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엘리 Jun 12. 2024

물레가 돌아간다. 빙글빙글

도자기 빚는 마음으로

부드럽고 커다란 흙덩이를 둥성 잘라 물레에 올린다.  페달을 밟아 물레가 돌아가는 속도를 조절한다. 손끝까지 세심하게 힘을 주었다 뺐다, 위아래로 쓰다듬으며 천천히 원하는 모양을 잡는다. 커다란 사발 그릇으로, 혹은 물병으로 모양이 잡혀간다. 리드미컬한 섬세한 손길에 물레 위 점토는 어느새 예쁜 작품이 된다.


"이제 자유롭게 만들어보세요"

도예가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 본 후 혼자서 만드는 시간. 손에 물을 묻히고 부드럽게 점토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차갑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찹.찹.찹

점토를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위에 점토를 중심을 잡아 세우는 것도 어려웠다. 선생님이 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꾸욱 눌러 동그란 구멍을 만들었다. 주욱 당기며 구멍을 점점 크게 늘렸다. 너무 욕심을 부렸을까? 형태가 잡히나 했더니 팽글팽글 돌아 주저앉아 버린다. 여기저기서 탄식의 소리가 나왔다. 선생님은 수강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봐주시고 계셨다. 혼자 끙끙대고 있을 때 선생님 손길은 구원처럼 느껴졌다.  망친 모양도 말끔한 그릇의 모양이 되었다. 선생님과 함께 만들 때는 파는 것 못지않은 근사한 그릇을 만들어냈는데 역시 혼자 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내가 생각하는 형태를 손으로 빚어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힘을 주면 금세 모양이 망가져버리고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소심하게 만지면 모양을 낼 수가 없었다. 잘 되는가 싶었는데 힘없이 스르륵 주저앉아버려 당혹스러웠다. 빨리 하려고 하면 두께가 두꺼워진다. 침착하게 손가락 힘을 잘 조절해야한다.


넙적한 파스타 그릇을 만들려고 했는데 완성되고나니 동그란 면기가 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균형이 안 맞고 마감 처리도 어설퍼 보이지만 내 손으로 완성하여 그릇을 만들었다는 게 뿌듯했다. 몇 번을 무너지고 망가져도 결국엔 뭐라도 만들어내는 과정이 꼭 내가 살아가는 모습 같다.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갈 때도 있지만 어디 삶이 계획한 대로만 살아지던가?


도자기를 빚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서 내 삶을 만들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도, 대단하지 않더라도. 오목한 밥공기를 만드는 것도 납작한 접시를 만드는 것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 인생을 내가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한 달 뒤, 도자기 공방 체험이 잊혀갈 즈음 집으로 그릇이 배송되었다. 유약을 발라 구운 고운 백색의 면 그릇과 작은 반찬 그릇이었다. "제법인데!" 생각보다 쓸만한 모습에 놀랐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재미를 느끼고 있는 지금,

나의 물레는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망치면 또 어떤가 다시 만들면 되지. 아직 어떤 모양의 삶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제법 괜찮은 날들을 만들어낼 지도.

이전 05화 나에게도 아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