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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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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Oct 11. 2022

지치고 낡은 인생

낡은 타프, 그리고 빗물 젖은 복어탕.

똑! 똑!

버너 위에서 끓고 있는 복어탕에 가을 빗방울이 떨어진다

말없이 고개를 젖혀 위를 쳐다본다

타프의 꼭대기에 대롱대롱 가을비 한 방울이 맺혀있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

살짝 열린 베란다의 틈을 타고 불어온 선득한 바람에 놀라 잠을 깬다

아침이지만 새벽녘 같은 어둠이 남아있다. 혹시나 하는 바램을 안고 베란다로 나가 보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비에 베란다에 놓여 있는 텐트며 타프들을 걱정스레 쳐다본다


거의 일 년 만에 떠나는 1박 2일 가족 캠핑의 날이다

큰 아들 중간고사 끝나는 주에 맞춰 더 추워지기 전에 가을바람이라도 쐬자며 지난달 예약했었다

그런데 가을비는 하루 종일 오고 바람도 많이 분단다


그렇게 우리는 걱정반, 설레임 반을 실은채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3일의 연휴라서 그런지 캠핑장은 많은 캠퍼들로 빼곡하였다

다만 분위기는 가을비가 오는지라 조금은 가라앉은 듯 차분해 보였다

예약한 자리에 텐트를 먼저 쳤다. 그리고, 타프를 치려고 펼치는 순간 어젯밤 걱정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사실 어젯밤 준비를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장비가 타프였다

애들이 커가며 쏠캠으로 전향한 지 꽤 되는 터라 큰 타프가 필요치 않았기에 2년 전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수납장에서 눌려 있었던 타프라서...그래서 걱정했던 것이다


타프는 펼쳐지지 않고 접힌상태로 스킨끼리 달라붙어 있었다

손으로 펼치자 "찌지직" 소리를 내며 약간은 뻐득하게 굳은 듯 탄성을 잃은듯한 모양새다

계속된 비에 일단은 타프 설치를 서두르고 사이트를 구축했다

텐트 안에 침구류를 정리하고 타프 아래엔 테이블과 의자 등 먹고 마실 준비를 마쳤다

좋아하는 양고기를 애들과 같이 시즈닝을 하면서 타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긴다

타프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감성 그 자체다

비에 젖은 캠핑의 시간은 프렌치 랙과 함께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애들은 부른 배를 토닥이며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와이프와 두런두런 초 저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타프를 치는 빗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거기에 바람까지 가세한다

저녁부터 바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예보를 통해 알고는 있었기에 텐트와 타프의 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거세지는 바람에 버티려 타프 스트링을 조금 더 당겨 올린다

손가락 끝에서 튕기는 스트링은 바람에 저항하는 듯 "팅팅" 거리며 소리를 낸다


바람이 많아지기 전에 일찍 먹고 치우자며 이른 저녁을(복지리탕) 준비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자리를 밝히려 타프에 랜턴을 거는 순간 랜턴의 밝은 빛에 비친 타프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타프의 심실링 테이프가 떨어져 축 늘어져 있는 게 아닌가!

비에 푹 젖은 타프가 텐션을 받으며 심실링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당장에 심실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략 난감했다

심실러가 떨어져 나간 그곳에선 어느샌가 빗방울이 모여지고 있었다

또르르르~~

타프 안쪽 스킨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는 계속 오는데 어쩌지?




타프는 12년 동안 나와 함께 다녔었다

몇 개의 타프가 있지만 우리 가족 캠에선 절대적인 놈이었다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무게, 무엇보다 텐트와의 아이덴티티가 참으로 어울리는 놈이라 애착을 가지고 손때를 묻혀 왔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었고 햇빛이 내리쬐이면 햇빛을 막아 주었다

바람이 불면 스트링이 떨어져 나갈지언정 그 얇디얇은 스킨으로 우리를 지켜 주었다


"그래! 여태껏 우리 가족을 비와 바람, 그리고 햇빛으로 부터 지켜주느라 지치고 낡아왔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오죽했으랴!


12년이라는 세월동안 나 역시 지치고 낡아왔을것이다

타프처럼 누군가의 바람막이가 되었을 때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보호를 받으면서 말이다

지치고 낡아간다는 건 인생의 풍파를 맞으면서도 지켜내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래도 우리네의 낡음은 타프의 낡음에 비하면 다행이다

왜냐구?  음~~당장의 버림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네의 낡음은 늙음이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우리는 타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가며 여기 저기 의자를 옮겨 다녔다

그 모습을 보던 큰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오늘은 재미 있는 캠핑이네!  캠핑을 하다보면 이럴수도 있지 뭐!"


우리는 큰 아들의 그 말에 빠른 수긍을 하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세살때 부터 캠핑을 해온 사고의 유연함에 한 수 배워가는 날이었다


그날.

낡은 타프 아래에서 소주 한잔과 함께하는 빗물 젖은 복어탕이 맛있었다!


똑! 똑!


버너 위에서 끓고 있는 복어탕에 감칠맛 한 방울이 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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