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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Nov 15. 2022

김장과 엄마 생신

나 죽으면 이렇게라도 모일 자리가 있겠나?

마을 언덕길을 내려오는 차 안은 갓 담은 김치 냄새로 가득하다

혹여 흘릴세라 김치통을 부여잡고 있는 팔뚝엔 힘이 들어간다

막걸리의 취기와 김장김치의 냄새가 온전한 토요일 밤이다


토요일.

엄마 생신이자 김장을 하는 날이다

매년 이 맘 때면 엄마 생신 겸 김장을 하러 모든 식구가 모인다

인천, 영월, 구미에서 아침 일찍 다 모이고 보니 집안이 비좁다

바리바리 김장재료들이 한 짐씩이다

배추와 무 그리고 고춧가루는 엄마가 직접 농사지으신 것들이다

마늘만 의성 것으로 사셨다. 자식들 먹인다며 힘든 농사를 마다 못하시는 이유다

젓갈은 큰 누가 준비해온 황석어다

엄마와 두 누이 그리고 아내와 제수씨는 김장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했고 장성한 두 조카는 음식을 만든다


감 과수원에는 제 키보다 몇 배는 긴 장대로 감을 따고 있는 조카랑 아이들이 올망졸망하다

시집간 큰 조카 아들(6살)이 감나무에서 딴 홍시 맛을 보더니 열심이다

한 번의 갈무리로 몇 남지 않은 감이지만 모조리 따 내릴 것만 같은 기세다

그 모습에 까치밥은 남겨두라 이른다

까치밥을 알리 없는 도시 아이들에게 작은 아들이 설명을 해주지만 얼굴은 이해 못 한 표정이다

고작 6살, 4살의 표정이다.  그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갓 담은 김장김치에 수육으로 시작한다

그 뒤로 키조개, 대하, 굴이 뒤따른다

자기네 동네 막걸리가 제일 맛있다 자랑을 하며 한, 두순배 돌리다 보니 단숨에 몇 통을 비워낸다

부른 배를 토닥이지만 갓 담은 김장김치는 계속 들어간다

팔순의 세월을 지내 오신 엄마는 당신의 자식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알알이 들어 찬 배추의 노란 꼬갱이 마냥 달큰하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이다


입동을 넘기고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11월.

김장김치 독을 땅에 묻고 창고 가득 연탄을 들여야만, 한가득 푸근했던 11월의 겨울나기 대사(大事)

김장과 연탄은 생존을 위한 지난 세월의 애환이었다. 엄마에게는...

나는 그런 엄마에게 김장을 하지 말자며 몇 해 전에 얘기를 한번 꺼 냈었다

"뭣 하러 농사며 김장까지 하시냐며"

매년 굴레와도 같이 다가왔을 11월의 김장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완고하셨다

"나 죽으면 이렇게라도 모일 자리가 있겠나?"

엄마에게 김장은 또 다른 의미였던 것을 알았다

나는 이후로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해 묵은 김치는 갓 담은 김장김치에 자기 자리를 내어준다

갓 담은 김장김치로 김치 냉장고가 가득 채워지듯 내 마음도 새로울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겠지!


굴로 채워진 김치 한 포기가 외 따로다

오롯이 나를 위한 굴김치다

아내와 아들들이 비리다 눈치를 주더라도  따끈한 밥에 굴김치 쭈욱 찢어 올려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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