우리 사남매를 쪼르륵 앉혀 놓고 꽃 옆에서도 찍고 나무 옆에서도 찍었다. 생일에도, 첫 교복입은 날에도 기념사진은 늘 뜰에서 함께 했다.
정글 탐험하듯 나무사이 사이를 돌아다니며 새빨간 앵두 하나 따 먹기도 하고 꽃나무 밑에서 소꿉놀이도 했다. 언니랑 나뭇잎과 색색의 꽃잎을 따다가 돌멩이로 꽃잎을 으깨고 나뭇잎에 담아 음식인 양 먹는 소꿉 놀이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엄마가 어린 딸들을 앉혀 놓고 봉숭아 꽃을 따다가 곱게 빻아 손가락에 봉숭아물 들이던 것도 물론 이 뜰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열매가 자라는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작지 않은 크기의 뜰을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렇게 예쁘고 정감가게 꾸미지 못할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사남매를 키우시면서 손이 많이 가는 주택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맡아 하셨을 엄마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감탄하며 부러워한 멋진 정원이 있는 집에서도 누군가는 봄햇살 아래 허리 굽히고 앉아 잡초를 뽑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예쁜 것을 즐기며 더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지 모른다. 그들의 수고를 모른채 그저 누리고만 있지는 않은지.
봄바람에 실려 온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니 어릴 때 뜰에 피어있던 보라색 아카시아가 생각났다. 아카시아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들인 누군가의 땀방울이 향기에 배어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